뮤즈와 자전거

by 이은주

1.
따릉이 1년 정기권을 끊었다. 라이더가 되어 손자가 언어수업을 받는 동안 달리고 달려서 새로이 뮤즈를 만나고 오다. 4월 한달 동안 새로운 뮤즈와의 만남은 무려 4번째. 50평 아파트에서 한강을 내려다 보며 하루종일 혼자 보내시는 뮤즈가 있었지. 과거형(난 너무 좋은 환경이라 기뻤는데 정작 뮤즈의 마음에 들지 못함.흑흑) 여자야 남자야 물으시며 자신의 안방에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하셨던 뮤즈는 방문 3일째 낙상으로 재입원하셨다. 어마어마한 대저택 2층에 사시는 뮤즈는 베르사이유 장미 정원처럼 푸른잎 식물이 꾸불꾸불 넝쿨져 있는 침실에서 욕창으로 고생하고 계셨다. 욕창이 있으셔서 자식들이 체위변경이나 산책을 원하셨는데 자신의 말을 잘 따라주는 기존의 요양보호사샘 이외에는 싫으시다고.. 보호자와 대상자 의견이 다를 때는 대상자 의견을 따르는 게 맞다.

2.
요즘 읽는 육아서에 옳음과 친절함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죽음에 가까워진다면 나도 옳음 보다 친절함을 선택하지 않을까.
오늘 만난 뮤즈의 보호자인 따님은 여러 소개소에 연락을 해놓아서 면접을 본다고 한다. 나도 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밝히는 따님의 눈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말씀드렸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일하기도 하지만, 일이 좋아서 하는 경우 솔직한 타입의 보호자가 나는 더 매력이 있다. 서로의 정보를 알고 조건이 맞으면 연락을 주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전거 패달을 부지런히 밟고서 손자가 언어수업을 마치기 직전에 도착했다.

3.
다양한 뮤즈들과의 만남을 갖는 동안에도 양손이 마비인 뮤즈의 재가방문은 반 년이 되어 가고 있다.
수요일에는 병원에 모시고 가서 의사소견서를 받아왔다. 병명은 미분화형 조현병. 병명을 봐서는 그녀가 어떤 고통에 시달리는지 모르겠다. 조현병은 여러 가지 성격 장애를 지칭한다고 하지만, 그동안 모시면서 특별한 점은 못 느꼈다. 우울의 정도만 다를뿐..
무의욕증과 같은 음성 증상을 말한다면 정확히 일치한다. 산책도 자주 거르시고 드시고 싶은 것도 없고 노래도 웃음도 봄이 오는 동시에 사라졌다.
그랬던 그녀가 바람이 불고 꽃잎이 지고 비가 오자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감정 표현도 하신다.
이제 갈 시간이에요. 하고 일어서는 나에게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묻는다.
목요일에는 미장원에 가고 싶으니 사회복지사께 전화 연결을 원하셔서 바꾸어 드리자 한 시간 연장을 부탁하셨다.
비내리는 오후 미장원에 가서 코가 아플 정도로 쎈 파마약 냄새를 실컷 맡다 왔다.
연장했던 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내가 일어서자 양손 마비인 뮤즈가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으신다.
불, 꺼드릴까요?
목소리를 잃은 뮤즈가 끄덕끄덕.
어두운 방 한가운데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을 뮤즈에게 인사한다.
다녀오겠습니다.

4.
엄마의 주변 분들께 톡하고 톡하고..

-오래간만에 엄마를 뵙고 왔어요. 3월에 엄마는 마치 정을 떼려는듯 공격적이셨는데 어제는 시종 기분이 좋아보이셨고
당뇨약을 바꾼 지난 달 길거리나 방에서 어지러워서 넘어질 뻔한 이야기를 주치의가 듣고 바로 당뇨약을 교체했더니 훨씬 좋아지셨다네요..
게다가 지난달 자주 헛것이 보이고 눈앞에서 휙휙 지나가서 내가 죽을 때가 되었구나 했다는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십니다. 수많은 어르신들을 모셔왔지만, 정작 제 엄마만은 판단이 서지 않고 일관된 케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왔어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엔 4월과 5월의 차이가 보이시나요?

- 권사님 어제 엄마는 노인대학에서 있었던 일을 즐거워하시며 이야기하셨어요. 정말 기쁘네요.
나이 든다는 것.
그것도 자식이 시들어 가는 부모를 지켜보는 것.
참 어려워요.

: 그 마음 어떤 건지 잘 알지요.. 어르신 노인대학에 너무 적응 잘 하시고 즐거워 하셔요. 잘 못 들으시면 어쩌나 했는데 이해력도 좋으시고 식사도 잘 하시고.. 공감능력 또한 뛰어나신 것 같아요.
제 친정어머니도 오시기로 했었는데 아버지가 많이 안좋으셔서 계속 불참하셔서 속상했답니다ㅠ.. 스스로의 걸음으로 그 자리까지 오실수있는게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지쳐서 잠시 잊고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