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님에게
일요일에는 방통대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시험을 보고 막내조카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지요. 막내조카는 다음주 대만으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4박 5일 동안 갈아 입을 속옷을 사기 위해서 였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쇼핑을 할 때는 언제나 예산을 알려줍니다. 오늘의 예산은 5만원.
속옷 3장에 5000원씩 15000원. 흰면티 3장에 만원. 나머지 2만 5천원은 유니클로나 텐, 스파오에 들려서 새옷을 살 예정이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6층 행사매장에서 고른 팬티 석장을 사면서부터 예산이 초과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4000원이라고 적힌 금액을 보고 골랐는데 계산대 직원은 4000원은 삼각팬티이고 트렁크는 7000원부터라는군요. 이런 걸 요즘 낚였다고 하지요? 속옷은 홈플러스가 싼데 그곳까지 두 사람의 왕복 교통비를 생각하고 그냥 계산을 하고 나왔습니다.
서울은 어느새 제가 도쿄 유학시절 겪어야 했던 것과 똑같이 점심식대 대란과 교통비 대란으로 월급쟁이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막내조카는 작년에 산 흰면티가 아직 쓸만 하다는군요. 저는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필요 없다면 없는 것이지요. 제 생각엔 1년이면 하얀색이 다 바랬을 테지만, 갖고 싶은 옷이 있나보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새옷에 3만 5천원을 쓸 수가 있으니까요.
지하 매장에 있는 수많은 브랜드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3만 5천원이라고 쓴 맨투맨 티 앞에 멈췄습니다. 막내조카는 브랜드의 이름을 말하며 호감을 나타냈고, 만져보니 안감이 톡톡해서 늦가을에서 겨울까지 날 수 있을 것 같았죠. 이렇게 우리는 할인 매장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저가 브랜드에 들어가 거울 앞에서 체크남방이며 스웨터 등을 얼굴에 대보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결정할 시간이 되자 막내조카는 처음에 본 맨투맨 티 매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3만 5천원(이번에는 분명히 확인까지 마쳤죠) 짜리 맨투맨 티를 달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 티는 여자 사이즈만 있고 막내 조카가 입을 만한 사이즈는 안에 있다는 겁니다. 이번에도 낚인것이지요. 할인매장은 나빠요. 매번 속는 저도 나쁘고요.
안내받은 곳의 맨투맨 티를 둘러보는 조카의 눈이 반짝입니다. 아이보리 바탕에 가슴에 청색 영문이 박힌 티를 듭니다. 가격은 6만 9천원. 천 원 빠지는 7만원입니다. 가격을 확인한 순간 저는 막내조카가 티를 내려놓을 줄 알았는데 꼭 잡고만 있지 않겠어요? 저는 망설이다 그럼 한번 입어나 보라고 했습니다.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옷을 사기 전에 입어 보는 일도 성가셔 하던 아이가 얼른 옷을 들고 사라집니다. 짜잔. 농구를 해서 딱 벌어진 어깨를 한 청년이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이 피부에 아이보리 색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정말 예뻤습니다. 단지 가격이 문제였죠.
티를 벗고 나온 조카는 좀처럼 그 매장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나 봅니다. 예산을 초과한, 그것도 두 배나 초과한 가격에 곤란해 하는 고모의 얼굴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그렇죠. 그 나이에는 보여도 보지 않고 들려도 듣지 않기 쉽습니다. 그래서 좋은 책, 좋은 친구가 중요하다고 하지요. 한가지 밖에 안 보이기 때문이니까요.
평소의 저라면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며 아쉬움 없이 매장을 함께 나와서 다른 옷을 골랐겠지만, 그날의 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좋아, 결정을 하자. 예산에 두 배인 이 옷을 사고 싶으면 사. 하지만 너도 2만원을 보태렴."
조카는 제 말을 듣는둥 마는둥 이미 자신의 옷인 것처럼 들고만 있습니다. 계산대에 선 제 머리 위로는 말풍선이 하나 가득 떠다녔고요. 어쩌지, 맨투맨 티 7만원, 팬티 2만 천 원. 여행 경비로 바꿔온 대만 달러 2천불... 아아, 더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졌지요. 저는 급 말이 없어집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이 원하던 옷이 담긴 쇼핑백을 받은 조카는 매우 상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요. 마치 이미 여행지에서 거리를 걷고 있는 것처럼 기분 좋아 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큰조카의 얼굴이 떠올랐지요. 큰조카에게는 조금 더 인색한 고모였거든요. 예산을 웃도는 옷을 고르면 손을 잡고 다른 매장으로 향했는데 왜 막내조카에게는 관대한 지에 대해서 분석해 봅니다. 같은 여자라서 인색하게 굴었던가. 아니면 이성인 막내조카보다 동성인 큰조카가 내 입장을 더 이해해주는 편이었던가. 더 감정적으로 탐색해 보면 큰조카보다 일찍 엄마와 떨어져 자란 막내조카에게 늘 마음이 무장해제 되어서일까. 돌아오는 길 내내 공평하지 못한 저의 처사에 대해 분석해 보았지만 결론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이유들이 나타났습니다. 큰조카에게는 경제감각을 심어주고 싶었고, 막내조카에게는 동기부여 라고 할까, 성취감을 자극시키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하기로 했지요. 한편으로는 큰조카와 다음에 쇼핑할 기회가 생기면 이번에는 막내조카에게 해주었듯이 성취감을 자극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저의 인생은 가족을 이해하는 데 다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엄마와의 관계, 동생과의 관계, 조카들과의 관계, 이제 새로 시작하고 있는 조카 손자와의 관계 등등.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겠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쉽게 되나요. 늘 미워했다가 사랑하고, 이별했다가 그리워 하는 게 가족이지요. 저의 경우에는 불가사의 하게도 제일 미운 사람이 가족이고 제일 애틋한 존재가 바로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