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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리케인봉 Dec 01. 2020

사랑도 비대면이 되나요?

후 아 유(최호,2002)


얼마 전 마스크를 쓰고 결혼식에 갔다가 외국에 있는 신부의 친구가 보내온 축가 영상, 그러니까 비대면 축가를 봤다. 그야말로 비대면 감정 교류에는 끝이 없구나, 하는 마음에 나는 조금 울 뻔 했다.


곧 비대면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제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아니라 다리가 놓여 있어서, 그 다리 위로 와이파이도 흐르고 운송장 정보도 지나다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 문득 코로나 시대의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접속>(장윤현,1997)의 두 사람이 PC통신 채팅을 통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넘어, 이 영화 속 형태(조승우)와 인주(이나영)는 대화를 넘어 같은 (가상의)공간까지 공유한다. 그 곳은 인주가 꼭 가보고 싶은 티티카카 호수 그 자체다.


곧 공간을 넘어 감각까지 공유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다. <데몰리션 맨>(마르코 브람빌라,1993)에서 보여줬던 그 미래 세상처럼 만나지 않고도 서로 섹스를 할 수 있는 시대. 체온과 체액을 나누는 일이 필요없어지는 세상. 상대의 얼굴 한 번 보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펜팔의 최종 진화형. 싸이버 러버.


좀 과장하면, 영화 속 가상현실 게임 '후아유'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굳이 직접 만나서 손 잡고 입 맞추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종족이 되는 것. 말하자면 사랑하는 인간에 대한 '유년의 끝'이다.


그러나 형태는 자신을 '투명인간 친구'라고 말하는 인주에게 만나자고,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형태는 ID 멜로 뒤에 숨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직접 만나서야 자신이 누군지 알렸지만, 가상 공간에서 자신을 밝혔다면 어땠을까. 영화의 마지막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대신, ID 멜로와 ID 별이가 티티카카 호수 근처를 산책한다든지 하는 결말이 됐을까.


아마 인주는 ID 멜로가 형태라는 것을 알자마자 바로 로그아웃 했을테고, 그걸로 별이와 멜로의 관계는 끝이 났을 게다. 그리고 형태와 인주의 관계가(아마 싸움의 방식으로)다시 시작됐을 것이다.


<유년의 끝>처럼 정말 외계인이 내려오지 않는 한, 사람들은 지금껏 그랬듯이 와글와글 사랑할 것이다. 서로의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발을 맞춰 걸으면서. 앞으로도 우리는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누군가를 보기 위해 기꺼이 먼 길을 달려갈 것이다.


<데몰리션 맨>에서, 물리적 섹스는 사라지고 사이버 섹스만 남은 미래에 떨어진 20세기 인간 존 스파르탄(실베스타 스탤론)은 이건 진짜가 아니라고 외친다. 야만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가짜는 가짜라고.


https://youtu.be/bOvOqMcAE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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