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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리케인봉 Dec 06. 2020

소년에서 아저씨로

말죽거리 잔혹사(유하,2003)

1978년, 강남의 고등학교로 전학 온 소년 현수(권상우)는 학생이 학생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군복 입은 교사가 교복 입은 학생을 구타하는 이곳이 낯설다. 그래서 현수는 눈치 없이 다혈질 복학생에게 상식적인 조언을 했다가 얻어맞고, 이어 복학생이 더 강한 우식(이정진)에게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본다.


정글을 걷는 이에게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생존 방식이 있다. 누군가는 완장을 이용해 먹이사슬 사이를 넘나들고, 누군가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누군가는 아부와 처세술로 버틴다.


소년은 반 대항 농구시합에서 보여준 운동능력을 통해 우식에게 인정받고 그의 친구가 된다. “쪽팔리면 학교생활 끝이다”고 말하는 우식은 쪽팔리지 않기 위해 소년을 데리고 고고장으로, 자신을 해하려는 선배들이 우글거리는 교실 한가운데로, 교사의 군홧발이 날아드는 캐비닛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예정된 순서대로 첫사랑에 빠진다.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말죽거리 올리비아 핫세’ 은주(한가인)에게 한눈에 반하더니, 곧장 그녀의 손을 잡고 악당들을 피해 추격전을 벌인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우산을 나눠쓰고, 서툴게 기타 줄을 튕기며 세레나데를 연습한다.

대한민국 동네마다 있었던 올리비아 핫세, 소피 마르소, 멕 라이언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실 말죽거리 올리비아 핫세가 아니라 말죽거리 소라 아오이여도 관계없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오! 나의 공주님’이 된다.


소년은 나의 공주님이 우식에게는 ‘한번 먹기 좋은 애’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심지어 싸움에서 패하고 쩔뚝이며 학교를 떠난 우식과 함께 도망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친구와 첫사랑을 모두 잃었다. 떡볶이집 아줌마에게 순정도 잃었다. 그러니 길은 정해졌다.


현수는 비겁하게 쌍절곤으로 악당 선도부장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발걸음을 뗀다. 당대 가장 강한 수컷, 이소룡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적들을 때려눕히고 유리창을 부수며 길을 나아가는 그 액션은 처연하고, 외침은 쓸쓸하다. 그리고 길의 끝에서 현수는 악당의 어머니에게 용서해달라며 무릎을 꿇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한국 아저씨들이 재입대하는 꿈을 꾸고, 군 시절 무용담을 과장된 어투로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보일 때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와 학교는 거대한 트라우마 양성소인데, 그때의 기억을 미화시켜 계속 입 밖으로 내는 방식으로 위안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유하 감독은 소년을 버리고 아저씨가 되기를 강요했던 시절의 성장영화에 ‘잔혹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것은 90년대를 추억하는 방식과 다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tvN, 2020)은 동물원이나 이승환 같은 당대의 유행가를 나열하며 추억을 자극한다.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방식을 빌린 인물 간 애정 관계에 가요가 양념처럼 끼어드는 식이다.

<건축학개론>(이용주,2012) 역시 전람회와 공일오비의 음악이 흐르는 당시의 풍경 그 자체에 집중한다. 풋풋한 대학 신입생 이제훈이 누가 봐도 아저씨인 엄태웅으로 변한 것은 첫사랑을 놓쳐서도 아니고 졸업 즈음 외환위기가 닥쳐서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시절의 청춘이었던 자신을 떠올리고, 돌아갈 수 없는 90년대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말죽거리 잔혹사> 속의 아저씨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면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영화가 말하는 그 시대의 논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 영화의 다음 이야기쯤 될 <비열한 거리>(유하, 2006)에는 아저씨가 되지 못한 채 욕망의 거리에 뛰어든 병두(조인성)가 등장한다. ‘소년 딱지’를 떼지 못한 그는 결국 그 순수성 때문에 파멸한다.


스스로 학교에서 걸어 나온 현수는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은 채 유쾌한 학원 강사의 강의를 듣는다. 버스에서 우연히 은주와 마주쳐도 예전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말을 더듬지 않는다. 성적이 떨어지자 ‘잉여 인간’이 되지 말라며 뺨을 때리던 아버지는 학교를 나온 현수를 구타하는 대신 “이소룡은 대학 나왔냐”고 묻는다. 모든 것은 쌍절곤으로 선도부장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그 비겁함에서 시작됐다. 현수는 병두와 달리 어른이 됐다.


<빌리 엘리어트>(스티븐 달드리, 2000)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소년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정글의 법칙을 깨달은 소년은 스스로 겨드랑이 밑의 작은 날개를 잘라낸다.


영화의 마지막, 현수는 이제 이소룡의 시대는 갔고 성룡의 시대가 왔다는 친구의 말을 부정한다.

소년은 흘러간 스타가 여전히 최고라고 주장하는 아저씨가 됐다. 이소룡의 70년대도 그때 그 소년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https://youtu.be/GMfjA4gyE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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