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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06. 2024

2024년 10월 6일

나의 두 번째 성지순례


엄마가 마지막까지 정말 온몸을 던져서 하셨던 것이 성지순례다. 응급실로 실려가기 이틀 전에도 성지순례를 다녀오셨고, 나는 그게 원망스러워서 병상에 누운 엄마한테 물은 적 있었다.

"성지순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해?"

"... 주교님이 축복장 줘."

"그게 그렇게 받고 싶었어?"

"(끄덕끄덕)"

엄마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성지순례 책이 눈에 띄었고, 엄마가 가보지 못한 곳은 내가 대신 가서 기념 도장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꼭 엄마 이름으로 축복장을 받아주겠다고.


오늘은 발달장애 친구들과 함께하는 성지순례가 있었고, 나는 그중 가장 작고 느린 친구와 짝꿍이 되었다. 성당에서 함께 미사도 드리고 성지순례지에서 밥도 같이 먹고 내내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무리 가장 끝에서 둘이 손을 잡고 걷다가 "있잖아, 선생님 엄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하고 나도 모르게 말을 꺼냈고, 내 말을 들은 작은 친구가 "불쌍하겠다!"라고 얘기했다.


도장 찍는 곳에 가서 엄마 책을 펼쳐놓고 도장을 꾹 찍고는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우리 집에서 기껏 버스 몇 코스인데, 같이 왔으면 그렇게나 좋았을 텐데 싶어서. 프랑스 루르드 성모상을 본뜬 성모상이 이곳에도 있었고, 나는 루르드에서 기도하던 엄마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의 성지순례를 내가 이어받고자 마음먹은 것, 마침 동네 성당에서 일 년에 한 번 있는 성지순례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 프로그램 시작 직전에 짝꿍이 바뀌어 가장 작고 느린 친구와 짝꿍이 된 것, 처음 본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친구와 하루 내내 손을 꼭 붙잡고 다닐 수 있었던 것, 모든 것이 엄마의 선물처럼 느껴지는 하루였다. 아, 오늘 이 친구들과 함께한 미사는 내 생애 가장 시끄럽고 가장 엉망이고 가장 아름다운 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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