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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Feb 18. 2019

스스로의 역사에 죄인이 되지 않는다  

프리랜서 프리뷰

정성으로 건설하여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다


지난 주말, 3호선 환승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공사 연혁'현판을 발견했습니다. '정성으로 건설하여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다'라는 문장과 그 아래 빼곡히 새겨진 이름들이 꽤나 묵직하게 다가오더군요. 현판 앞에 서서, 나의 매일은 나의 매 순간은 어떻게 건설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내가 쓰고 있는 시간과 쓰고 있는 글에 좀 더 충실하겠다고 다짐했고,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의 역사에 죄인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썼습니다. 충실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난날의 여러 실수와 시행착오를 되새기며 이 글을 썼습니다.


저는 회사원으로 줄곧 살았습니다. 즉,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만 돈을 벌었기 때문에 회사를 벗어나면 곧바로 백수였고요. (물론 백수로도 살아봤습니다.) 현재는 잠시 회사를 벗어나 프리랜서로 살고 있는데요,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하던 회사원 A 때와는 달리, 시스템 자체를 만들어가야 하는 프리랜서의 삶을 처음 접하고,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 꽤 당황스러웠지요. 첫 달은 여기저기 부딪치고 눈물도 많이 흘리는 시행착오의 달이었는데요, 이 기간 동안 스스로를 대상으로 실험한 프리랜서 생존수칙을 소개할까 합니다. 전문 프리랜서가 아니기 때문에 '프리랜서 프리뷰' 정도로 가볍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1. 본인이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라.

나는 웬만하면 집에 일을 들이지 않는 스타일이다. 장소에 목적성을 확실하게 부여하는 인간이라, 학창 시절 내내 여간해선 집에서 공부해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공부는 도서관에서 했다. 카페에는 마시러 가고, 도서관에는 책 보러 가고, 운동장에는 운동하러 가고, 사무실에서는 일을 한다. 재미없지만 이게 나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처음에 떠올린 건 당연히 집 근처 스벅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시도해보니 집중이 안 될 요소가 너무 많았다. 애당초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상태에서 글을 쓰는 타입이다 보니, 옆사람의 대화 소나 취향에 맞지 않는 카페의 BGM, 공기 중에 떠도는 웃음소리 이런 모든 것들이 굉장한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처음엔 변변한 책상도 없이 집에 있는 좌탁에서 3주간 글을 썼다. 눕기만 하면 바로 잠자리라 늘 오후에 까무룩 잠드는 걸 피할 도리가 없었고, 그때 생각한 것이 작업실 출근이었다. 운 좋게 작업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겨

2주간 몇 번 출퇴근을 시도해봤지만, 일단 왕복 두 시간이라는 장거리와 피로도 역시 무시 못할 것임을 알았다. 카페, 도서관, 집, 작업실 어디든 좋다. 일단 다 트라이해봐라. 나 역시 집에서 걸어서 30분 걸리는 도서관까지 가서 의기양양하게 회원증까지 만들었지만, 이틀 가보고 말아 버렸다. 결국 나는 책상을 주문하고 집에서 쓰는 방법을 택했다.  


2. 시스템을 만들어라.

1번의 연장선이다. 학교 다닐 때 만들었던 시간표가 필요한 때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직선을 그어 피자처럼 쪼개라. 자신의 성향에 최적화된 맞춤형 계획표를 만들어라. 특히, 일하는 시간만큼이나 일하지 않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터치하는 누군가가 없이 묵묵히 일을 하고 있으면 자주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다. 특히 나는 워낙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성향이라, 집에서 누가 나를 꺼내지 않으면 몇 달이나 집에 있는 것도 가능하기에,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을 한 가지 스타일이 아닌, 여러 가지 스타일로 세분화하는 것도 좋다. 머리를 쓰는 시간, 몸을 쓰는 시간, 정서를 쓰는 시간 등으로. 참고로 나는 주말에는 기타를 배우고, 수요일 저녁에는 소설 쓰기 특강을 듣고 있다.


3. 컨디션의 개가 되지 마라.

귀여운 개를 여기다 갖다 붙이니 좀 그렇긴 하지만, 컨디션이 가자는 대로 끌려가는 개가 되지 마라.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가장 큰 이유가 시간 부족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도 "그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하고 스스로를 자주 몰아세웠다. 물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뭉개는 시간, 잠자기 전 웹툰 보는 시간 등 이런저런 시간을 쥐어짜면 두어 시간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물론 시간이 좀 여유로운 주말을 이용해, 직장 생활을 성실히 이행하면서도 정기적으로 출간을 하는 작가들도 있다. 나는 그만한 위인은 아닌지라. 입버릇처럼 입에 달았던 조건이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이었다. 물론, 글을 쓸 합당한 이유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자 아침 맑은 정신에 끝도 없는 영감이 흘러나와서, 한번 앉으면 정신없이 몇 시간을 썼으면 참 좋겠지만... 하루 종일 한 줄도 못쓰는 날이 많았다.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짰다. 원고가 잘 써지는 날은 '나 천재 아니야?' 하면서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작업을 했고 (보통 이렇게 작업하면 다음날 컨디션은 엉망이 됩니다!), 머리가 영 먹먹하고 안 돌아가는 날엔 '오늘은 영 아니.' 하면서 참 쉽게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절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매사 그렇듯, 글쓰기도 잘 될 때가 있 안 될 때가 있다. 잘 될 때도 쓰고, 안 될 때도 써라. 잘 된다고 많이 쓰지 말고, 안 된다고 적게 쓰지 마라. 늘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을 쓰기로 해라. 처음에는 컨디션이 나를 개처럼 끌고 가나 싶지만,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양이라는 조건에 몸을 끼워 맞추면 컨디션은 말 잘 듣는 개처럼 알아서 나를  따라온다.


4. 움직여라.

컨디션의 개가 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쳐진다 싶으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움직임'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더 이상 아침마다 옆구리 터지기 일보 직전의 김밥 밥풀 같은 심정으로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매우 기뻤고, 그 시간에 신나게 잠을 잤다. 그런데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즉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몸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머리는 띵하고 굳이 뭘 더 먹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움직임이 둔했다. 현재 소설 쓰기 강의를 듣고 있는데, 20년째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사 선생님이 첫 시간에 강조한 말이 있다.

"글이 안 풀린다 싶으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세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 줄 몰랐으나 이제는 확실히 안다. 스무 살 때부터 좋아했던 조경규 작가도 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그린 적 있다. 집 근처 화방에 갈 때면 반드시 한 번에 하나만 산다고. 얼핏 생각하면 '한번 가서 많이 사놓지 굳이 왜 귀찮게...' 싶지만, 스스로 움직일 이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안 풀린다 싶으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 춥다, 미세먼지가 심하다, 집 근처에 산책할만한 곳이 없다, 시간이 아깝다... 내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댔던 모든 핑계다. 댈 핑계도 사실 몇 가지 없다. 음쓰봉(음식물 쓰레기봉투)이라도 사러 나가라. 단 10분이라도 좋다.


5. 본인과 밀당을 잘해라.

스스로에게 부과한 업무를 잘 지켰다면, 마땅한 보상을 줘라. 오늘 어디까지 쓴다, 몇 페이지 쓴다는 푸시를 하고 스스로 지켜냈다면 이에 걸맞은 매력적인 보상이 있어야 한다. 보상은 시시해선 안된다. 나는 먹는 것에 무척 관심이 많아서 늘 머릿속에 먹고 싶은 메뉴, 가보고 싶은 식당 폴더가 있다. 보상의 대부분은 이 폴더에서 꺼낸다. 먹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조리법이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스스로에게 만들어주고, 아무리 멀고 먼 식당과 디저트 가게라도 반드시 시간 내서 간다.


6. 질이 안되면 양으로 승부해라.

이건 개인 성향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고급을 따지지 말고, 질이 안되면 양으로 승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것만 보고 집중해서 한 시간 해야지. 지금 너무 피곤한데 30분만 자고 해야지. 해봐서 알겠지만 잘 안된다. 질이 안되면 양으로 승부하는 습관을 들여라. 집중이 안되고 딴짓을 하고 싶어도 책상에 앉아서 해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면 두 시간은 움직이지 않겠다는 기개가 필요하다. 때론.


7. 프리 랜서의 뜻을 마음에 새겨라.

프리 랜서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앞에 free만 보고. 뒤에 lance는 보지 않는다. lance는 긴 창을 뜻한다. 자유롭게 긴 창을 쓰는 사람. 즉 용병이다. lance는 자기 무기다. free만 꿈꾸면서 창을 갈지 않는 사람은 수입도 free다. 회사원이 아니라고 해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회사 밖에서 일을 할 뿐이다. 스케줄 관리가 어렵다면 일반 회사원처럼 하루를 시작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9시에 책상에 앉아라. 12시에 밥을 먹어라. 퇴근 시간 역시 스스로 정하고, 퇴근하라. 주말근무와 야근도 감내해야 한다.


8. 자기를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말라.

글을 쓰다 보면 '그분'의 강림을 기다리게 된다. 미리 귀띔도 하지 않고 그분이 불쑥 오시는 날엔 신이 나서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지만, 하염없이 머리만 쥐어뜯으며 모니터를 보는 날이 더 많다. 뒤늦게 발견한 자신의 천재성어깨뽕이 하늘만큼 솟을 때도 있고, 나 같은 게 무슨 책을 쓴다고 싶어 자괴감에 찌들 때도 있다. 마음이 뭐라고 지껄이든 그냥 하면 된다. 그분이 오든 안 오든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 자기를 스스로 평가하지 마라. 어차피 정확하지도 않다.


9. 데드라인정해라.

대부분의 사람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제야 요란을 떤다. 그렇다면 '발등의 불'을 스스로 지피는 것도 아프지만 좋은 방법이다. 지금 이 글도,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라는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몇 주를 현재 진행 중이다가 갑자기 이렇게 필사적으로 마무리를 하는 중이다. 단기적인 마감이 있다면 굳이 스스로 데드라인을 정할 필요가 없지만, 긴 호흡의 원고라든가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라면 데드라인을 정하는 게 좋다. 나의 경우에는 매주가 가장 좋았다. 지난해 여름에 나 포함 두 명이서 시작한 글쓰기 모임도 지금은 멤버가 셋으로 늘었고, 모두 데드라인을 지키며 성실히 글쓰기를 하고 있다. 주 1회 1편 쓰기로 시작했지만 멤버들 모두 글쓰기에 어느 정도 습관이 잡혀서, 현재는 주 3편가량을 쓰기도 한다.


10. 세 가지를 갖춰라.

프리랜서를 꿈꾸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돈, 그리고 체력이다. 회사원은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번다. 즉 시간과 돈을 맞바꾸기에 시간이 없을수록 돈이 있다. 어떠한 프리랜서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프리랜서에게는 돈과 맞바꾸지 않는, 즉 '돈 안 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려면 돈 안 되는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얼마간의 돈이 응당 있어야 하고, 돈 되는 시간과 돈 안 되는 시간을 모두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당신이 프리랜서를 꿈꾸든, 꿈꾸지 않든, 그 무엇을 하든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이니까요. 모두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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