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미루고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하러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펜과 함께 받아 든 설문지 중 한 항목은 "부모, 형제, 자매 중에 다음 질환을 앓았거나 해당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가 있으십니까?"였다. 2년 전에 이런 항목이 있었던가? 모든 일은 제 것이 될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암에 동그라미를 쳤다.
오후엔 남동생이 전화가 와서 엄마 핸드폰을 이제 없애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조금 더 있다가 정리하겠다고 답한 뒤, 며칠 만에 엄마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제자로 단체 톡방에 카톡이 하나 와있었고, 나는 아차 했다. 엄마의 가장 오래된 모임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올해 봄에 낸 책에는 엄마의 모임에 대한 소개를 해두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소개했던 독서 모임이었다. 1년에 한 번 정도 모이는 모임이라 서로 연락이 뜸했는지, 카톡에는 "언니들, 잘 지내지? 얼굴 봐야지요. 가을이 가기 전에..."라는 글이 있었다. 나는 그들 중 얼굴을 본 적 있는 분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엄마 핸드폰 정리하는 중에 혹시나 엄마 소식을 모르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몇 시간 뒤에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고,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어요..."라는 말을 하면서 또 울었다. 엄마가 언제부터 아팠는지, 어떻게 아팠는지, 평소에 엄마가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하던 사람이었는지, 프랑스를 함께 다녀왔으며 왜 다녀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수화기 너머에서도 나와 같이 계속해서 울었다.
엄마가 어디 계시냐는 말에 나는 주소와 사진, 그리고 조금 엉성한 약도를 그려서 보냈다. 엄마를 아끼는 분들이 엄마를 찾아 기도해 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 때문에, 찾기 쉬운 곳에 엄마를 모셨는데 새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산속에 모셨으면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 거다. 그분은 통화를 끝내면서 "엄마가 지현이 책 나올 때마다 좋아하셨는데... 앞으로 책 나오면 꼭 알려줘요"라고 말했고 나는 "다음 책은 엄마와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쓸 거예요"라고 답했다. 이렇게 여기저기 말을 뿌리고 다니면 그 말이 나를 꽁꽁 묶어서 책상 앞으로 데려다 놓겠지. 기어코 책을 쓰게 하겠지. 나는 엄마의 삶과 마지막 여정에 대해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나의 뜻과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닐 거라는 것도 안다. 엄마가 곁에서 도와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