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털어내지 못한 피로를 그대로 짊어지고 토요일 아침부터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귀찮음을 꾹 삼키고 도착해 재료와 레시피를 쓱 훑어보니 단순하다. 에이... 오늘 수업 빠질걸 그랬나. 이렇게 주말에 시간 내서 나왔는데 좀 더 근사하고 어려운 걸 배우고 싶단 말이다! 사찰요리의 정수라던가, 비기라던가, 아무튼 뭐 그런 것들. 알량한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오늘 수업은 간단 그 자체, 마와 콩을 섞은 반죽을 튀겨내면 끝이다.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네댓 명이 조를 지어 요리 하나를 만들기 때문에, 달리 거들 일도 없어 다른 이들이 마를 다듬고 콩을 삶는 걸 뒷짐 지고 지켜봤다.
'혼자서도 충분히 하겠네. 할 것도 없는데 이따가 먹기나 해야겠다.'
멀뚱멀뚱 서있으려니, 손 빠른 누군가가 그새 마와 삶은 콩을 버무려 반죽까지 만들고는 튀기기 시작했다. 한눈에 척 봐도 주부 만렙에 빛나는 초고수. 날렵한 솜씨로 솥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녀의 젓가락 끝에서 금세 노릇한 튀김이 바사사삭-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기름 표면 위로 퐁 떠올랐다. 당신을 튀김 장인으로 임명합니다. 장인의 젓가락 끝에서 그날따라 유난했던 나의 피로도 함께 튀겨진 걸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튀겨보기라도 해야겠다싶은 생각이 잘 익은 튀김처럼 퐁 떠올랐다. 장인의 젓가락을 건네받고 솥 앞에 섰다. 세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튀길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건네받은 느낌이다. 흐압!
풍성한 맛을 내는 마콩강정
비장의 젓가락과 함께 처음엔 자신만만했던 내 얼굴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일그러졌다. 어느새 인상을 팍 쓰고 있는 내 곁으로 튀김 장인이 다가왔다.
"한 숟가락에 여러 재료가 조화롭게 담기도록 해봐요."
"한 번에 튀기려 하지 말고 반죽 아래를 먼저 동그랗게 튀기고, 그 위에 반죽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올려요."
난생처음 받아보는 일대일 튀김 튜더링, 튀김 장인의 말을 따라 스텝 바이 스텝. 처음에는 자꾸만 옆으로 퍼지던 튀김이 점차 예쁘고 동그랗게 자리를 잡는다.
"간단하게 보였는데 쉽지 않네요." 머쓱한 얼굴로 웃었더니 "세상 일이 간단한 게 어디 있겠어요."인생 장인의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마와 콩, 땅콩만으로 만든 강정을 한 입 베어 물자 세상에! 마의 촉촉함, 땅콩의 고소함, 콩의 단단한 식감이 어울려 풍부한 맛을 낸다. 척 보기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맛조차 시시할 것이라 가늠했는데 안 먹었으면 큰일 날 맛이었다. 휴, 오길 잘했다.
세상 모든 것을 날마다 새롭게 보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부러워하면서도 이미 어른이 된 지 오랜 나는, 이제 다시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뭐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뭐가 저렇게 신이 날까? 세상 곳곳에서 마주친 어린아이의 시선을 슬며시 따라가 보지만 기껏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빗물 고인 웅덩이에 발을 담갔다 빼는 게 뭐 그리 신이 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들은 '쓸데없어 보이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어른은 '쓸데 있어 보이는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노력이 곧 돈이 된다. 어른이 된 지 오랜 나는 살면서 쌓은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율을 얻고 실패 확률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한다. 어느 정도 노련함이 쌓이기도 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접 경험하는 것은 이미 여러 번 해본 데다, 더 이상은 실패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삶의 모든 방면에 '최소 투자, 최대 효율'의 공식을 대입하고 있다는 거다. 해보지도 않고 이미 시시해하고, 경험하지 않으려 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하고, 지레짐작으로 하고, 속단하고, 오해하고... 이대로 흘러가면 어떤 사람이 될까? 나는.
강정을 입 안 가득 넣고 천천히 씹으면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음미했다. 경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너무나 심플한 진리를 몸으로 느끼면서. 아이돌 그룹 유키스 U-KISS가 '내가 그렇게렇게 만만하니 그렇게 모든 게 다 만만하니 하!' 하고 노래를 부른 게 벌써 10년 전인데, 아직도 만만한 게 많으니 큰일이다. 놀라운 세상을 그저 내 판단으로 스쳐 버리진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