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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ug 29. 2019

#5. 이 거지 같은 설거지

유년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동화책 한 권을 펼치자마자 내 운명을 직감했다. 아! 이건 내 얘기구나, 나는 커서 이 동화 속 주인공이 되겠구나! 마치 누군가 내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페이지마다 내 운명이 넘실거렸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동화 속 주인공은 미모의 공주도 아니고, 세계적인 과학자도 아니고, 오지 탐험가도 아니고, 전설의 마법사도 아니었다.


동화 속 주인공은... 설거지하는 걸 너무 귀찮아하는 사람이었다. 설거지하는 걸 너무 귀찮아해서 온갖 그릇을 다 꺼내 쓰고 쌓아둔 뒤 급기야 화분에까지 밥을 덜어먹고는, 옆집에도 그릇을 빌리러 다니다 결국 그릇이 집안에 너무 많이 쌓여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집안에 그릇이 점차 쌓여갔다. 마침내 천장까지 그릇이 쌓이다 못해 열어둔 창문으로 그릇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다. 나는 조용히 책을 덮었다. 흠, 어른이 되면 내가 살 집의 창문은 없애는 게 좋겠어. (앞으로는 설거지를 미루지 않고 해야겠다와 같은 건설적인 생각을 할리가 없다.)



노예 9년


많은 사람들이 '설겆이'로 잘못 쓰기도 하는 설거지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눈 설雪에 '거지'가 붙은 합성어로, 눈 쌓인 엄동설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오는 거지와 같다고 하여 설거지라는 이름이 붙었을 리가 결코 없지만, 동화책이 마치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개수대에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눈물로 벅벅 씻노라면 "아, 이 거지 같은 설거지!"라고 이 연사 목놓아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노예... 아니, 자취 9년.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설거지와 빨래를 해왔다. 양말부터 이불에 이르기까지, 세탁소에 꼭 맡겨야 한다고 라벨에 적혀있는 울제품부터 모시에 이르기까지! "도비는 자유예요!" <해리포터>에 나오는 집요정 도비는 주인집 노예생활을 청산하며 자유의 몸이 되지만, 도비는 알고 있었을까? 본인 빨래와 설거지만으로도 힘에 부친다는 걸, 이건 놓여날 방법도 없다는 걸 말이다. 오죽하면 오랫동안 내 글을 읽은 누군가는 "니 글에 90%가 설거지랑 빨래 이야기야."라고 촌천살인의 코멘트를 달아주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애니메이션 <모래요정 바람돌이>에 얽힌 기억도 있다. 워낙 오래된 애니메이션이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모래요정 바람돌이는 하루에 한 가지씩 소원을 들어준다. 아주 어렸을 때 본 거라 다른 소원은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소원이 하나 있다. 바로 하얀 천 하나를 머리에 덮어쓰고 입고 싶은 옷을 상상하기만 하면, 짜자잔! 하고 하얀 천이 예쁜 옷으로 변하는 거다. 저거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패션잡지는 섭렵하고, 예쁜 언니들의 화장법을 따라 하며 패피가 되기 위한 남다른 떡잎을 자랑했던 건 아니다. 옷에는 별 관심도 없었는데, 마치 홈쇼핑 광고를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사람마냥 저거 하나면 빨래가 너무 쉬워지겠다는 주부의 심리가 작동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집안일의 많은 몫이 내 차지였던 것도 아니었는데, 유독 빨래와 설거지에 포커스가 맞춰진 걸 보면 어릴 때 난 이미 내 운명을 직감했던 거다. 장차 커서 자취생이 될 거라는 걸, 설거지와 빨래의 무한 루프 속에서 살 거라는 걸.



천천히 빨리 해


집에서 뭐 한번 해 먹을라치면 요리도 요리이지만, 사실 준비 과정과 후처리에 들이는 시간과 품이 상당하다. 신나게 만들고 맛있게 먹고 나면 두통이 몰려온다. 저 많은 설거지를 어떻게... 이를 악물고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에 눈처럼 허연 거품을 잔뜩 묻힌 뒤, 거품 속에 숨어있는 눈빛이 형형한 거지를 떠올리고는 나지막이 거지를 소환한다. "이 거지 같은 설거지!!!" 설거지를 시작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랄까. 뿌득 뿌득, 그릇에 거품을 묻히면서 온갖 상념이 올라온다. 설거지는 자가 증식하는 게 아닐까? 왜 분명 개수대에 그릇 두 개를 넣었는데, 금세 열 개로 불어났을까? 개수대를 깔때기처럼 끝이 뾰족하게 만들어서 아예 그릇을 쌓을 수 없게 만들면 어떨까? 그럼 나 같은 사람들도 바로 설거지를 할까?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나도 그릇 말고 바나나 잎사귀를 써볼까? 아, 환경이고 뭐고 그냥 일회용 접시 백장 사? 이건 또 왜 이렇게 안 닦여! 취미가 요리라는 내게 많은 이들이 "사 먹는 게 더 싸요!" 충고하는 그 마음도 잘 안다. 예, 제가 그걸 몰라서 집에서 요리하는 건 아닙니다만...


"하면서 해."

요리 잘하는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다. 뭘 하면서 하란 말인가. '정리'하면서 '요리'하라는 말이다. 물론 머리론 알고 있지만 실천이 될 리가 있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수능 만점자의 모법답안과 같은 말이지 뭐. 그런데, 그런 내가 변했다.



사찰요리라고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가? 시간이 멈춘듯한 정적과 여유로움이 어울릴 듯 하지만, 사찰요리를 배우는 현장은 흡사 경마장 같다. 다다다다! 도마 위를 누비는 칼솜씨가 현란하다. 야채를 주재료로 요리한다고 해서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일이다. 모든 조리법이 총동원된다. 다지고, 삶고, 굽고, 튀기고, 썰고, 말고, 빚고, 볶는다. 어느 날은 구절판을 배운 적이 있는데, 아홉 가지 야채를 모두 채 썰어서 각기 따로 볶아야 하는 데다 밀가루를 개어서 밀전병도 만들어 부쳐야 했다. 물론 플레이팅도 포함. 이 모든 걸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하니, 다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각자의 도마와 뜨거운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다다다다, 도도도도, 치지지직. 조리과정도 바쁘지만 중간중간 생기는 접시와 음식물쓰레기를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으면 요리에 들인 시간과 비슷하게 설거지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눈과 손이 매우 빨라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도 여간해선 설거지를 쌓지 않게 됐다. 요리하는 동시에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하고, 밥을 먹고 나선 바로 벌떡 일어나서 고무장갑을 낀다. 항상 뭔가가 그득하던 개수대가 어느새 말끔해지니 오히려 집에서 더 요리할 맛이 난다. 난 더 이상 설거지가 두렵지 않으니까. 


동화 속 주인공은 어떻게 됐을까? 천장에 닿다 못해 창문 밖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그릇을 결국 다 씻었을까? 옆집 그릇은 잘 돌려줬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개수대를 흘긋 보니 매우 깨끗하다. 아쉽게도 세탁기에 빨래는 며칠째 산처럼 쌓여있지만. 그 산이 점점 커지는 중이라 아무래도 빨래는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만나야 해결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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