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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05. 2019

#6. 미생물의 안부


"국수 삶은 물은 뜨거우니까 개수대에 바로 버리지 마세요."

국수 삶기를 막 마친 한 스님의 말. 보통 플라스틱으로 된 음식물 거름망이 녹을까 하시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어지는 말을 듣곤 국수 한 가닥이 구부러진 물음표가 되어 내 머리 위에 둥실 떠올랐다.

"뜨거운 물을 바로 버리면, 물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찬물을 섞어서 버려주세요."


미생물요? 싱크대를 소독할 목적으로 가끔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일부러 개수대에 들이붓곤 했던 나는, 미생물과 세균의 차이는 뭘까... 생각하면서 그 말을 웃어넘겼다. 스님도 참. 그런데 다른 스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같은 상황이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아니, 다들 미생물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거예요? 나만 나쁜 년이에요?



미생물도 걱정하면서 양파는 걱정 안 해?


사찰요리는 기본적으로 '불살생不殺生'을 원칙으로 한다. 내가 처음 배운 사찰요리는 한겨울의 김치만두였는데, 레시피 귀퉁이에 자그맣게 '생명 있는 자, 생명을 죽이지 말라.'라는 메모가 돼있다. 아마 그날 강의를 맡았던 어느 스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겠지.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다 보니 사찰요리는 자연히 채식과 맥락을 같이한다. 사찰요리를 배운다고 말하면 "머리 깎고 절에 가는 거 아니에요?"라는 웃기지 않는 농담과 더불어 꼭 듣는 질문이 있다. "스님들은 고기 안 먹죠? 근데 채소도 생명인데 채소는 왜 먹어요?"


처음에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다. 회사에서 주로 배달시켜먹던 샐러드 포장용기가 플라스틱에서 종이로 바뀌었을 때, "이 기업이 환경보호에 좀 더 신경 쓰는구나."하고 기뻐했더니 옆에 있던 친구가 "종이는 나무잖아. 나무를 파괴하는 거 아닌가? 이게 환경보호야?"라고 되물었던 적이 있다. 채소의 고통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친구의 질문을 받았을 때와 같은 당혹감이 들었다. 상대방이 지금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지를 모르겠고, 어떻게 들으면 또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기도 해서 도무지 반박할 수 없는 상황. 여러 번 이런 질문을 듣고 나니 마냥 피할 수도 없어서, 인터넷으로 채소의 고통에 대한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했다. 이런 질문을 나만 듣는 건 아닌지, 어떤 채식주의자소의 통점과 가지의 통점을 비교한 사진을 올려놓아서 나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가지는 통점이 없다.


가지도 엄연한 생명인데 고통을 못 느낀다고 해서 가지를 막 먹어도 된다는 논리는 불가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는 상대방이 정말로 '몰라서' 물어본다고 생각했다. 그 질문에 담긴 함의는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알았다. 채소는 왜 먹느냐는 질문을 길게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훗, 생명을 존중해서 동물을 먹지 않는다고? 그럼 식물은 왜 먹니? 그건 위선이야."


사람은 포식자다. 애당초 생명존중이 선과 악의 범주에 드는지도 의문이지만, 생명을 존중해 최소한 동물을 먹지 않는 것 가리켜 '위선'이라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만약 식물이 느끼는 고통이 동물이 느끼는 고통과 흡사하다면, 인간이 식물을 먹지 않고 물과 빛만으로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면, 그런데도 굳이 식물식을 고집하면서 "난 생명을 존중하니까!"라고 떠들고 다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를 가리켜 비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왜 '모든' 생명을 존중하지 못하면 그건 생명 존중이 아닌 것인 걸까. 인류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태양빛과 공기 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 그때야 인류는 비로소 생명존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일까? 100퍼센트가 아니면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1퍼센트라도 실천할 용의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물론 이것이 식물을 함부로 다뤄도 좋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식물도 당연히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식물에게도 그럴 확률이 높다. 다만 아직까지 인류는 식물을 섭취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가 없다...(중략) 문제는 이렇게 식물의 고통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식물 권리'를 염려하는 식물보호주의자는 없다는 점이다... 만일 진심으로 식물의 고통을 배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서둘러 비건이 되어야 한다. 식물을 가장 적게 죽이고, 식물의 고통을 가장 최소화하는 방법이 바로 비건식이다

김한민, <아무튼 비건>



스님,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요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습관처럼 개수대에 버리려던 매끄러운 내 손목 스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귓가에 "뜨거운 물 버리지 마세요."라는 스님의 목소리가 매미소리처럼 맴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녀석들이 이젠 묘하게 신경 쓰인다. 살다 살다 이제 미생물까지 걱정해야 하다니.


미생물에 대한 염려가 자연히 나를 채식으로 이끌었다. 시간이 갈수록 고기를 먹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고, 이렇게 불편 할바에는 이참에 나도 한번 해보자 싶었다. 나는 채식을 하기 비교적 쉬운 편에 속했다. 일단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생선과 해물은 원래 먹지 않고, 혼자 살고 있어 식단을 마음대로 꾸릴 수 있는 데다, 요리를 곧잘 하는 편이라 여러모로 채식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온몸과 마음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그나마 회식 때 한 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하는 고기도 안 먹겠다고? 자취생이?'

'영양부족으로 쓰러지면 어떡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거야. 나 같은 회사원은 사회생활도 해야 되는데...'

마음의 소리, 소리, 소리들.


채식 관련 책을 읽으면서 공부했다. 이해하고, 오해에 대해 바로 잡으려 하고, 요리 공부에 좀 더 매진하고, 관련 커뮤니티에도 나갔다. 못 먹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되려 고기에 대한 욕구가 강렬해질 때도 있었는데, 채식 모임에서 나의 이런 고민이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해 '아, 나는 채식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하고 더욱 무거워진 고민만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와 늦게까지 잠 못 이룬 밤도 있다. 요리 수업을 마치고 스님 옷자락을 붙잡고는 고기가 너무 먹고 싶다며 울상을 지은 적도 있다. "수행자와 도시인의 몸은 달라요. 몸이 필요로 할 땐 드세요."라는 대답, "채식으로도 충분합니다."라는 대답, "사찰요리가 완벽한 건강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대답도 들었다.


지금도 가끔 고기에 대한 욕구가 화산 터지듯 솟구칠 때가 있다. 어젯밤엔 꿈에 갑자기 족발이 나왔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잠에서 깨어 족발집 전화번호를 찾아봤다. 그래, 몇 년 전에 먹고 안 먹었는데 한 번쯤이야 괜찮지 않을까 하고.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게 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도 좋고 너도 좋자고 하는 일인데, 나 말고 채식하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 없던데, 나는 애당초 채식할만한 자질이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고개를 든다. 고기에 대한 욕구가 단순히 과거 식습관과 기억의 잔재인 건지 아니면 진짜 몸이 필요로 하는, 식물에서 절대 얻지 못하는 어떤 영양소가 족발에는 있는 것인지 어떤지. 이런 날엔 치즈나 계란을 먹는다. 각자의 몸과 처한 상황이 다르니 정해진 설루션은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나는 채식을 시도한 지 반년 정도 된 새내기이다. 겨우 채식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에 서서 발을 뺄까 말까 갈팡질팡 고민하는 경계인이기도 하다. 가끔이지만 강렬하게 치솟는 욕구에 시달리고, 번뇌와 고민으로 때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채식뿐 아니라 내가 발을 디민 어떤 세계든 나는 어쩌면 영원히 백 퍼센트는 되지 못할 수 있다. 시도만 하다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누군가가 고민 없이 매끄럽게 달려 나가는 길을, 나는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면서 서툰 한걸음을 내딛는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고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일 뿐, 나의 매 순간이 백 퍼센트가 아니라고 손가락질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완벽주의에서 벗어납시다> 원문을 매거진 취지에 맞게 리라이팅 하였습니다.

https://brunch.co.kr/@ringringstar/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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