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바이 룸"
작은 방이 있습니다. 방 안에는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있고요. 그녀는 7년전 이곳으로 끌려온 뒤로는 한번도 바깥세상을 보지 못했고, 그녀의 아들 역시 한번도 바깥세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아들을 낳았고 아들에겐 작은 방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이 방을 탈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7년동안 지루하게 갈망해 온 탈출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려 합니다. 다섯살 난 아들 때문이겠지요. 아들에게 언제까지고 이 좁은 세계만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루종일 TV만 들여다보는 아들에게 'TV속 세계는 모두 거짓말'이라는 거짓말을 영원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아들 덕분에 탈출의 구실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변화. 아주 작은 변화라도 결심하게 될 때는 반드시 동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동기의 뿌리는 바로 현실에 대한 날선, 그리고 낯선 인정입니다. 살을 빼겠다고 결심한다면 '뚱뚱한 나'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있어야 하고,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한다면 '행복하지 않은 나'에 대한 아픈 고백이 뒤따릅니다. 눈앞의 현실에 대해서 예리하게, 그리고 놀랄만큼 낯설게 인정할 수 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습니다. 당장 해내지 못한대도 관계 없습니다. 인정하는 순간 갈망은 시작되었고, 당신이 무언가를 해낼 때까지 지루하게 당신 곁을 맴돌테니까요.
그녀는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변화에는 인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녀는 우선 아들을 '인정'시키려 합니다. 왜 이 '안온한' 세계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야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아들은 그녀의 말을 도무지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엄마는 이 방에서 나를 몰아내려는건지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어렵기만 합니다. 이 방이 내 세계의 전부이고 '진짜'인데, 방의 바깥에 진정한 '진짜'가 있다는 엄마의 말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아들은 귀를 틀어막습니다. 바깥세상의 존재조차 몰랐던 아이에게 인정은 너무나 버겁습니다.
도무지 인정하려들지 않는 아이 때문에 그녀는 반짝 보였던 변화의 실마리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아이를 바깥으로 내보내야 탈출의 희망이 생기는데 도무지 나가려하지 않으니, 그녀는 맥없이 쓰러져 며칠을 침대 속에 고여 있습니다. 며칠을 끙끙대다 모든 것을 체념한 그녀에게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TV 속 동물이 진짜로 있는거야?" 아들은 마침내 인정하기로 합니다. 엄마가 말한 '진짜'를 믿어보기로 합니다. 인정하는 순간, 아들은 안온한 현실을 떨치고 바깥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바깥에는 어떤 일이 있을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만,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 소년이 자신의 첫번째 껍질을 깨는 순간입니다.
소년은 마침내 세상과 만납니다. '세상 모든 곳에 한꺼번에 TV를 튼 것처럼' 진짜 세상은 꺼지지도 않고 숨가쁘게 돌아갑니다. 엄마가 말한 '진짜'를 서서히 인정하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편엔 작은 방에 대한 그리움이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언제라도 작은 방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똑똑하고 용기있는 아들과 아들에게 따른 행운 덕분에 그녀는 마침내 구조되었습니다. 그녀가 7년간 줄곧 바라던 디데이가 마침내 온 것이지요. 그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토록 바라던 포근한 집, 따듯한 부모님, 풍족한 음식...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 제공되지만 그녀는 불행합니다. 그녀는 마침내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집에만 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많은 것들이 그녀를 아프게 할큅니다. 오로지 생존에만 매달렸던 7년의 시간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 부지런히 피어오릅니다. 남들은 다들 별탈없이 지냈을텐데 자신만 고통받은 것 같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자기 없이도 잘 살아온 듯한 부모에 대한 원망도 극에 달합니다. 아들을 굳이 방 안에서 키웠어야 했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자식에 대한 죄책감이 들어 괴롭습니다.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결말 이후'의 삶이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힙니다. 그녀는 마침내 자살을 선택하지만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녀는 바깥의 삶에 적응해야 합니다. '변화'해야 합니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바깥의 삶이 눈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하려면 일단 인정해야 하겠지요. 그녀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습니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자기 안에 켜켜이 쌓았을 상처를 마주할 자신이 없습니다. 누군가들을 향한 분노, 원망, 죄책감, 한 아이의 엄마이자 여인으로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꼭꼭 씹어 잘 삼켜야 하는데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은 잔혹한 형벌일 뿐이겠지요.
자살 미수로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아들은 자신의 긴 머리칼을 잘라 보냅니다. 평소 '힘의 상징'이라 믿었기에 한 번도 자르지 않았던 머리칼을 보냅니다. 머리칼을 받아든 엄마는 '이제 낫겠구나.' 싶었다고 병원에서 돌아와 아들에게 고백합니다. "나는 형편없는 엄마야." 죄책감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에게 아들이 다정하게 말해줍니다. "그래도 엄마니까."
아들은 엄마를 졸라 작은 방으로 다시 가봅니다. 다시 본 방은 뭔가 좀 다른 듯 합니다. 방이 줄어든 것 같아 여기저기를 뒤적여 자신의 흔적을 확인합니다. 옷장에 붙은 스티커, 엄마와 함께 키우던 화분, 장난감들... 그런 아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초조하고 불편합니다.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오랜 상처의 한가운데 서서 상처를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니. 그녀는 어서 이 자리를 피했으면 해서 그만 가자고 아들을 재촉합니다. 아들은 방 안의 물건 하나하나에 작별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문을 나서며 "굳바이 룸"이라고 자신의 첫번째 세계에 진정한 안녕을 고합니다. 아들은 그녀에게도 방에 작별 인사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녀도 비로소 "굳바이 룸" 하고 작게 중얼거려 봅니다. 고통과 눈물 뿐이라고 생각했던 7년의 시간에 대고 "잘 있어, 안녕." 하고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게된 것이지요.
아들은 엄마를 두 번 구했습니다. 아들로 인해 그녀는 두 번이나 변화를 꾀했습니다. 첫번째는 물리적인 변화, 그리고 두번째는 심리적인 변화입니다.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녀는 아들 덕분에 똑바로 바라보았고 인정해야만 했고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꾹꾹 눌러온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고, 괜히 꺼내보면 생채기만 더할 뿐이라 모른척하고 지냅니다. 가능하면 평생 잊어버리고 살면 좋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용기내어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것을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주 작은 변화라도 결심하게 될 때는 반드시 동기가 필요'합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등을 떠밀 수는 없습니다. 그대 스스로 일어날 어느 날이 있습니다. 두려워서 터져나오는 눈물을 꾹 삼키면서도 그대의 발로 일어날 어느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저는 그 동기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한 사랑이든, 타인에 대한 사랑이든, 삶에 대한 사랑이든 당신의 가슴 속에 부드럽고 뜨거운 무언가가 피어오를 때, 그 때 당신은 비로소 일어나 움직이겠지요.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아프고 힘들어도 마침내 당신 안의 '진짜'를 만나기를, 그래서 당신을 붙들었던 과거에 진정한 안녕을 고할 날 오기를 고요히 응원하겠습니다.
"굳바이 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