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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18. 2019

#14. 딸아, 개종은 안된다!

보이차 밥



오소서, 창고 대개방 


레시피에 적혀있지 않은 스님들의 깨알 팁이 대방출될 때가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재료, 같은 재료를 가지고 응용할 수 있는 색다른 요리법, 재료를 다루는 스님만의 노하우까지... 그야말로 창고 대개방이다. 창고 대개방의 승자는 빠른 손놀림을 겸비한 자! 이런 날엔 한 손으로는 주걱을 들고 부지런히 재료를 볶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받아 적기 바쁘다. 주부 짬 20년, 30년의 베테랑들은 쏟아지는 깨알 팁에도 '아하, 으흠' 하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지만, 나는 필기가 없으면 복기가 어려운 초보이기 때문에 깨알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줍는다. 지난봄, 쑥떡을 배운 날엔 쑥으로 할 수 있는 온갖 레시피가 다 방출됐다. 쑥전, 쑥죽, 쑥 비빔장, 쑥밥, 쑥 수제비, 쑥칼국수... 떡을 치대는 틈틈이 급하게 받아 적은 걸 집에 돌아와 컴퓨터로 옮기니 A4 한 장 분량이었다. 헉헉.


썩 어울릴 것 같지 않거나 처음 듣는 희한한 조합인데, 집에 가서 스님이 일러준 대로 해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게 되는 일이 많았다. 먹다 말고 한숨을 쉬며 "아니... 이런 맛을 여태 혼자만 알고 계셨나요!" 하고 부러움과 애석함이 뒤섞인 외마디를 허공에 뱉곤 했다. 스님들의 깨알 팁을 받아 적을 때마다 기발함과 다양함에 놀랐지만, 놀라운 가운데 제일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스님은 대체 이걸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도대체 이 조합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발상의 근원, 창조의 원천이 무척 궁금하고 부러웠다. 간단하지만 내게 작은 놀라움과 큰 기쁨을 선사한 메뉴 중 하나가 바로 보이차 밥이다. 엄마와 함께 들었던 수업에서 보이차 밥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천주교 신자의 사찰요리 체험기


내가 처음에 사찰요리를 배운다고 했을 때, 엄마 입에서 대뜸 튀어나온 한마디는 "야! 개종은 절대 안 된다!"였다. (아니, 엄마도 절밥 맛있다고 종종 절에 가면서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알 순 없었지만.) 외할머니도, 엄마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몰아치나 주말이면 빠지지 않고 성당에 가는 착실한 신자였던 반면, 나는 일요일 낮까지 뒹굴거리면서 "꼭 성당에서만 신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야."라는 능청스러운 말로 등짝 스매싱을 획득했다. 그런 내가 주말마다 부지런히 사찰요리를 배우고 있다고 하니, 엄마 입장에서는 그 발걸음을 성당으로 돌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 거다. 내가 듣는 수업이 어떤 건지도 보여드리고 싶었고, 엄마와 함께 요리하는 기분이 궁금하기도 해서 코끝이 오슬오슬해지는 늦가을 무렵, 사찰요리 수업에 엄마를 초대했다. 엄마는 기꺼이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물에 버섯과 은행, 밤을 넣고 보이차 밥을 짓는다. 엄마도 "30년 넘게 똑같은 밥만 지었지, 보이차 우린 물로 밥 지을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데이!"하고 놀랐다.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 유학할 때 별 희한한 음식을 다 구경했지만, 보이차에 밥을 말아먹는 건 못 봤다. 일본에 녹차에 밥을 말아먹는 오차즈케라는 메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중국에선 왜 보이차에 밥을 안 말아먹을까? 세상 맛있는 건 싹 다 찾아먹는 중국인들인데 보이차에 밥을 안 마는 걸 봐서 맛없는 게 아닐까. 밥을 지으면서 결과물이 내심 걱정됐지만, 냄비 바닥싹싹 긁어 누룽지까지 해먹을 정도로 밥맛이 좋았다.


일주일쯤 지나 엄마가 "보이차 밥 대히트!"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날 배운 대로 보이차 밥을 만들어 성당 사람들과 나눠먹었는데, 사람들이 남은 밥도 다 싸가는 바람에 남은 게 없다는 엄마의 즐거운 목소리였다. 물론 그 뒤로 개종에 대한 엄마의 염려는 쏙 들어갔고, 오히려 가끔 주말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 "이번엔 뭐 배웠노?"하면서 메뉴와 레시피를 궁금해하다. 그때마다 약 올리는 용으로 최대한 맛있게 나온 사진을 보내드다.



엄마, 난 아닌 것 같아


누군가가 스님들의 요리를 칭찬하면, 약속한 것처럼 으레 따라 나오는 대답이 있다. "저는 셰프가 아닙니다." 이 말을 가만 생각해보면 스님들이 '오늘은 내가 사찰요리에 한 획을 그어보겠다!'하고 미스터 초밥왕같이 비장한 각오로 요리에 임했을 것 같진 않다. 그저 사찰요리의 기본 정신에 충실한 것 아니었을까. 재료를 알뜰히 요리해야겠다, 감사한 마음으로 허투루 버리지 않겠다 하고. 보이차 밥도 보이차를 우려먹고 남은 찌꺼기가 버리기 아까우니, 모아서 우려내 밥물에라도 써보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가수 양희은 씨가 "노래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에 "돈 벌려고요."라고, 이보다 명쾌할 수 없는 답변을 날린 것처럼.


뭔가 대단해 보이는 것, 그럴싸해 보이는 것의 출발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끙끙거리는 날엔 희한하게 잘 안되는데, 별생각 없이 툭 한 게 결과가 훨씬 좋았던 때도 다들 한 번씩 있을 거고. 엄마가 나를 아기 때부터 성당에 데리고 다니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양성하려고 애썼지만, 잘 안된 것도 같은 맥락이려나. 엄마, 보이차 밥이나 한 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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