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요리를 배우다 보면 자주 놀란다. 먹는 사람을 참 많이도 생각한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요리는, 한 술 떴을 때 걸림 없이 숟가락에 온전히 담기고 한 입에 쏙 들어가기 알맞은 크기로 재료를 손질한다. 떡을 할 때는 먹는 사람이 목이 멜 수 있으니 물김치도 함께 내는 센스를 배우고, 주 재료의 성질이 찰 때는 성질이 따뜻한 양념을 곁들여 먹는 이의 몸을 보호한다. 처음엔 뭐 그렇게까지 신경 쓰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엔 완성된 요리를 먹어보고 혼자서 여러 가지 보완점을 궁리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내면 한입에 먹기 불편하겠네. 한번 더 잘라서 내면 보는 맛도 있고, 먹는 맛도 있겠다.'
'기름 때문에 접시가 금방 지저분해지니까 보기에 안 좋구나. 기름을 한번 빼거나 종이를 깔고 내는 게 깔끔하겠다.'
'날씨가 추워지면 이 재료 말고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요리를 완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먹는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까지 넌지시 생각하고 있다니. 서당개 삼 년 이펙트란 바로 이런 것인가! 그런 순간엔 스스로의 멋짐에 잠시 취했다.
된장은 아주 연하게 끓여놓을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사찰요리를 배우는 중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궁금해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해준 상대방이 고마웠다. 적어도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 중엔 처음이었다.(물론 취미가 사찰요리라는 사람이 꽤 특이하고 흔하지 않은 건 알지만). 사찰요리라는 키워드를 통해 채식을 하고 있는 나를 자연스럽게 유추한 사람도, 채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어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그 사실이 놀랍고 즐거워서 처음 만났다는 것도 홀랑 까먹을 만큼 신나게 떠들었고, 그날 우리의 대화는 카페 마감시간에 맞춰 겨우 끝났다. 처음 만난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철벽을 은근히 치는 편인데, 첫날부터 무장해제가 돼버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해진 계기가 있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첫날부터 부쩍 친해진 대화의 주인공은 현재 작은 식당을 하고 있는데, 여행지에서 잘 가려먹질 못해 속이 엉망이라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브레이크 타임을 이용해 속이 편한 식사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식당이 고기를 주 메뉴로 하고 있어 잠깐 고민하더니, 데친 야채를 듬뿍 먹고 싶다는 내 주문에 가게에 있는 야채를 데치고, 마침 시래기가 있다며 야채 데친 물에 된장을 풀어서 시래기 된장국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언제쯤 도착하니? 된장은 아주 연하게 끓여놓을게."라는 그 말이 왜 이렇게 따뜻한지, 가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줄곧 카톡의 그 문장을 곱씹어 읽었다.
마음의 태도를 배워요
좋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오래 안 갔다. 사소한 걸로 서로의 감정이 상했다. 나는 상대방이 별 것 아닌 걸로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고, 상대는 내가 배려나 존중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배려나 존중이 없다고? 나를 몇 번 봤다고 그런 말을 하나 싶어 마음이 상했다. 서로 쌓인 감정을 풀어보려 할수록 오히려 쌓인 감정이 배설될 뿐이었고, 대화에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처음 보자마자 물 흐르듯 술술 대화가 통하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결국 그 친구와는 말을 안 하기로 했다. 잠시가 될지 꽤 오래가 될지 모르지만.
오늘 수업에서 간단한 된장국을 끓이면서, 습관처럼 '어떻게 하면 먹는 이가 맛있게 먹을까'를 고민하다가 문득 제주도에서 돌아온 날 선물 받은 된장국이 생각났다. 문득 그 애가 그날 내게 만들어 준건 사찰요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은 채식을 하지도 않고, 고기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데도 그저 가진 채소를 가지고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려 주었다. 속이 불편하다는 내 말에 된장은 아주 연하게 풀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먹는 이를 참 많이도 생각한 밥상이었구나. 배운 적도 없지만 내게 사찰요리를 해준 거다. 꼭 스님한테서 배워야 사찰요리가 아닌데, 나야말로 사찰요리를 왜 그렇게 편협하게 생각했을까.
스님들이 수업을 마칠 때면 "집에서 꼭 다시 해보세요." 하고 말씀하신다. 요리 과정을 복기하며 몸에 익히라는 뜻도 있지만, 정성을 담아 음식을 만들면서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의 태도를 익히란 뜻도 담겨있을 거다. 이 글을 쓰면서 얼마 전에 그 애와 한 약속이 생각났다. 견과류를 듬뿍 넣은 사찰요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면서 발이나 콱 밟아버릴까. "마음의 태도는 충분히 익혔는데, 몸까지 아직 전달이 안됐네?"라고 눙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