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세 분의 레시피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스님들이 입을 모아 '깨끗이 다듬어 씻을 것'을 강조하는 주인공은 바로 냉이(이 드러운 녀석!). 냉이의 쌉싸름한 향기와 맛은 응용할 요리가 무궁무진하다. 튀겨서 강정을 해 먹어도 좋고, 만두로 빚어도 좋고, 전으로 부쳐도 맛있고, 조물조물 밑간 해서 김밥에 넣어도 별미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냉이 요리를 배우는 날엔 먹을 생각보다 눈 앞에 산처럼 쌓여있을 냉이를 다듬을 생각에 한숨부터 푹 나온다. 키를 높여 자라는 여느 풀과는 달리, 냉이는 땅에 납작 엎드려 추운 겨울을 나기에 유난히 흙이 많이 묻어있다. 씻어도 씻어도 흙물이 계속 나오고, 말라붙어있는 누런 잎은 또 얼마나 많은지 손으로 일일이 떼내야 한다. 수북한 냉이 한 바구니를 놓고 손질하다 보면, 도대체 이걸 먹겠다고 나선 최초의 인류는 누구인지 궁금해진다(찾아가서 따질 건 아니지만).
그날도 심각한 표정으로 냉이와 씨름하고 있었다. 냉이 뿌리에 붙은 흙덩이처럼 엉킨 내 마음을 들켰는지 스님이 입을 여셨다. "요리는 재료 손질이 반이에요. 귀찮아도 재료 손질을 잘해놓으면 백배는 맛있어요. 진짜 딱 백배." 어느새 손톱 밑에 새카맣게 낀 흙을 보면서 '백배까진 안 맛있어도 되는데...'하고 조용히 푸념했다.
과정에 흥미가 없으세요?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이렇게까지 꼼꼼해야 되나 싶어 한숨부터 푹 나오는 일이 내겐 냉이 다듬기 말고 또 하나 있다. 바로 기타 연주. 멋있는 곡 하나 치면서 폼 잡고 싶어 시작한 건데, 멋있는 곡은 도대체 언제 치나 싶게 진도가 더뎠다. 매주 음 하나하나를 겨우 뜯었다. '이렇게 손가락만 더듬거리다가 언제 제대로 된 곡 연주하나.' 싶은 생각뿐이었다(물론 연습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만).진도 나가기에 급급한 내 마음이 담긴 손가락에선 늘 '띠용'하는 경박한 소리가 났고(기타에서 이런 소리가?), 선생님이 수차례 지적해도 구부러진 엄지는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낙엽이 발끝에 사그락사그락 밟힐 때 기타를 시작했는데, 어째서 반년이 지나 봄이 오도록 기타 위의 손가락은 아직 이리도 부끄럽단 말이더냐. 오호라 통제라. 고민을 거듭하다 선생님께 수줍은 내 마음을 전했다. "선생님... 저 기타에 흥미를 잃었나 봐요." 나의 고백에도 선생님은 별 말없이 수업을 이어나갔다.
몇 주 뒤,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갑자기 물었다.
"여전히 기타에 흥미가 없으세요?"
한번 집 나간 흥미가 쉽게 돌아오지 않던 참이었다. 잠깐의 침묵에 창밖의 빗소리가 엉겼다.
"음... 선생님, 요리를 배울 땐 얼른 뭐라도 만들어서 먹어보고 싶잖아요. 아직도 음 하나하나를 배우니까 주방 구석에서 주야장천 파만 썰고 있는 기분이에요. 빨리 정성하 곡도 치고 싶고, 코코 주제가도 치고 싶은데..."
선생님이 조용히 답했다.
"물론 코드 외워서 곡 카피하면 실력이야 빨리 늘겠죠. 그런데 그 곡만 카피 잘하면 뭐해요, 악보를 못 보는데. 기타는 코드 짚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어떤 정서로, 어떻게 터치하고, 어떤 톤을 만들 건가... 그게 음악이에요."
한 음 한음을 '제대로' 칠 줄 알아야 그게 음악이라는 선생님의 대답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빗소리만 가득했다.
내가 냉알못이라니!
기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살 것도 없으면서 싱숭한 마음에 괜히 근처의 시장에 들렀다. 봄나물이 지천이었다. 그래도 수업에서 냉이며 쑥이며 좀 다듬어봤다고, 할머니들이 쭈그리고 앉아 내다 파는 나물들이 뭔지 다 알 것 같았다. 마치 막 글을 배운 아이가 신이 나서 거리의 간판을 쉴 새 없이 읽는 것처럼, 나도 시장의 나물들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했다. 게다가 이젠 냉이 다듬는 요령도 어느 정도 생겼고.
"할머니, 이거 하나 주세요."
나 이제 냉이 요리도 하는 여자야! 망설임 없이 냉이를 한 봉지 샀다. 집에 돌아와 냉이를 펼쳤더니 익숙한 그 향이 안 났다. 신선하지 않은 건가? 냉이 사진을 SNS에 올리며 '냉이에서 왜 향이 별로 안나지?'라고 썼더니 댓글이 달렸다.
"그건 달래인 거 같은데요."
봄철 내내 냉이를 몇 소쿠리나 다듬었으면서, 냉이랑 달래랑 구분도 못하는 냉알못('냉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라니. 허! 결과보단 과정이라고, 과정을 충실히 음미하는 사람이 되자고 줄곧 되뇌면서도, 내 눈은 늘 저 멀리 목적지만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바로 앞의 한 걸음부터 제대로 봐야 하는데, 헐렁한 마음을 다 들켰다.
"냉이 뿌리 잘 다듬으면 뭐해요. 냉이 생긴 것도 모르는데. 요리는 불 앞에서 볶고 튀기고 하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어떤 재료를, 어떻게 다듬고, 어떤 특성을 끌어낼 건가... 그게 요리예요."
갑자기 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지. 다가올 봄에도 열심히 냉이를 다듬어야겠다. 눈을 부릅뜨고 냉이의 눈코입을 다 살펴보면서. 물론 기타도 열심히 치면서... 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