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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31. 2019

#32.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친구의 첫 사찰요리


온라인

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음식 사진을 보고 친구들-주로 애기 엄마들-이 레시피를 묻곤 하는데, 간단한 요리라도 꽤 자세히 알려줘야 한다. 내 입장에선 라면 끓이는 것만큼 쉬운 표고버섯밥이라도 "밥물은 얼만큼이야?" "말린 거 써도 돼?" "몇 분이나 볶아?" "그냥 간장이야, 다른 간장이야?"등의 질문을 받으면, 이게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달까. 말린 표고는 불려서 쓰라하면 "얼마나 불려야 해?" 하고 버섯 불린 사진까지 보내오는데,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야, 네가 주부짬 몇 년인데 이것도 몰라." 하는 말이 훅 나간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요리실력이 덩달아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뱉어놓곤 민망해서 급하게 주워 담는다.


얼굴을 보고 곁에 서서 하나하나 일러주는 게 아니고, 오로지 글로만 레시피를 전해야 하니 최대한 꼼꼼하게 기록한다.<음식디미방>-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오래된 한글 요리책-을 기록한 장씨 부인의 마음이랄까.(물론 실력은 아니고 마음만!)손맛 좋은 장씨 부인의 곁에, 딸이며 며느리며 이웃 아낙들까지 죄다 몰려들어서 "엄마! 나 시집가도 김치 담아줄 거야?" "어머, 장씨. 이 나물은 어떻게 무친 거야?" "아범이 어머님이 끓인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는데, 장은 어떻게 담가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수시로 쏟아냈을 테니, 처음엔 조곤조곤 말로 해주다가 나중에는 아예 책을 한 권 써버린 부인의 기개란. 책 뒷면에는 자손들을 향한 경고문도 있다. '... 딸자식들은 이 책을 베껴 가되 가져갈 생각을 말며...' (시대를 막론하고 딸자식들의 마음이란 어쩜 이렇게 하나 같은지. 뜨끔했다.) <음식디미방>에는 몇십 가지 종류의 술 담는 법부터 과일 저장법까지 총망라되어 있으니, 요즘 시대였으면 인스타 팔로워 몇백만 명은 너끈할 부인이다.


아무튼 장씨 부인의 마음으로 꼼꼼하게 정리한 레시피를 한 명에게 주긴 아까우니, 해 먹고사는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전송한다. 인사치레로 고맙다고 하는 친구도 있고, 이토록 꼼꼼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레시피의 1mm 간극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퍼붓는 친구도 있다. 또다시 "네가 주부짬 몇 년인데 이것도 몰라!"라는 말이 나가려는 걸 간신히 붙들고, 친절하게 보충설명을 해준다. 이런 친구들이야말로 레시피를 실천에 옮기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이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일단 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레시피 이야기를 꺼낸다.

"전에 카톡으로 보내준 레시피 말이야, 그렇게 정리해주면 어떻게 알아. 더 자세히 정리해줘야지."

"그... 그런 거야?"

호의로 한 일인데, 왠지 미안한 마음부터 장착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스님의 레시피를 머릿속으로 더듬거리며, 나의 얕은 지식을 풀가동해서 그들의 집에 있는 식재료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때 입에 뭐라도 쏙 넣어주면 그들의 열정이 배가 된다.


그날의 주제는 표고버섯구이. 마침 사찰요리 수업을 막 마치고 나와 친구에게 주려고 챙겨둔 감자부각이 있었다. 일단 바삭한 감자부각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얼마 전 맛있게 먹은 표고버섯구이 레시피를 읊었다.

"집에 조청 있어?"

"아니."

"그럼 올리고당 써."

"얼마큼 써?"
"버섯 양에 따라서 조절하면 되지."
"그렇게 말해주면 몰라."

"그럼 고추장 두 큰 술에 올리고당을 한 큰 술 넣고..."

핸드폰 메모 앱을 켜고 열심히 받아 적는 친구. 감자부각을 우리만 먹을 순 없어서, 안면 있는 찻집 사장님께도 몇 개 맛보시라고 드렸더니 사장님도 너무 맛있다며 핸드폰에 레시피를 받아 적으셨다. 그날 찻집에 앉아 무려 서너 시간 동안 음식 이야기를 이어가다, 결국 친구 손을 잡고 표고버섯을 사러 갔다. 집에 도착한 그녀의 과정 사진과 질문이 실시간으로 계속 날아왔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여기서 얼마나 더 구워?"
그리고 마침내 표고버섯구이가 완성되었습니다. 데코레이션으로 부추를 살짝 올린 사진을 보니 웃음이 났다. 부추는 향이 강해서 표고버섯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마디를 보태려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보너스로 표고버섯으로 미역국 끓이는 법도 알려줬더니, 친구가 내일 해보겠다며 신이 났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의 최종 보스인 스님께 카톡을 보냈다.

"스님, 오늘 친구가 만든 표고버섯구이입니다!"

"아주 잘했어요. 널리 널리 전파해주세요!"
우리의 구호는 아자아자로 끝났다. 오늘은 두 명에게 사찰요리를 전파했다는 뿌듯함에 웃으며, 그동안 내가 사찰요리를 전파한(?) 이들을 손에 꼽아봤다. 사찰요리에 대한 글을 읽다가- 네, 지금 읽고 있는 바로 이 글입니다- 댓글이나 메일로 자세한 정보를 물어는 분들도 있고, 우연히 내가 만든 요리를 맛보고 배우기 시작한 분도 있다. 문득 이만한 다단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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