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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Mar 07. 2020

기부금 백만 원이 웃겨요?  

이미지 출처 : <나 혼자 산다>


나는 연예인에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들대로 연예활동에 충실할 뿐이고, 나는 나대로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연예인 누가 누구랑 만난다느니, 무슨 옷을 입었으니, 누구랑 어디에 여행을 갔다느니... 사실 그게 왜 관심의 대상인지도 모르겠다(나 같은 사람밖에 없다면 연예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성립이 안 되겠지만). 진득하게 좋아하는 배우 몇이 있긴 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건 그들의 필모다. 언제 연기를 시작했고, 어떤 작품에 출연했고,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 정도. 오죽하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러 갔을 때, 배우 김태리가 무대 인사 때문에 바로 앞에 서있었는데도 멀뚱멀뚱 보기만 했더니, 같이 간 친구가 나를 툭 치면서 "김태리야!"라고 작게 말했다. 물론 나는 "김태리가 누군데?"라고 대답했고...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야 아! 악수라도 청할걸! 싶었다.


아무튼 눈앞에 보러 간 영화의 주연배우가 서있는데도 못 알아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연예인 소식이 있다. 배우 이시언의 이야기인데, 나까지 알게 된 건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핫한 키워드인 코로나 때문이다.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데

배우 이시언이 일부 네티즌들의 조롱 섞인 '백시언'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기부 금액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해 여러 연예인들이 기부금을 내놓고 있는데, 이시언이 '고작' 백만 원을 내놨다는 게 그 이유다. 얼마 전, 친구가 아파트 전세를 몇 억에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처음에 한 말은 "그 가격에 그 정도면 싸네."였는데, 곧바로 뱉은 말을 주워 담으며 깔깔 웃었다. "야, 그게 싼 거냐? 내가 말해놓고도 내가 웃긴다. 평생 벌어도 못 벌 꺼 같은데. 와... 나 많이 컸네."


백만 원은 큰돈이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선뜻 백만 원을 내놓을 수 있는가?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시언이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보다 수입이 많을 거라는 이유로, 백만 원을 내놓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에 기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수두룩하다. 굳이 이시언의 인스타그램까지 찾아가 '고작' 백만 원을 기부하냐고 조롱의 댓글을 달았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만원 한 장 기부해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연예인에 대한 악플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어, 최근 네이버에서는 연예인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조치했건만 굳이 찾아가서 욕을 하는 그 심리는 뭔가). 혹시 조롱하는 이들 중에 '나는 너보다 더 많은 금액을 기부했는데, 너는 왜 연예인이면서 그것밖에 안 하냐'는 뉘앙스가 있었다면, 나는 그의 기부금액이 얼마건 '기부'의 원래 뜻부터 숙지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기부는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이다. 기부를 통해서 능력과 마음 씀씀이를 증명하고 싶다면, 차라리 언론매체에 광고비 얼마를 내고 인터뷰 하나 하는 게 빠르다. 잘 써준다. 기부의 참뜻을 흐리는 건, 기부 금액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부 금액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려는 이상한 잣대다. 이 잣대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걸까.



낄끼빠빠 합시다 좀

잣대를 꺼낸김에 좀 길게 늘여보겠다. 나는 작년에 동물 존중의 의미로 채식을 시작했는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이거였다. "채소는 생명 아니야?" 처음 들었을 때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건 아주 명백한 조롱이다. 나도 채식이 처음인 데다, 그동안 몰랐던 동물 처우 실태를 알게 되면서 고기를 줄이다가 안 먹기로 결심한 것뿐이다(올해부터는 가끔 먹는다). 그들의 조롱을 질문이라고 받아들였을 때의 내 대답은 "채소는 고통을 느끼는 통점이 없고, 동물은 있고..."였다.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려 애썼다. 지금은 안다. 조롱에는 어떤 논리도 필요 없고,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나에게 "채소는 생명 아니야?"라고 묻는 사람은, 고기를 줄여보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가져봤을까? 고기도 생명이고 쌈 싸 먹는 상추도 생명이니 그냥 한 번에 맛있게 먹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제는 제대로 답할 수 있다. "동물도 생명이고 채소도 생명이지. 그러면 넌 그 생명을 조금이라도 위하는 행동을 해봤니? 해보고 말하는 거니?"


부끄럽지만 나도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있다. 몇 년째 다이어트를 반복하는 친구가 있는데, 수영을 시작하고 한 달에 세 번 갔다는 그 말에 픽 웃었다.

"야, 그렇게 해서 무슨 살을 빼. 수영장에 기부금 내니?"

"... 이렇게라도 가면 안 되는 거야?"
친구의 대답을 듣고 아차 했다. 그 사람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건데 내가 뭐라고 거기에 토를 다나. 왜 다이어트에 대한 완벽한 그림을 그려놓고-예를 들면 주 3회 유산소, 1시간 이상- 친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웃었던 걸까(심지어 나는 수영할 줄도 모른다).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야 느꼈던 내 감정을, 아마 그때 친구도 느꼈겠지.


내친김에 연예인 얘기를 하나 더 하자면, 배우 이하늬가 영화 <기생충>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참석했다가, 네티즌들의 욕을 먹고 급기야 사과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출연하지도 않았으면서 네가 왜 끼냐'는게 욕의 주 요지다. 마침 근처에 있다가 초대받아 간 사람에게 왜 그리 욕을 하며, 이하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사과를 해야 했는지도 아리송하다(그녀 본인도 아리송했을 거다).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다. 낄 덴 끼고 빠질 덴 빠지라는 건데, 두 연예인을 둘러싼 논란만 봐도 참 많은 사람들이 '낄 덴 안 끼고 빠질 덴 안 빠지는'구나 싶다. 누군가의 기부금 액수를 조롱할 에너지가 있으면, 차라리 액수에 관계없이 마스크 한 장이라도 기부하는 편이 남에게나 나에게나 훨씬 도움이 될 거다. 축하할 자리가 있다면 이하늬처럼 함께 껴서 축하하는 게 더 좋지 않겠나. 좋은 일, 남을 돕는 일, 축하할 일엔 같이 끼고 괜히 애꿎은 남 탓하고 비난하는 일엔 좀 빠지는 태도를 길렀으면.


혹시 이시언 씨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만원도 안 낸 사람들이 하는 말에 부디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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