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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pr 12. 2020

치고 나가 볼랍니다    

내가 그린 그림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시작했다. 토요일이면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앞에 놓인 사물을 바라보며 종이에 옮긴다. 눈으로 본 것을 손을 통해 종이로 옮기는 단순한 과정인데도, 이 잠깐의 찰나에 얼마나 많은 해석이 들어가는지. 경계하지 않으면 어느새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리게 된다.


그림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그림이랑 글이랑 무슨 상관이냐, 궁금해할 분들도 있을 텐데 이건 순전히 나의 글쓰기에 해당하는 방법이니 권하진 않는다. 글에 대해 내가 해온 일이라고는 읽고 쓴 것 밖에 없어서(그게 전부인 것 같기도 하지만), 실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아는 작가님께 "저 글쓰기 수업 들을까요?"하고 물은 적이 있다. "절대 듣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 쓰세요"라는 대답을 듣고는 살짝 의심을 하며 일단 그 말을 따르기로 했는데, 책을 준비하느라 매일 문장에 매달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답을 저절로 알게 됐다. 고작 몇 개월 전에 쓴 글인데도, 지금의 글과 놓고 보면 나중에 쓴 글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게 보였다. 문장이 좋아졌다 싶어 뿌듯한 동시에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서늘했다. 몇 개월 만에 글이 달라진 건 글쓰기 실력이 늘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몇 개월 전보다 단단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장을 만지는 줄 알았던 시간은, 실은 세상에 내보낼 내 목소리에 힘을 싣는 과정이었고 덕분에 나라는 사람에게 조금씩 힘이 붙은 거다.


"한 문장에는 그 사람이 다 들어있어서, 여기 저 짜깁기 한들 금방 티가 납니다. 얄팍한 기술로 포장하려고 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세요. 그러면 문장에도 묻어납니다."

지난 여름의 대답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렇게 내 맘대로 알아듣는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글을 쓰려면 지금의 내가 어떤지 알아야겠다. 시간을 견디면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엔, 연필 하나 들고 빈 도화지 앞에 앉아있는 것만큼 딱인 일도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시작과 동시에 다 들켰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요

왜 나만 빼고 다들 잘 그릴까. 애꿎은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하면서 연필을 잡고 끙끙거리다 수업이 끝났다. 매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수강생의 좋은 작품을 골라 소개해주는 명예의 전당-내 맘대로 이름 붙인 거긴 하지만-에 나만 한 번도 못 올라갔단 말이다. 나는 열등생이야. 흑흑. 왜 돈과 시간을 써가며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걸까. 인생 쉽게 살 수 있어, 때려치워! 다들 떠난 강의실에서 시무룩한 얼굴로 주섬주섬 가방을 정리하는데, 그런 내 얼굴이 맘에 걸렸는지 선생님이 떠나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섬세하세요. 남들보다 더 자세히 보려고 하고, 더 많이 표현하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그림은 그러면 안되거든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라고 하셔서 그렇게 한 건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건 맞는데, 과감하게 치고 나가야 해요. 그리는 스타일을 보면 생각이 너무 많아요. 전체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가 꽂히는 것만 보고 그리는 느낌?"

"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그림에 다 나와있는데)

"생각이 너무 많으면 자기 덫에 자기가 걸려요. 여기도 섬세하게 저기도 섬세하게 그리다가, 나중에 전체를 놓고 보면 이도 저도 안 되는 거죠. 청소 시작했다가 서랍 안에 있는 것들 다 끄집어내서 들여다보느라 더 엉망 되는 거. 그거예요."

"어! 저 그렇게 청소하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림에 다 나와있다니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그렸는데! 아무도 안 알아줍니다. 그림은 0.5초 만에 휙 보여주고 지나가는 거예요."

"제가 글을 써서 그런가... 생각이 엄청 많은데 어떡하죠. 전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닌데. 생각만으로도 너무 힘드네요."

"훈련하다 보면 글에도 분명히 드러날 거예요."


이렇게까지 친절한 조언이라니.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시무룩했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림을 시작할 때 원한대로 지금의 내가 X-ray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다 드러났는데, 이젠 다른 내가 되어야 한다니 그 사실이 무겁고 무섭고 불편한 거다. 겨우 스타일을 잡아가나 싶은 내 글도 이상해지면 어떡하지. 글은 섬세하게 쓰고, 그림은 터프하게 그리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둘 다 애매하게 섞여서 글도 그림도 이상해지는 거 아닐까. 나는 이제 어떡하나. 걱정을 잔뜩 안고는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까무룩 잠에 빠졌다. 그렇게 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 걱정에 짓눌려서 놓쳤던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나이 많을수록 그림 잘 그려요. 그림 배워본 적 없으신 분들도요."

"왜요?"

"나이 많은 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삶을 잘 살 수 있을지 고민 안 하거든요. 그냥 치고 나가는 거지."

그 말을 빌려 인생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목적지는 정해졌으니 이제 그만 앞으로 치고 나가라고. 그림도, 인생도 0.5초 만에 지나간다고. 인생은 배스킨라빈스가 아니니까 언제까지 좋아하는 체리맛만 먹을 순 없어. 좋아하는 맛만 가득한 걸 사람들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내 인생에 체리맛만 가득하면 나는 체리맛 글 밖에 못 쓰잖아. 그건 싫다. 난 좋은 글을 쓰고 싶어. 그러니까 힘들어도 해볼래. 아직 잠결인데도 끄덕끄덕.


코로나가 물러갈 동안만 하려고 했던 그림은, 그래서 아마 계속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될까. 모니터 앞에서, 또 캔버스 앞에서 우두커니 혼자 앉아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묻어날 수 있는 한 문장을 갖고 싶다. 문질렀을 때 왠지 흑연도 좀 묻어 나오는 그런 문장.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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