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은 참 아름다운 동네다. 서울 생활을 연희동에서 시작했다. 집세 비싸기로 유명한 동넨 줄도 모르고(겁도, 철도 없던 시절이다), 이름에 반해 ‘여기서 살아야지’ 다짐하고 내리 7년을 살았다. 이름만큼이나 부드럽고 나직하고 다정한 풍경들이 골목 곳곳에 무심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연희동에 살던 거의 대부분의 날들을 사랑했다. 누가 어떻게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그러모아둔 느낌이었달까. 입에 꼭 맞는 떡볶이 집이 있었고(쩡 떡볶이. 명지대로 이전하는 바람에 나중에 찾아갔더니 하필 휴일이었다), 유서 깊은 빵집이 있었고(피터팬 빵집의 고구마 만주는 전국 최고다), 골목 모퉁이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홍차 가게에선 근사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이연복 셰프의 중식집을 ‘우리 동네 괜찮은 중국집’으로 부를 수 있었다. 나고 자란 동네에선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의 '취향'이라는 걸 여기서 발견했다. 알고 보니 나는 소박하지만 단정한 것들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작은 카페를 좋아하고, 산책을 좋아하고,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 중턱에 있는 목련나무를 좋아했다.
다니던 회사의 이전 때문에 무려 세 시간을 출퇴근에 쏟아붓다(출퇴근이 고된 나머지 두 달에 오 킬로가 빠졌다) 몇 개월을 망설인 끝에 연희동을 떠나야 했지만, ‘언젠간 다시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연희동을 떠나던 날 밤,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살던 동네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마지막 코스로 익숙한 건물 입구를 스쳐 지나갈 때 나도 모르게 울먹거리며 “다시 또 올게!!!”하고 손을 흔들었다. 웬 청승이냐며 친구가 혀를 찼지만, 그때 친구가 속력을 낮춰 천천히 운전한 것을 알고 있다.
웃기고 슬픈 사실이지만, 나는 몇 개월의 긴긴 고민 끝에 어렵사리 이사를 한 후 채 반년이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 대체 이사를 왜 했단 말인가. 다시 연희동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쉽사리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딱 하나 있었다. 7612. 애증의 버스 번호다.
아름다운 시절
연희동은 참 살기 좋은 동네다. 프리랜서라서 애당초 출퇴근을 할 필요가 없거나 자가용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연희동의 교통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ㅛ!$@!=!”인데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괴롭고 처참하다) 출근 시간에 어쩌다 잘못 걸리면 버스 두 코스 거리가 40분이 걸리기도 했다. 연희동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가려면 일단 Y자의 기둥에 해당하는 도로를 타고 꼭짓점에 해당하는 연희삼거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오른쪽 가지는 홍대를 거쳐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 왼쪽 가지는 신촌으로 향한다. 게다가 기둥에서 연대 방향으로 뻗어 난 작은 곁가지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웰컴 투 총체적 난국이다. 서울 여느 동네의 출근 풍경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그때 나는 합정에 자리한 출판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합정으로 가는 노선은 7612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7612에 올라타야 했다. 뒷문으로 타는 건 예사였다. 출근시간의 버스에는 꽉 말아쥔 김밥의 밥풀처럼 짓눌리고 뭉개진 사람들로 가득했다(몇 년 뒤에 7739 노선이 추가되었지만, 여전했다) 출판사 직원 중에 집이 제일 가까우면서도 자주 지각을 했다. 정지신호에서 기사 아저씨에게 빌다시피 해서 내린 적도 몇 번 있다. 짓눌린 밥풀의 입장에서 버스 창밖을 보면 유유히 걷는 사람들이 분명 버스보다 빨랐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걸을 수도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번번이 시간에 쫓겨 버스를 탔고, 버스를 타고나면 차창 밖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이상한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워낙 악착같이 탔던 기억 때문인지, 다른 방향으로 가야 했는데도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7612만 보이면 일단 올라타고는 아차! 싶어 후다닥 내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을 홍대에서 만났으므로 나는 출퇴근이 아니더라도 늘 7612를 탔다. 약속이 없어도 그랬다. 홍대에서 내리지 않고 몇 정류장만 더 가면 선유도 공원이 나왔다. 왁자지껄한 금밤의 홍대보다, 고즈넉한 선유도 공원의 산책보다 버스에서 어딘가로 향해 가는 시간이 좋았다. 충동적으로 바로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는 태국행 티켓을 끊고는, 이거라도 있어야겠다 싶어 문 닫기 직전의 홍대 도서관에 가이드북을 빌리러 갈 때도 7612 안이었다. 좋아하는 남자애를 만나러 홍대에 갈 때는 두근거렸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맑은 햇살을 그대로 끌어안고 공원으로 향할 때는 온 마음이 나른했다. 간신히 빌린 가이드북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7612 안에서는 처음 가보는 낯선 나라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뒤엉켰다. 7612는 늘 나를 어느 곳으로 데려다줬다. 그 어느 곳은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꼭 필요한 곳이 아니었나 싶다.
연희동을 떠나기 하루 전,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나갈 일도 없는데 7612를 탔다. 오른쪽 창가 맨 앞자리에 앉았다. 대구에 사는 엄마가 “아유 서울 사람들은 참 센스가 좋네” 하고 칭찬했던 버스 문 앞에 붙어있는 번호 카드가 한낮의 햇살을 받아 빛났다. 7612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보였다. 이제 7612를 탈 일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확신이었다. 다음에 7612를 타게 되더라도 그건 오늘의 7612가 아닐 테니까. 이불도 없이 캐리어와 나란히 누워있었던 연희동에서의 첫날, 놀이터 시소에 쭈그리고 앉아 ‘올라온 지 얼마나 되었지’하고 괜히 손가락을 꼽아보던 어느 밤, 종종 들르던 카페의 사장님이 날 알아볼 때면 들곤 하던 낯선 곳에 조금씩 마음을 묻히는 간지러운 기분, 작은 독립 서점에서 문장을 읽으며 '나 같은 사람들이 많구나' 안도했던 그 순간. 가끔 연희동을 떠올리면 그 좋아하던 카페도, 빵집도, 맛집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그렇게나 싫어했던 7612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지만, 7612는 나의 한 부분을 싣고 떠났다. 그건 좀 많이 아름다운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