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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ul 23. 2020

어쨌거나 이중생활

작가 / 회사원


요즘 매일 저녁 여덟 시쯤이면 라디오에서 내가 쓴 문장이 흘러나온다. 오만 원짜리 조립식 책상 앞에 앉아 몇 번이나 고쳐 쓴 문장이 매끄러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타고 공기 중-좀 더 정확히는 세상 속-으로 스미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저자로서의 뿌듯함이나 감동도 물론 있지만 그를 뛰어넘는 한 가지 생각이 또렷해진다. '(문장 속의) 저 사람 참 잘 사네'라는 진한 감상이다. 그의 하루를 표현하자면 뭐랄까, 쉼표와 마침표, 느낌표를 삶의 적재적소에 알맞게 배치해 통통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 문장. 문장 속의 사람에 대한 나지막한 감탄을 늘어놓는 문장 밖의 사람의 하루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혼란의 시작 : 작가로 살 수 있을까요?

첫 책이 굵직한 신문 몇 군데에 소개되었을 때, 추천사를 써주신 작가님이 기사를 보고 연락을 주셨다.

"앞으로는 작가라고 소개하도록 해요. 이제 지현 씨는 작가니까."

그 어떤 말보다 다정하고 힘 있는 응원이었다. 기사에 실린 내 사진 아래에는 '작가'와 '회사원'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놓여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쓰시는 게 특이하니까-많은 작가들이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회사원 / 작가라고 소개할게요"라고 적힌 담당 기자님의 메일을 받았을 때, 회사원이 앞에 놓이는 게 싫어 "작가 / 회사원으로 소개해주세요"라고 답신을 보냈다. 그렇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거창하게 실상이랄 것도 없다. 출퇴근의 지옥철, 타이트한 업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야근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진 하루하루를 사는 회사원일 뿐.


퇴근하면 사인본 요청 때문에 무거운 어깨를 두드리며 책을 쌓아놓고 사인을 하고 택배 포장을 했다. 그제야 '아 내가 작가였지'하는 자각이 들었다. 업무 중 전화 인터뷰를 요청하는 매체가 있으면 회의실 구석에서 몰래 소리를 낮춰 "아, 사찰요리는 이래서 좋은 것이죠!"하고 인터뷰를 했고, 직장인인 나를 배려한 기자님의 주말 인터뷰 미팅에 흔쾌히 응했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날아오는 "사찰요리는 진짜 오신채를 안 쓰나요?" "사찰요리 맛있나요?" "사찰요리 어디서 배우나요?" "요리 잘하시나요?" 등의 질문에 친절하게 성실히 답하려 노력했다. 바쁜 업무 가운데에도 운영 중인 SNS에 사찰요리 레시피를 꾸준히 소개했고 댓글을 관리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출간 후 독자 만남이 없다는 출판사의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나서 공간을 섭외하고 독자 만남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홍보하고 접수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매일 괴로워서 어쩔 줄 몰랐다. 작가는 글을 써야 하는 건데 도무지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작가님"소리를 들을 때마다 바늘로 콕 찔린 것처럼 온몸이 움찔거렸다. 세상에 작가가 얼마나 많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기웃거리는 곳도 많지만, 글쓰기는 달랐다.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영역이었고 그 영역에서 살아남으려면 잘해야 했다. 부지런히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이 되기 시작했고, 도무지 쓸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케 했다.


지난 몇 년간, 새벽마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출근 직전까지 글을 썼다는 박상영 작가가 생각났다. 평일엔 회사를 다니고 주말몰아서 글을 쓴다는, 그렇게 펴낸 책이 몇 권이라는 또 다른 작가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퇴근 후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지만 꾸벅꾸벅 졸 뿐이었고, 새벽에 일어나 보려 했지만 몇 개나 맞춰놓은 알람 소리도 번번이 놓쳐 지각을 했다. 주말에는 "아...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누워서 <부부의 세계>를 봤다.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책상 앞에 앉아 끙끙대며 기획안을 말 그대로 쥐어짰다. 좋은 기획이 나올 리가 없었다. 쉼표도, 밀도도 없이 그저 동동거릴 뿐. 둘 중 하나를 그만둬야 했다. 당연히 화살표는 회사 쪽으로 기울었다.


혼란은 계속되겠지만 : 찡찡이 옆에 좋은 사람

저 너무 힘들어요, 저는 왜 못 쉬어요, 회사 그만둘래요, 작가 안 할래요, 아니! 둘 다 못하겠어요... 조금이라도 마음을 쉴 수 있는 사람들에겐 푸념하기 바쁜 내게

"회사는 다녀야 한다"

사찰요리 수업을 몇 년간 함께 해온 한 언니가 내게 한 말이다. 이십 대에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에서 옷 디자인을 시작해 이제 쉰 줄에 접어든 언니의 짧고 묵직한 말이 아니더라도,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당장 뭘 먹고살겠나. 원고지를 덮고 잘 순 없는 노릇(심지어 원고지도 돈으로 사야 한다). 그 좋아하는 사찰요리는 어떻게 배울 것이며, 다시 시작하는 그림 수업은 어떻게 들을 것이며, 영혼의 빵지 순례는 어떻게 이어가겠나. 그래도, 그래도 힘들다! 아는 교수님께 "저 둘 다 못해요!"하고 투덜거렸더니 교수님이 내 눈을 빤히 보면서 말씀하셨다. "요즘 세상에 일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행복에 겨웠구먼! 그냥 해!" 그래도, 그래도 투정 부리고 싶다! 투정을 멈추지 않는 내게 어느 선생님 한분이 다정하게 내 등을 두드리며 말해주셨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만 해요. 그래도 잘하는 거야."


조금씩만 하라는 그 말에 그제야 투정을 멈췄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것도 맞고, 그냥 해야 하는 것도 맞다. 바퀴가 두 개인 자전거를 굴리면서 바퀴 두 개가 버겁다고 하나를 빼버리면 삶이 어떻게 앞으로 굴러가겠나. 누구나 저 나름의 자전거를 굴리고 있을 텐데도, 내 자전거만 바퀴가 두 개라며, 남들 자전거는 바퀴가 세 개 네 개라서 한 두 개쯤 빼버려도 굴러간다고, 아닌 걸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내가 나를 속박하고 있었다. 작가라면 이래야 한다고. 누구처럼 새벽마다 카페에 출근해서 글을 쓰고, 주말에 작품 구상을 해야 한다고, 잠을 줄여야 한다고, 매일매일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진즉에 시작해야 했는데 도무지 들여다볼 수가 없었던 두 번째 책 작업을 겨우 시작했다. 조금만 보겠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한 꼭지만, 하루에 두 꼭지만. 느리게 가더라도 마음을 멈추지 말자고 생각했다. 물론 생각은 생각이고 여전히 바쁘다. 하루에 한 꼭지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날이 많다. 그래도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되는 만큼 보기로 했다. 쉼 없이 써야 한다고 나를 들들 볶지 않기로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의 지옥철, 참 오랜만에 '써야 한다'가 아니라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쓰고 점심시간을 쪼개서 쓰고 퇴근 후에 모니터 앞에 앉아야 하는 날이 많겠지만, 글을 쓸 때의 순수한 기쁨을 잃지 않기를. 혼란스러운 투잡을 서투른 걸음이나마 이어갈 수 있기를. 두려워도 계속 가기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문장을 들으며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며 눈물을 쭈룩 흘리고만 문장 밖의 사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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