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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ul 25. 2020

복숭아 한 박스 보내줄까?

복숭아는 내 손안에 있다


작년 이맘때 친구 신혼집에 찾아간 적이 있다. 지방에서 열리는 결혼식이라 참석은 못하고 얼마간의 축의금을 보냈었지만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고마운 친구라, 얼굴을 보고 축하한단 말을 전하고 싶었다. 전철을 탄 내손엔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어쩌구저쩌구 하는  비싼 한통이 들려있었다. 친구의 집은 제법 멀었다. 7호선 끝자락인 도봉산역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었던 걸로 몸이 기억한다. 여름이었고, 그래서 더고, 손에 든 멜론은 가뜩이나 무거운데 점점 더 무거워졌다. 택배로 보낼걸 괜한 선택을 했다 싶었다. 후회 가득한 마음 한 편에, 그래도 딱 손에 든 멜론 크기의 알맞은 무게가 자리했는데, 그건 '내가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감각이었다.


어릴 때, 드라마를 보면 훤칠한 주인공의 한 손에는 꼭 번듯한 과일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중요한 자리-병문안이나 집들이, 사귀던 사람의 집에 인사드리러 가는 자리-에는 과일바구니가 함께했다. 과일바구니를 탁자 한편에 내려놓아야 비로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양 싶었다. 뭘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꽤나 비싸 보이는데, 과일바구니를 내려놓는 주인공은 "약소하다""별 것 아니다"등의 말을 곁들였고, 과일바구니를 받아 든 이는 공식처럼 "아유 뭘 이런 걸 다"라고 말하며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었다.  웃음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중요한 자리에는 과일바구니를 들고 가야 한다, 나도 중요한 자리에 어울리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집에 들어온 선물인지, 외갓집에 놀러 갔다가 발견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나도 과일바구니를 접 본적이 있다. 드라마 속 과일바구니를 바라볼 때마다 특히 궁금했던 건 멜론이었다. 비닐로 꽁꽁 싸맨 바구니 안의 과일들을 일일이 기억할 순 없었지만, 멜론만큼은 선명히 기억할 수 있었다. 독보적인 존재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먹어본 적이 없었 때문이다. 직접 맛본 멜론은 기대만큼의 맛이 아니었지만, 과일바구니를 선물 받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 내 가까이 있구나 싶어 내심 으쓱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역으로 나를 마중 나와 멜론을 함께 나눠 들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참을 걸은 끝에 마침내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차게 식혔다가 먹을 요량으로 일단 멜론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친구가 만들어준 천도복숭아 파스타를 먹었다. 여름이구나, 여름이야. 계절의 산물이 그릇 위에 놓여 있는 식사를 할 때면, 그 순간만큼은 제대로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뭉클해진다. 삶의 흐름 속에서 때를 놓치지 않고 소중히 만끽하려는 태도를 맛본다. 친구 남편이 만들어놓은 과일청이 식탁 한쪽에 다소곳이 놓여있었다. 좋은 사람이구나, 좋은 사람들끼리 잘 만났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멜론을 꺼냈다. 한입 배어문 친구의 웃음이 드라마에서 "아유 뭘 이런 걸 다"하고 말하던 이의 것보다 청량하고 맑았다. 친구의 얼굴을 보며 다시 감각했다. 이 순간은 중요하다, 중요한 자리에는 역시 과일을 들고 가야 한다, 나도 중요한 자리에 어울리는 중요한 사람이 된 것도 같다,라고.


사실 과일은 주고받기 애매해서 선물로는 적당하지 않다. 비싸고 쉽게 상하고 취향을 많이 타고 여느 기성품과 달리 가격이 품질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작년에 맛있게 먹었다고 해서 올해도 맛있다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그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레어템이고, 햇빛과 흙과 물로 만들어진 것이라 과일을 먹을 때면 우리가 속해 있는 세상의 어느 귀퉁이를 와삭 깨물어 먹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주는 아니라도, 많이는 못하더라도 과일을 건네고 싶다. 내게 과일을 건네는 이들의 마음도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겨울이면 제주에서 귤 한 박스를 보내주시는 신부님,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고 냅킨에 고이 싼 사과와 한라봉을 건네주시는 선생님, 집에 좋은 과일이 들어오면 먹지 않고 서울에 있는 딸에게 보내는 엄마. 특히 멜론은, 어릴 때의 기억에 자리한 과일 바구니의 최상위 클래스에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내겐 좀 더 특별한 과일이다. 그래서 그렇게 더운 날, 친구의 집에 멜론을 들고 가는 마음만큼은 시원했다.  


며칠 전의 이른 아침(정확히 여섯 시 삼십칠 분이었다). 회사 가기 싫다는 신음소리와 함께 겨우 일어났는데, 아는 동생으로부터 카톡이 하나 와있었다.

"아시는 분이 하는 복숭아 과수원! 여기 복숭아 진짜 맛있어. 한 박스 보내줄까? ㅎㅎ"

그 친구의 SNS에 '나 같은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못난 마음이 들 때가 있다'라는 피드가 올라온 무렵이라, 복숭아를 보내주겠다는 그 말이 더 반가웠다(물론 내가 과일 중에 복숭아를 제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삶의 한 순간을 만끽하려는 태도, 좋은 것을 나눠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은 충분한 거 같단 말을 가만히 해주고 싶었다. 동글동글한 과일을 주고받 우리는 세상의 좋은 일부, 멋진 어른, 중요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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