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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ug 05. 2020

취미왕 :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취미


처음으로 취미라는 걸 가졌을 때는, 그러니까 그 전에도 딱지 접기라든가 색칠놀이라든가 다양한 형태의 취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취미를 가지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방과 후 수업이었다. 나는 풍선공예를 선택했다. 엄마가 당신 욕심에 억지로 보낸 피아노 학원이나 다른 아이들에 뒤처질까 보낸 미술학원, 영어학원과는 사뭇 다른 결이었다. 내가 온전히 나의 필요와 호기심에 충실해 다른 사람의 눈치는 보지 않고 선택한 풍선공예는 내게 큰 기쁨을 가져다줬다. 길거리의 피에로가 하는 것처럼 길쭉한 풍선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은 다음, 터질까 조심하며 과감하게 비틀어 모양을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처음엔 허리가 긴 강아지를 만들었지만 수업이 거듭될수록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다. 거미, 무지개, 구름, 꽃다발... 색색깔의 풍선을 요리조리 비트는 순간도 무척 재밌었지만, 수업의 백미는 완성된 풍선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수업이 마칠 무렵엔 부드러운 노을이 드리우기 시작했고, 나는 내 몸보다 큰 구름과 무지개를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구름과 무지개에도 노을이 묻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눈빛들은 약속한 듯 하나같이 구름과 무지개로 향했고, 몇몇 어른들은 꼭 물어봤다.

"그거 어디서 났니?"

"제가 만든 건데요!"

부푼 풍선만큼이나 부푼 마음으로 집으로 오면 남동생이 기다리고 있다가 풍선을 건네받곤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벽 여기저기에 풍선을 붙여놓고 풍선을 바라보다 잠드는 나날이었다. 이걸 내가 만들었다니, 하고.


풍선은 일주일을 채 못 버티고 바람이 빠져버리곤 했지만, 부푼 마음엔 여전히 바람이 빵빵했다. 나는 이 기분을 되도록 자주, 오래 느끼고 싶었다. 다행히 세상엔 코끝이 간질간질할 정도로 궁금한, 내가 아직 열어보지 못한 문이 무수히 많았다. 그때부터 나는 취미의 세계를 노크했다. 조금이라도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이 있으면 문을 빼꼼 열어 들여다봤다. 주말이면 책방에 들러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책을 보다 궁금하면 따라 했고, 그래도 성에 안차면 지역을 불문하고 작가를 만나러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내게 왔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노래를 들었다. 마음을 줄곧 두드리는 기타 소리에 홀딱 반해 자연스레 기타를 샀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드럼을 배우러 갔다가 얼결에 베이스를 치게 됐다. 티브이에서 음악에 맞춰 줄넘기를 하는 학생들을 보고 부산까지 내려가 일주일간 합숙하며 음악 줄넘기를 배웠고(결국 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다), 잡지에서 발레 하는 직장인의 인터뷰를 읽고 발레를 시작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는 말에 요가를 했고, 퇴근 후엔 수업에 늦을까 숨을 헐떡이면서 떡케이크를 배우러 달려갔다. 함께 노래하는 영화 속 한 장면에 꽂혀 합창 수업을 시작해 연말엔 공연까지 올렸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 사찰요리에 반해 그 길로 사찰요리를 부지런히 배웠더니 요리 에세이까지 펴내게 됐다. 지금도 주말 아침이면 사찰요리를 배우고, 오후엔 연필을 쥐고 캔버스 앞에 앉는다.

 

목표가 뭐예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 그 많은 걸 언제 다 배웠어요? 알고 보니 취미가 수십 개인 내 모습을 보고 주위에서 묻는다. 한 우물만 파라며 넌지시 충고를 건네는 목소리도 있다. 도마 앞에서, 캔버스 앞에서, 음악을 들으며 팔다리를 휘저으며 생각한다. 난 이걸 왜 하지? 대답은 1초 만에 나온다. 즐거우니까! 취미라는 세계는 목표가 없어서 좋다. 끝이 보이지 않아 좋다. 자격증 시험이나 기한이 정해진 업무처럼, 목표가 있으면 오히 딱 그만큼만 하려고 했을 테지만, 끝을 모르니까 애당초 정해진 목표가 없으니까 힘닿는 데까지 부지런히 노를 저어 가보고 싶다. 물론 나도 세상의 모든 문을 신나게 열어젖힌 건 아니다. 아직 열어볼 엄두가 안나는 문도 있고, 빼꼼 고개만 디밀었다가 금세 닫아버린  문도 있다. 굳게 꾹 닫힌 문을 여는 건 실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뿐 아니라, 하나의 취미를 가지는 데는 시간, 비용, 노력이 끊임없이 지불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 세계 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못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줄곧 높은음은 안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프라노 영역이라던가, 학창 시절 내내 치른 시험이 지긋지긋해 경쟁은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은근히 경쟁을 즐기는 타입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내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나다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 모습이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기 싫다. 음악에 맞춰 팔다리를 움직이고, 어떤 날의 여백을 기타 선율로 더듬더듬 채워가는 순간이 좋다. 칼을 쥐고 불을 다루며, 캔버스 앞에 앉아 연필을 쥐고 선을 긋는 내 모습이 맘에 든다. 내게 이런 모습도 있었어?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하고 끊임없이 나라는 사람을 발견하고 감탄하고 싶다. 세상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때면 납작한 풍선에 바람을 넣던 순간처럼, 나의 세계가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든다. 동그랗게 부푼 여러 가지 나의 취미가 마침내 나를 태우고 둥싱 둥실 떠오른다. 납작하게만 여겨지던 세계가 나를 맞으러 일어난다. 아직 나는 열어보지 못한 문이 많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다음 생애는 연기를 한번 해봐야지"하고 무심결에 중얼거렸다가 막 웃었다. 다음 생이란 게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줄곧 몸을 자유롭게 쓰는 것에 대한 갈망을 품고 지냈는데, 요즘엔 점점 그 갈망이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혹시 아나. 지금부터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면  5년, 10년 뒤에는 좀 더 몸을 자유롭게, 편안하게 쓰는 사람이 되어있을지. 그래서 또 어떤 내가 되어있을지. 나의 세계는, 나라는 사람은 오늘도 조금씩 부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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