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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25. 2016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2016년 10월 25일



후식까지 살뜰하게 챙겨먹은 날인데도 저녁이 고파 마침 근처에 있는 식당에 들렀습니다. 지난 여름에 딱 한번 가봤는데, 제법 맛있는 밥도 밥이지만 무엇보다 정갈한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좋아서 오래 기억하고 있던 곳이었어요.


'오늘은 외식이다!' 혼자 조용한 식사기대했지만 늦은 저녁을 드는 직장인들이 많아 식당 안이 북적입니다. 순간 쭈뼛 멈추고 돌아 나가려, 나를 하도 살갑게 반기는 아주머니의 그 목소리에 붙들려 그만 자리에 앉아 '백순두부 하나요' 주문을 외워봅니다. 


시설이 후진 헬스장, 죽도록 패주고 싶은 어느 고등학생, 실력없는 부장. . . 세상의 온갖 것들을 안주로 야무지게 욕을 버무려 씹어주는 옆 테이블 남자의 목소리에 슬그머니, 조금 뒤엔 걷잡을 수 없이 불쾌해지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어차피 다 '내가 나를 견디지 못해' 벌어지는 일. 나도 저 나이 되어 저이처럼 되지 말란 법 없으니, 정말로 마음을 잘 써야겠구나. 저 나이 되어도 세상의 온갖 것이 미워죽겠으면 정말 얼마나 힘이 들려나. 아직은 새파랗게  나도 나를 견뎌 겠는 날이 새털처 습니다. 애처럼 눈물을 뚝뚝 리면서   날도 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새처럼 파닥거려 봐야지, 합니다.


식당 안이 욕설로 난무하든 말든 아주머니는 아, 그러니까 왜 그 목소리로 성우를 하지 않는지 몹시 의문이 이는 다정하고 정갈한 목소리로, 카드를 내미는 내게 '날이 추우니 감기 조심해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찡.



거리의 나무들은 벌써부터 전구옷을 입었.무대 의상 되려나. 나무에게 빤짝이를 입혀놓으면 빛 때문에 낮에도 광합성을 하게 되어서 나무에게 몹시 좋지 않다고 하는데.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기에 사뭇 좋으니 이런. 아마 나란 사람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몇 안되는 이유 중의 하나겠어요.


오늘 낮엔 폐지를 가지러 온 할아버지의 자루에 그간 사무실 서랍과 책상 여기저기에 쌓여있던 종이 뭉치들을 가득 넣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지금까지 시간과 나름의 공을 들여 만든 결과물입니다.  뭉치  나의 , 여름, 가을이  들어있습니다. , ( 뭉치에서 빠질)겨울이 기다리고 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붓더니 맑게 개인 오늘은 10월의 어느 날입니다. 여느 날이기도 하고요. 뜨겁던 지난 여름 내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를 배웠는데, 어느새 10월이 다섯 손가락 안에 쏙 들어오네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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