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9일 계속

by 꽃반지

오늘 점심을 일찍 먹고 회사 근처의 오래된 헌책방을 기웃거렸다. <어 하모니 오브 딜라이트>라는 일본 책을 봤는데 깨끗한 호수를 가로지르는 요트며 활짝 핀 꽃, 하늘에 걸린 구름 등 인생의 아름다운 장면이라 할 수 있는 것들만 잔뜩 모아둔 사진집이었다. 문득 몇 달 전에 잠깐 본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생각났다. 잘생긴 남자 친구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마침 노을이 지고 있는 엄청 멋진 해변을 달리면서 바람 한 자락에 머리카락 손질을 맡긴 채 기쁨에 취한 여자의 얼굴이 꽤 오랫동안 클로즈업되었는데, <전설의 고향>만 봐도 덜덜 떨 정도로 감정이입의 최단가를 자랑하는 나조차도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게 생각났다. 으레 아름다운 것들만 잔뜩 모아놓으면 의외로 아름다움과 멀어진다. 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하기 싫은 여러 가지 것들이 함께 모여있으면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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