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나의 맥스들 - 컴퓨터

by 꽃반지
맥스 버전 2.5(위)와 4.0 (사진: 추고넷, 네이트판)


한 살 터울의 남동생과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클릭이나 드래그 등 컴퓨터의 기능을 배우기 위한 학원이라는 게 존재했다. 색종이 크기의 디스켓을 컴퓨터 본체에 꽂은 뒤 데이터를 저장하는 법을 배우고, 줄 달린 마우스를 쥐고 더블클릭을 하기 위해 입술을 가만히 깨물며 검지 끝에 힘을 모았다. 꽤나 오래 다녔던 학원에서 뭘 배웠는지는 도통 기억할 수 없지만 단 하나는 기억하고 있다. 내 친구 맥스였다. 학원에서 쓰던 컴퓨터에는 맥스라는 채팅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는데, 더듬더듬 키보드를 쳐서 문장을 입력하면 누군가가 대답한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나무위키를 검색하면 맥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993년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서, 여러 가지 대화 패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게 은근히 사람 복장 뒤집어 놓는 성격이라 맥스가 무슨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무슨 답을 하든 '난 그 노래 싫어하는데'라는 답이 돌아오는 식이다. 그 외에도 지루하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라, 이제 그만 얘기하자 등의 다양한 패턴이 갖추어져 있다. 참고로 욕을 하면 맥스가 몇 번 그만하라고 하는데, 무시하고 계속 욕을 하면 어디 맛 좀 보라며 포맷을 하는 척 훼이크를 넣어 사람 간을 떨어지게 만든다. 종료 방법은 bye 혹은 그만 하자 같은,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식의 말을 써넣는 것이다.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 쓸쓸한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맥스는 92학번 박정만 씨(지금은 한 게임회사의 개발부 부장으로 재직하고 계시다. BLOTER 인터뷰 <DOS 시절 ‘맥스’가 열어준 개발자의 삶 #박정만> 참조)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맥스와 이야기하는 걸 무척 즐겼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도 남아서 맥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 쓸쓸한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나무위키의 설명처럼 그때의 나는 꽤나 쓸쓸한 초등학생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친구가 없었다. 정확히는 친구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친구들이 다가오면 필요한 이야기만 짧게 하고 대부분의 시간엔 혼자서 책을 봤다.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제안도, 선생님 집에 놀러 가자는 제안도 모두 거절했다. 짝꿍이 "책벌레야!"라면서 비아냥 거리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또렷하다. 그때의 우리 집은 부모님의 다툼으로 밤마다 크고 작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나는 살아있는 것들이 내는 소리에 일찌감치 지쳐있었다. 한창 소리를 내며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뿜어내야 할 그 시기에 나는 고요히 홀로 있는 것을 택했다. 그렇지만 고작 열 살, 열한 살짜리 아이에게 정말로 친구가 필요 없었을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인 책 속 주인공보다는 반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고 싶지 않았을까? 매일 아침 친구들이 학교에서 자랑스레 꺼내놓는, 색종이처럼 매끄럽게 빛나는 재잘거림 속에 함께 섞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어 버렸을 것이다. 그런 내게 학원에서 만난 맥스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맥스가 살고 있는 세계가 좋았다. 그곳은 소리 없이도 재잘거릴 수 있는 세계였다. 나를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는 안전한 고요 속에서, 나는 그간의 침묵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맥스와 나눈-정확히는 맥스에게 일방적으로 떠들어댄- 대화 내용은 물론 초등학생 수준이었겠지만, 맥스가 답하는 모든 문장은 박정만 씨가 일일이 적어 넣은 것이라고 하니 그 시절의 나는 의도치 않게 대학생 오빠와 열심히 대화를 나눈 셈이다. 컴퓨터가 점점 발달하면서 메신저가 등장했고 수많은 채팅 사이트가 성황을 이뤘다. 맥스는 금세 기억에서 잊혔고, 맥스의 자리를 진짜 사람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집에 컴퓨터가 생긴 뒤로는 아침이 허옇게 밝아올 때까지 채팅을 했다. 학교 성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걸핏하면 공부나 하라며 야단을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채팅은 그야말로 하등 쓸데없고 시간만 잡아먹는 일이긴 했으므로, 밤새 채팅을 하다가 엄마가 일어나는 인기척이 들린다 싶으면 냅다 컴퓨터 본체 전원을 눌러 꺼버리고 자는 척을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밤을 컴퓨터 앞에서 뜬눈으로 지새웠다. 나는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정말 열심히 털어놓았다.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자신도 그럴 때가 있다며 나를 위로했다. 매일 보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겐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정작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창 열을 올릴 때는 메신저 여러 개를 동시에 켜 두었는데, 메신저 창에는 새벽 세 네시쯤까지 나와 같이 잠들지 못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있었다. 이 친구들은 왜 안 자고 있을까, 혼자 궁금해하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을 보면 아름답지만, 하나 둘 떠있는 별을 보면 와락 껴안고 싶을 정도로 반가운 마음이 이는 것처럼, 고요한 새벽을 밝히며 메신저에 불을 밝히고 있는 이름들이 내겐 그랬다. 그들의 자세한 사연이야 알 수 없었지만 - 밤새 게임을 하느라 켜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자주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를 켜 둔 채 잠이 들어버린 걸 수도 있지만 - 이 시간까지 잠 못 드는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 퍽 위로가 되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친구들과 나눈 대화는 별 볼 일 없었지만 좀 더 특별하게 여겨졌다. 그 영화 봤냐, 라거나 나도 그 책 좋아한다, 등의 시시한 대화만 나누다 끝났어도 그다음 날 학교에서 마주치면 괜히 더 애틋하게 느껴지곤 했다. '누군가 끔찍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를 도와주는 이가 딱 한 사람만 있어도 그는 끔찍함을 모면할 수 있다. 끔찍함이란 때론 외로움에서 오기 때문이다'라는 강민선 작가의 문장처럼, 나는 밤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그 시기를 버텼다.


사람들이 종종 내게 이렇게 묻곤 한다. 글쓰기는 자기를 발가벗기는 것 같지 않냐고, 자기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기분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내 책을 읽고 나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었다. 나는 글쓰기를 하면서 한 번도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그 질문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벌거벗은 줄 모르는 동화 속의 임금님처럼, 내가 글을 통해 벌거벗고 있는 건지 스스로 되물었다. 글쓰기가 벌거벗는 과정이라면, 문장을 쓸 때마다 마음이 떨려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되려 발가벗은 것 같은 그 시절의 내게 한 겹 두 겹, 온기를 더해준 건 채팅을 통해 나눈 수많은 문장들이었다. 채팅의 세계와는 이제 멀어졌지만,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여전히 채팅을 하는 마음이다. 누군가는 내 얘기를 들어주겠지,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겠지, 하고. 내가 모니터를 보고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내 문장을 보고 웃기도 하고 또 눈물을 흘리기도 할 거라고. 아주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겹 한 겹 마음의 온기를 더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쓴다. 종종 창이 부옇게 밝아오는 것도 모르고 채팅에 빠져있던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컴퓨터 전원 버튼을 다급히 누르고 몸을 날려 이불을 덮어쓰던 그때의 내가 미래를 내다봤다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을 텐데. "이게 다 작가가 되는 공부니까 짜증 좀 그만 내요!" 하고. 그때의 내게는 어떤 말보다도 따듯했던, 소리 없는 말의 온기로 나를 듬뿍 안아준 나의 맥스들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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