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제자리 뛰기 - 음악줄넘기

by 꽃반지


나는 음악줄넘기 공인지도사 2급 자격증 보유자다. 음악줄넘기...자격증까지 듣고 난 주위의 반응은 대개 이런 식이다. 줄넘기에도 자격증이 있어? 쌩쌩이 잘하니? 라고 묻거나 말없이 피식 웃거나. 음악 줄넘기가 뭔고 하면 말 그대로 음악 틀어놓고 하는 줄넘기다. 초록창을 검색해보면 음악에 맞춰서 줄을 꼬았다가 풀었다가 난리법석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때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취직 준비로 눈에 불을 켜도 시원찮을 판에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가서 일주일 동안 외갓집에 머물렀다. 외갓집에 무려 일주일이나 머무른다는 건, 지금의 내게도 그렇지만 그때의 내게도 역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픈 일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요구대로 법대에 진학하지 않은 나를 대학 다니는 내내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나를 중국어과에 보내버린 엄마를 자주 책망했다. 내가 4학년이 될 즈음해서는 일찌감치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몇 번이나 으름장을 놓았다. 평생을 외할아버지의 대단한 기세에 눌려 그저 그의 곁에 앉아 맞장구를 치는 것으로 본인의 존재를 증명했던 외할머니는, 법대며 공무원이며 어서 외할아버지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덩달아 나를 야단했다. 음악줄넘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정해진 교육 시간을 채우고 몇 가지 시험을 봐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노부부가 사는 집에 일주일이나 머무르며 온갖 잔소리를 감내할 정도로 음악줄넘기 자격증을 따고 싶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취직에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자격증인 데다 평소 줄넘기에 그다지 애호가 있지도 않았다. 줄넘기는 그저 줄넘기일 뿐.


그때의 내게 분명히 필요한 건 더 높은 토익점수와 봉사활동 시간, 그리고 뭐여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채워도 채워도 헐겁게 느껴지는 이력서의 여백을 좀 더 밀도 있게 채워줄 만한 그럴싸한 검은 글자들이었다. 나는 이미 유학까지 다녀오며 어렵게 딴 중국어 자격증이 있었고, 평점은 4점대를 웃돌았다(공부만 했으니까). 복수전공도, 봉사활동시간도, 대외 경험도 모두 다 있었다. 지금은 들어가려야 들어갈 수도 없는 외국계 은행에서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무엇을 목표로 지금껏 달려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걸음만 더 디디면 됐다. 여태까지 달려온 걸음에 비하면 딱 한걸음을 내딛는 건 쉬운 일이었다. 쉬울 줄 알았다.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도서관에 종일 처박혀서 취직 준비를 할 때 나는 집에서 멍하니 티브이를 봤다. 이제 취직을 하면 되는 걸까. 취직을 하면 정말 끝인가.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경쟁을 한 기억밖에 없었다. 고 3 때는 서울대 진학반이라고 팻말을 붙여놓은 학교 제일 높은 층의 추운 교실에서 자정이 넘을 때까지 공부를 했고, 그중 몇은 자정이 넘으면 엄마 차를 타고 새벽 두 시까지 과외를 받았다. 나와 친구들의 자리엔 그동안 푼 문제집이 책상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몇은 서울대 진학에 성공하고 나를 포함한 몇은 실패했을 때 친구들은 당연히 재수를 선택했고 나는 이제 공부라는 걸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들이 독서실로 기어들어갈 때 나는 엄마가 가라는 대학의 가라는 과에 가서 술만 마셨다. 나는 과락을 했는데 일곱 과목 중에 에이쁠이 여섯 개인 애가 한 과목이 에이쁠이 아니라고 교수한테 따지러 가는 걸 봤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지? 대체 언제쯤이면 이 미친 달리기를 그만두고 행복해질 수 있는 거지?


그날도 티브이를 보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현란한 몸동작으로 줄을 뛰고 돌리고 넘고 있었다. 그걸 한참이나 보고 있으려니 저 사람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음악 줄넘기라고? 검색해보니 마침 부산에서 프로그램이 있었다. 부랴부랴 짐을 싸서 그 길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외할아버지에게는 졸업 필수 요건에 '지덕체'가 있는데, 그중 체를 완성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 마침 외갓집에서 가까운 어느 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리던 음악 줄넘기 프로그램의 수강생은 나를 제외한 전원이 교사였다. 가산점을 받기 위해서 듣는 연수라고들 했다. 다들 어느 학교에서 무슨 과목 맡고 있다로 일관된 자기소개를 했는데, 곧 졸업을 앞뒀지만 취직 준비는 하지 않고 줄넘기나 하러 온 대학생을 일컬을 말이 딱히 없자 그들끼리 나를 '쌤'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학생 신분에 쌤이라는 호칭이 퍽이나 어색했지만 그것도 자꾸 들으니 익숙해져서, 잠깐은 엄마가 그렇게 반대하던 교사를 목표로 해볼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왜 다들 나를 그렇게 들들 볶아댔는지 원).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부산의 어느 체육관에 모여 몸을 풀고 하루 종일 줄넘기를 했다. 새로운 기술 몇 가지를 배우고 연습하다가 해질 녘이면 뻐근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드러누웠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라는 외할아버지의 잔소리를 베개 삼고서.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마지막 날에는 시험을 쳤다. 줄넘기 3단 뛰기까지 무사히 다 마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2주일 뒤, 퉁퉁부은 채로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3x4 사이즈의 내 얼굴이 붙은 자격증이 집으로 날아왔다.


줄넘기를 통해 나는 달라졌을까. 아무 생각 없이 줄넘기를 하는 동안, 억눌린 스트레스와 피로가 나도 모르게 말끔히 씻겨서 도서관으로 돌아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취직 공부를 했을 리가. 나란 사람도, 나의 생활도 그대로였다. 여전히 티브이를 보며 내 앞에 놓인 가늠할 수 없는 무수한 시간이 얼른 흘러가버리기를 바랐다. 어디로도 갈 수 있었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었던 그때의 나는,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이력서의 자격증란 항목에 '음악줄넘기 공인 지도사 자격증 2급'을 써넣기 시작했다. 지원업무와 연관도 없는 그 자격증을 보고 나를 뽑아줄 회사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줄넘기 회사 중국 지사라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기차게 그 행동을 반복했다. 요즘의 이력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는 항상 이력서에 '인생의 가장 큰 실패와 극복 방법'을 묻는 란이 있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겉으론 실패 같았으나 나의 노력과 열정 덕분에 실패는 마침내 디딤돌이 되어 성공을 향하는 관문이 되었다, 귀사에 지원하는 나는 실패도 이렇게 멋있게 만들 수 있는 인재이며 귀사에서 몸이 갈릴 때까지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곳에 지원하는 그 누구보다 잘 갈릴 자신이 있다, 를 500자로 풀어쓰면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실패담을 절절하게 써 내려가며 지금 이 순간도 실패이며 극복 방법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는 찌질한 에세이를 써냈다. 정해지지 않은 대상을 향한 내 나름의 반항이었을 것이다. 내 앞길을 입맛대로 조정하려 했던 부모든, 회사든, 세상이든, 그 모든 것이든. 모든 과거가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대체 무슨 정신이었나 싶다. 앞으로 한걸음만 더 내디뎠으면 지금의 내가 문득문득 부러워하는 것들을 대체로 손쉽게 손에 넣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며 다른 내가 되었을 것이다. 후회를 하는 걸까? 당연히 후회한다. 나는 이제 삶의 무게를 알고 삶을 꾸려가는 고단함과 피로를 충분히 안다. 다된 밥상을 발로 차고 나온 그때의 나를 본다면 밥상 앞으로 질질 끌고 가서 한술이라도 퍼먹였을 거다. 아마 내 인생을 어떻게든 당신들이 생각하는 '좋은'방향으로 몰고 가려했던 외할아버지나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겠지. 아니, 쟤가 지금 다된 밥상 앞에서 뭘 하는 거야!라고.


그렇지만 그때 앞으로 한 걸음을 간신히 내딛는 선택을 했더라도, 그래서 지금과는 또 다른 현재의 내가 오늘 만약 글을 한편 쓴다 하더라도 후회한다고 썼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은 어떻게든 미련이 남는 법이니까.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나는 이제 겨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철부지 같지만, 그때의 나는 그 무엇도 해낼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지쳤을 땐 누워서 쉬워도 될 텐데, 혼자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제자리 뛰기라도 했어야 했던 나. 남들 다 쓰는 이력서를 쓸 자신도 없지만 안 쓰고 버틸 자신도 없어서 이력서마다 줄줄이 일기를 써버렸던 나. 다들 앞으로만 달려갈 때 줄넘기만 뛰면서 제자리 지키기를 하던 나는, 문득 뒷걸음질 쳤고 마침내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졌다. 내가 당연히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거머쥐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거머쥐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여겼던 그 모든 것들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매거진의 이전글05. 나의 맥스들 - 컴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