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꽉 막히는 기분이 들면 종종 테라스로 나가 두리번 바깥을 살핀다. 다닥다닥 붙은 건조한 색감의 회색 건물, 그 사이를 파고든 몇 그루 나무, 날마다 색을 달리하지만 시선을 자주 주지 못해 늘 비슷해 보이는 하늘. 무던한 풍경이지만 신기하게도 이 장면은 나에게 늘 각별한 위로가 된다. 낡은 아파트 테라스에 붙어 내다보던 작은 도시의 풍경과 슬그머니 겹쳐지면서 말이다.
동동거리면서 재취업 준비를 하던 지난해 12월, 어느 지친 밤이었을 거다. 2호선 강남역에 우두커니 서서 전철을 기다리는데 밀려오는 전철의 뜨거운 바람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못 살겠다, 나.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아무데나 갈 수 있는 싼 비행기 표를 검색했다. 비행기를 못 타본지 6년도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뭘 하며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만 했는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는 느낌. 나는 늘 빈칸 하나 없이 알뜰했다. 알뜰한 삶을 자부했다. 그즈음에도 빈칸 하나 들여놓을 여력 없이 매일 바쁘게 뭔가를 해내고 있었고, 어디론가 늘 움직였다. 낭비가 없는 생활이 되려 나를 가난하게 한다는 사실을 전철역에 서서야 겨우 알았다.
가오슝이라는 도시로 가는 비행기 표가 쌌다. 무작정 끊고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탔다. 그 날이 크리스마스라는 것도, 거기가 대만의 작은 해안도시라는 것도, 중국어를 쓴다는 것도 도착해서 비로소 알았다. 공항에 쭈그리고 앉아 페이스북을 뒤져 어느 숙소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연말이라 거실 빼고는 자리가 없다는 답장을 받았다. 기꺼이 그렇게 할게요. 교통카드를 사고 전철을 탔다. 이 나라는 이렇게 생겼구나. 전철도, 전철에 들어있는 사람들도 단정했다. 숙소 주인이 알려준 전철역에 내려 뚜벅뚜벅 걸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어느 건물로 들어섰는데 페이스북에서 본 주인과 아이가 나왔다. 어? 나예요. 아니 어떻게 여길 혼자 찾아왔어요? 그냥요.
숙소에 들어서니 이미 묵고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작은 테라스가 딸린 오래된 고층 아파트였고, 방을 이렇게 저렇게 나눠 쓰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 놓인 매트리스로 배정을 받았다. 짐을 대충 풀고 테라스로 나가 도시를 살폈다. 저녁이 내리는 여느 도시의 무덤덤한 풍경이었다. 삐죽 솟은 몇 개의 고층건물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온 여행인데 이게 전부라니, 심심한 마음이 들었다. 그 테라스가 그렇게나 그리워질 줄은 까맣게 모르고.
일주일을 머무르기로 했다. 잠자리는 불편했지만 낯선 나라의 사람들이 들고 나는 순간이 좋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임 프롬 코리아’라고 말하고 ‘안녕하세요’를 가르쳐줬다. 테라스의 풍경도 매번 바뀌었다. 늘 새로운 얼굴들이 앉아있었다. 내가 이 도시에 도착한 첫날처럼 누군가는 테라스에 붙어 심심한 풍경을 내다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물기도 하고, 빨래를 탁탁 털어 널기도 했다. 이 작은 도시는 그다지 볼 것이 없어 나도 자주 테라스에 붙어있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온 여행인데 고작 이렇게 보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두 발은 바깥보단 테라스를 선호했다. 테라스에 매달려 똑같은 풍경을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봤다. 아침에는 뿌연 공기가 도시를 얇게 덮었고 저녁에는 높은 건물들에서 빛이 번져 나왔다.
새해 하루전에도 나는 온종일 테라스에 붙어 있었다. 밤에 있을 새해맞이 행사를 준비하는지 낮부터 가장 높은 건물에서 불꽃과 폭죽소리가 드문드문 터져 나왔다. 해가 슬며시 땅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자주 테라스로 나와 누군가에게 각자의 나랏말로 짧은, 혹은 긴 통화를 했다. 새해 인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전화 통화를 막 마친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홍콩에서 왔다고 했다.
“넌 어디 안 나가니?”
“글쎄. 이 도시에 뭐가 있는지 잘 몰라서.”
“여기 온지 얼마나 됐는데?”
“일주일 정도?”
“일주일 동안 뭘 했는데?”
“여기 계속 앉아있었어.”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 있을 카운트다운을 위해 도심으로 빠져나가고, 아파트에는 네다섯 정도가 남아 있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2014년의 마지막 해가 완전히 내년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새빨개진, 곧 사라져버릴 해를 보러 건물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테라스 밖으로 몰려나왔다. 테라스에 다들 일렬로 쪼롬히 붙어 서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 중 누군가 해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정답게 인사를 하는 바람에, 우리 모두 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안녕. 올해도 이렇게 가는구나. 우리는 아무말도 없이 해가 사라지는 장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해가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테라스에 붙어서서 그 하늘 너머를 살폈다. 왠지 모르게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다가올 12월에는 뭘 하고 있을까. 또다시 누군가들과 함께 매달려 마지막 날을 배웅하고 있으려나, 설핏 궁금하기도 했다.
일주일동안 나는 늘 똑같은 풍경을 바라봤다. 테라스에 앉아 바깥을 내다봤고, 테라스로 나왔다 들어가는 사람들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굳이 낯선 도시로 한 발짝 디밀지 않은 것은, 꼼짝없이 매일 매일을 테라스에 앉아있었던 건 눈에 담기는 그 일상이 썩 맘에 들어서였을 것이다. 일어나서 아침을 열고, 뭔가를 요리하고, 먹고,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어디론가 휙 떠나버리는 여행자들의 일상. 사실은 일상에서 일상적인 것들을 다 덜어내 버린, 아주 가볍고 소소한 색채만 남은 일상같지 않은 일상. 그럼에도 일상의 그 풍경들. 매일 밤 샤워를 할 때마다 두런두런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내가 떠나온 촘촘한 시간을 솎아내고 부드럽고 잔잔한 것만 남긴 것 같았다. 해를 바꿔 떠나는 날 아침, 숙소의 사람들이 뜨거운 두유와 만두를 사와 나의 아침을 바래다주었다. 햇살이 눈이 부셨다.
매일이 똑같고 별 것 없는 풍경을 들여다본다. 회색 건물과 나무 사이로 걷는 사람들을 살핀다. 그러고 있으면 문득문득 그때의 테라스가 떠오른다. 도시의 처음을 구경하는 누군가나 빨래를 탁탁 털어 널고 있는 누군가, 작은 테이블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누군가의 뒷모습들이 둥실 떠오른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무던한 시간들.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 아무것도 아니어서 그토록 좋았던 시간들. 오늘도 테라스로 나가 바깥을 살핀다. 이 풍경이 사무치게 그리울 어떤 날들을 가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