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몸

by 꽃반지

겨울도 끝나가는데 새신 하나 사줄까요,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가 설에 내려오면 알게 될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좋은 일이야 나쁜 일이야. 나쁜 일에 가깝지만 다 지나갔다. 자꾸만 대답을 흐리며 그 위에 두터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엄마의 말을 자꾸 캐물었다. 지난달에 아버지가 다쳐서 2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골절? 화상? 뭔데 2주나 입원을 해요. 전깃줄을 만지다가 스파크가 튀어 얼굴과 팔에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이미 사람으로 가득한 전철에 꾸역꾸역 몸을 디밀며 출근을 할 때마다, 내릴 역이 가까워오면 위산이 역류하는 것 같은 통증 때문에 가슴을 움켜쥘 때마다, 나는 농담이지만 진지함에 가깝게 몇 번이나 중얼거렸더라. 나의 아버지는 왜 이재용이 아니지, 라는 이 말을. 화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이 말을 또 떠올렸다. 이재용은 평생 전깃줄 같은 건 만질 일도 없고 그러니까 얼굴에 스파크가 튈 일도 없을 텐데. 왜 나의 아버지는 이재용이 아니라서 저렇게 평생을 일하고 또 다쳐야 하나.


아버지는 평생 몸으로 먹고살았다. 말이 서툴고 몸이 빨랐다. 자기가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입 밖으로 매끄럽게 꺼낼 줄 몰랐고, 간신히 꺼낸다 한들 분명하게 상대에게 전할 줄 몰랐다. 아버지의 안에서 나온 말은 처음 의도와는 달리 늘 삐뚤게 나왔고 삐죽거렸다. 말을 할 줄 몰라 울기만 하는 아이처럼 아버지의 말 끝에는 언제나 화가 고여있었다. 친구든 직장이든 아버지가 몸으로 쌓은 관계는 결국엔 말로 다 무너졌다. 번번이 그랬다. 아버지는 그래서 말 대신 몸을 쓰는 일이 편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걸음마도 떼기 전에 바다에서 헤엄을 쳤고, 손으로 뚝딱뚝딱 뭔가를 잘 만들었다. 바닷가를 끼고 운전을 하다가도 어 잠깐만,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세운 뒤 입고 있던 양복이나 셔츠 차림 그대로 바다에 들어가 정말로 잠깐 사이 구두에 전복 같은걸 담아왔다. 엄마가 생의 대부분 당신의 손으로 돈을 벌어보지 않은 것도, 우리 남매가 별다른 아르바이트 없이 대학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의 몸 덕분이라는 걸 안다. 간간이 다큐를 보면 부모의 몸을 뜯어먹고 자라는 작은 물고기들이 나왔는데, 나는 그게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 같았다. 부모의 등을 뜯어먹고 사는 물고기를 보며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을 졸업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에게 손 벌리지 말자, 라는 다짐이었고 그 다짐을 간신히 지키며 살았다.


어렸을 때는 몸으로 먹고사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다.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한참이나 지나야 방이 나오는 친구들의 집에 갈 때마다, 번듯한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친구들의 아버지를 만나게 될 때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사준들 뭐든 '작업복'으로 만들어버리는 초라한 차림의 내 아버지와 비교했다. 우리 집이 가난한 거냐, 라는 질문을 엄마에게 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먹고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몸으로 먹고사는 나의 아버지. 술에 취하면 온갖 말들을 뱉어놓고는 다음 날이면 기억도 나지 않는 말들을 빌고 빌고 또 빌어야 했던, 몸으로 간신히 쌓아 올린 것들을 번번이 말로 무너뜨리던 나의 아버지. 내게 너무 일찍 사람을 미워하는 일의 괴로움과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의 뜨거움을 가르쳐준 사람.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일을 하면서는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종종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이 더위에 이 추위에. 나는 사시사철 이 더위와 추위를 하나도 모르고 모니터 앞에 말갛게 앉아있는데, 아버지는 여름에는 땀을 뚝뚝 흘리고 겨울에는 바들바들 떨며 일을 했겠지. 앞으로도 하겠지.


다 끝난 일을 이제야 붙들고 걱정을 하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다 지나갔다. 다 지나갔으니 이야기한다. 다 지났으니 이제 괜찮다. 아버지가 요즘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시장을 쏘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웬 아르바이트냐고 했더니 아버지가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젊을 때 내가 인생을 너무 만만하게 봤어. 며칠 전에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를 누군가 뒤에서 박는 일이 있었다. 보험회사를 불러서 처리해야 할 일을 병원도 가지 않고 푼돈으로 덜컥 합의를 한 아버지에게, 세상을 왜 그렇게 물렁하게 사느냐며 화를 냈었다. 그럼 나는. 아버지가 평생을 물렁한 줄 빤히 알면서도 그렇게 혹독하게 쏘아붙였구나. 다 지나갔으니 이야기한다는 엄마의 말에 부끄러움인지 안타까움인지 화가 나는 건지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환갑이 넘은 아버지에게 남은 단어는 흉터, 아르바이트, 왜 그렇게 사느냐고 화를 내는 딸.


아버지의 물렁한 몸. 물렁한 마음을 생각한다. 물과 함께 뒤엉키기 쉬웠던, 물렁한 몸과 마음을 가진 당신이 할 수 없었던 말들과 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세상을 생각한다. 당신의 몸이 내게 말한다.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고. 연하고 보드랍던 당신의 몸은 이제는 나이를 먹은 나무처럼 물기 없이 메말라버렸다. 당신의 몸을 뜯어먹고 자란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보드랍고 연한 말을 골라서 하지. 한낱 보드라운 생각으로 이 세상을 먹고살겠다고 이 더위와 이 추위는 하나도 모르고 키보드를 두드리지. 당신이 물렁한 몸과 마음으로 평생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은 자식 때문. 나의 부드러움은 당신의 부드러움을 뜯어먹고 자랐기 때문. 내일은 당신의 연한 몸을 뜯어먹고 또 한 살을 먹은 나의 생일.


생일을 맞아 아버지에게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당신의 몸이 만만하지 않다고. 인생이 만만하지 않지만 만만하게 여기고 예까지 건너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몸 덕분이었다고. 흉터와 아르바이트를 업고 살아가는 당신의 몸을, 당신의 삶을 한때 부끄러워한 것이 미안하다고. 10년 전에 암 수술을 했을 때 미워서 가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당신이 내게 가르쳐주려던 것은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의 뜨거움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고. 마음에 있는 말이 자꾸만 반대로 나가는 사람의 어려움을 알기에, 마음에 있는 말을 겨우 제대로 꺼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내 부드러움의 절반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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