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면은

by 꽃반지


홀로 이 시대를 못 따라가나 싶을 때가 많다. 서점에서는 '뭘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 '대충 살아도 된다'등의 어깨에 힘 좀 빼고 살 것을 권고하는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순위권이고, 출근길마다 손에 무겁게 도시락 가방을 든 나를 보며 다들 한 번씩 놀라고 마는 걸 보면, 좀 대충 먹고살아도 될 것을 혼자만 이 유난인가 싶은 것이다. 발레 수업에서 홀로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끙끙대는 내 모습을 떠올릴 때면 스스로가 생각해도 갸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어깨에 힘주는 게 잘못인가요

잘하고 싶다. 병이라면 병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왕 시험을 치는 김에 백점을 맞고 싶고 달리기를 하면 지난번 기록을 깨고 싶고 외국어를 배우면 단어 하나라도 더 알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두고 '힘 좀 빼고 살라'는 말을 하지만 실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썩 달갑진 않다.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나와 달라서가 아니라 수영이나 운전처럼 그것은 내가 전혀 할 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할 줄 알게 되면 삶에 대한 시야가 한층 넓어지고 그렇게 열린 시야로 살피게 되는 삶은 분명히 더 즐거워질 것만 같지만, 경험해본 적 없으니 슬쩍 궁금하다가도 금세 시들해진다. 사람들이 내게 건네는 힘 좀 빼고 살라는 말은 좀 덜 열심히 살라는 말에 다름 아닐 텐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애당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잘하려고 힘껏 노력해도 쉽사리 백점을 거머쥘 수 없고 어제만 해도 그렇게 친하던 단어는 웬일인지 초면인 것만 같다. 그렇게 하고 있지도 못하지만 매일매일 치열하게 글을 쓴다 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데, 잘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않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어깨에 힘을 빼라는 말이 잘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며, 되려 어깨에 힘을 뺐더니 한껏 힘을 줬을 때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때도 있다는 걸 안다. 노래부를 때 공기반 소리반 하는 것처럼, 어깨에 힘을 빼고 힘이 빠진 그 자리에 공기를 슬쩍 불어넣으라는 뜻임을 안다. 그렇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나에겐 판타지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잘못 살고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을 안게 되는 것이다. 덜 말라 축축한 빨래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은 찝찝한 나의 기분을 보송하게 말려주는 한마디 말이 있었으니.


바로 유튜브 <유 퀴즈 온 더 유튜브>에서 강상희 수능 출제위원과 조세호 씨가 나눈 대화다. 말을 잘하고 싶다는 조세호 씨의 질문에 강 위원이 답했다.

조세호 :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위원 :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면은

여기까지 봤을 때 나는 99%의 확신으로 강 위원의 대답을 예상했다. "긴장이 되니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하세요'라는, 한마디로 어깨에 힘을 좀 빼라는 말. 그렇지만 이어진 그의 대답은 내 어깨에 걸친 젖은 빨래를 보송하게 말려주기에 충분했다.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면은 50% 실력이 쑥 늡니다. 왜냐하면 의식하기 때문에."

"어? 의식하고 하는데요"

"조금 더! 좀 더 잘해야겠다! 이렇게"

조금 더, 조금 더 잘해야겠다. 그렇지. 열심히 하는 것은 잘하고 싶기 때문에,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기 때문인 것이고, 그런 마음으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때,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었음을 확인할 때 나는 행복하다. 같은 빵집이라도 각자의 선호에 따라 고르는 빵이 다른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느긋하게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촘촘한 시간을 보내며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데 열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어른이 된 지금에야 떠올리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새삼 느낀다. 개미처럼 하루하루 무언가를 쌓아 올린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으며 베짱이처럼 하루하루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다가올 추위에 굶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인생은 일직선이 아니며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생은 무언가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이 이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행복한 방식을 선택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 조언하는 것은 식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팥빵을 고르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긴대로 살겠습니다

어느 날의 출근길 아침, 김밥 한 줄 사려다가 안 판다는 사장님과 귀여운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자주 들르던 김밥집에서 여느 때처럼 김밥 한 줄 사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당근이 없어서 안된단다. 출근 시간에 쫓겨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김밥을 팔지 않겠다는 사장님의 의지는 확고했다.

"당근 없어도 제가 괜찮은데요!"

“안돼요. 당근 없으면 맛없어요.”

“사장님 김밥은 당근 없어도 맛있어요!”

“당근 없으면 썰었을 때 안 예쁘단 말이에요!”

결국 당근 없는 빈자리를 오이로 대체하기로 합의(?)를 봤다. 기다리는 동안 먹고 있으라며 사장님이 내어주신, 메뉴에도 없는 시금치 아보카도 김밥 하나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김밥 싸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테이블 두 개 남짓 들어가는 지하 매장, 당근 없어도 되니까 김밥 한 줄 빨리 말아달라는 손님. 내가 주인이라면 어땠을까. 당근 없어도 괜찮댔으니 있는 재료 대충 넣어 한 줄 뚝딱 말아줬을 텐데. 맨날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며 회사로 억지로 출근할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이라도 저렇게 열심히 좋아하고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나의 온 마음이 바다에서 막 건진 돌김처럼 울렁거렸다. 그 바쁜 아침에 김밥 한 줄 놓고 사장님이랑 실랑이를 벌이던 그날 아침은 두고두고 웃음이 난다. 대충 하고 싶은 일, 허투루 해도 괜찮을 일 앞에서 그날 바라본 사장님의 작은 등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다가도 마침내 차분해진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50% 실력이 쑥 늘진 않겠지만 50% 행복해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끈기 있게 품다 보면 마침내 조금 더 잘하게 되고, 그런 흡족함이 자기뿐 아니라 남들 또한 행복하게 하니까. 전보다 더 맛있어진 어느 집의 카레, 전보다 더 새로워진 가수의 음악, 전보다 더 와 닿는 어느 문장. 훨씬 더 나은 결과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결과를 내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애썼을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우리의 마음에 고스란히 와 닿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기반 소리반의 태도로 살아가는 이들 역시 행복하리라 믿는다. 공기가 부드럽게 스며들듯 그들이 가진 특유의 여유와 편안함은, 그 자신뿐 아니라 그들을 보는 사람들 또한 행복을 느끼게 할 테니. 때로 생활에서 짐짓 여유를 꾸며내 보지만 여유조차 열심히 누리려고 애쓰고 마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본 투 비 개미다. 매일매일 성실히 뭔가를 쌓아 올리며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더 이상 나는 왜 베짱이가 못되나 탄식하지 않는다. 그저 베짱이가 옆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노동요 삼아 더 힘껏, 즐겁게 일해볼 참이다. 이왕 태어난 김에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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