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퇴근 후 과자를 두 봉지나 먹고는 씻지도 않은 채 누워있다가 기어코 일어나 쓰기로 합니다. 요즘은 황정은 작가의 책들을 읽고 있는데 마침 주인공들이 챕터별로 자기 이름 뜻을 밝히며 소개를 하는 부분이 있어, 저도 오늘은 제 소개를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제가 쓰는 글에 괜히 달칵이라는 의성어라던가, 전에 보지 못한 표현이 들어가는 것은 모두 황정은 작가의 영향이니 그러려니 이해해주세요. 무협영화에 한창 빠져있는 아이가 걸핏하면 총질을 하고 다니는 것처럼, 지금의 저는 그런 문장의 영향을 받는 시기입니다. 읽을 때마다 와 괴물, 이라는 탄식을 나지막이 내뱉게 되는, 좋은 문장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황정은 작가의 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책의 주인공들을 빌려 보자면, 주인공 세 명이서 모여 만두를 빚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 수에 비해 빚을 만두가 워낙 많아서 만두피를 밀다가도 만두소를 넣고 만두소를 넣다가도 만두피가 모자라면 만두피를 밀어야 합니다. 주인공들이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만두를 빚는 모습을 그려보다가 이게 꼭 내 모습이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빚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이쪽저쪽을 열심히 옮겨 다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요.
회사를 다니는 작가입니다
저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회사원입니다. 작가를 앞에 둔 것은 순전한 저의 바람이고 사실은 회사원에 가깝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면 최소 하루에 열한 시간을 회사에서 보냅니다. 글은 매일 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매일 하루 두 시간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업무가 유독 많고 고된 날은 글이고 뭐고 잠이나 자자 싶습니다. 실은 잠이나 자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불을 훤하게 다 켜고 출근 때 입은 옷 그대로 잠에 빠지는 날도 많습니다. 그래서 작가님, 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를 흠칫하면서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말을 들어도 되나, 작가는 하루에 열 한 시간을 쓰고 있어야 하지 않나, 내게 부끄러운 이름이다, 하는 마음으로요. 작가라는 직업군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회사원으로서의 저를 모르고 작가로서의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에 놀라고 때론 신기해합니다. 작가도 먹고살아야지요, 하고 웃으면서 대꾸하면 책 쓰면 돈 많이 버는 거 아니에요, 라는 말간 대답이 돌아옵니다. 말간 대답에다 대고 굳이 '한 달에 책 몇 권이나 읽으십니까'하고 묻진 않습니다. 말간 대답에 먹칠을 하기는 싫으니까. 회사원으로서의 저에 대한 주변의 편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저에게 '앞으로 먹고 살 걱정 안 해서 좋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먹고 살 걱정 때문에 회사를 다니는, 피차일반인 입장인데 먹고 살 걱정을 안 해서 좋겠다니요. 그런 말을 들으면 대답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국 이런저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모니터를 바라봅니다. 회사 안에서 저의 책을 좋아해 주시는 분이 있어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다음 책 나오면 선물로 드릴게요'라는 말을 드렸는데, 그분이 '아니 아니. 다음 책 말고 회사 일을 멋지게 해 줘'라는 말을 돌려주었습니다. 이쪽저쪽을 옮겨가며 뭔가를 열심히 빚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딱 멈춰버렸습니다. 양쪽의 편견 속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이쪽저쪽을 오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지 않나. 밥을 굶어도 열한 시간을 쓰는 삶을 택하거나, 열한 시간을 일하고도 뭔가를 쓰겠다며 끙끙거리기보다는 편하게 쉬는 삶을 택해야 하지 않겠나, 이제는 정말 오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지 않나, 만두소이든 만두피든 확실한 뭔가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회사 덕분에 썼고요
때로는 오로지 작가인 나를 생각합니다. 오로지 작가인 사람. 전업작가. 전업작가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전업 회사원이라는 말은 없는데 전업작가라는 말은 있습니다. 전업이라는 말은 한 가지 일이나 직업에 전념하여 일하는 것을 뜻하는데, 전업 회사원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말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원이 전업인 것은 너무나 흔하고 당연해서 쳐주지 않는 말인 건지, 아니면 회사원들은 전념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전업을 붙여주지 않는 건지. 그렇다면 회사원들이 얼마나 섭섭한지요. 전업작가를 꿈꾼다고 썼지만 실은 저는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사람이니 얼마나 우습게요.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먹고살 길 걱정 없다는 어머니의 분부 하에 중국어와 경영을 전공했습니다. 은행으로 가는 길만이 발 밑에 있었는데 왠지 그때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어서, 작은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어차피 지금부터 글을 제대로 배우기엔 늦은 것 같으니(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린 나이입니다) 돈을 벌며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는 순진하고 가련한 포부였습니다. 이름 있는 번듯한 회사에 가서 제대로 배웠으면 좋았겠지만, 그때의 나는 뭔가에 쫓기고 있었고 늘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말도 안 되는 잡지를 만드는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장은 어설프고 자존감은 낮고. 누가 제 글이 좋다고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돈을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슬픔을 안고 살던 시기라 되도록 늦게 출근해서 되도록 일찍 퇴근하려 노력했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회사원이 곱게 보일 리 없겠지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나를 받아준 회사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큽니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면서 온갖 글을 다 쓰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상사에게 불려 가 더 나은 표현이 없느냐, 좀 더 다듬어봐라, 좀 더 멋진 표현을 해봐라 등의 말을 듣고 수정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때는 끔찍이 싫었고 물론 지금도 피곤하게 여겨질 때가 있지만, 그런 과정 없이 그저 방에 틀어박혀 나만의 글쓰기를 했다면, 어쨌거나 오늘의 나는 없었을 테니까요. 보도자료도 인터뷰도 취재기사도 카피도 리플릿도 명절 인사말도 모두 모두 써본 것이 지금의 저에게는 큰 재산입니다. 질적인 의미를 차치하고도 물리적인 의미로도 회사를 다닌 덕분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전에도 몇 번 다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책 작업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때 다니던 회사의 대표님이 제가 내민 사직서에 사인을 해주면서 물었습니다. 앞으로 뭐 먹고살려고요. 손가락 빨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대표님이 사직서 대신 휴직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아 먹고살 궁리는 해놔야 되는 거예요. 먹고살 궁리, 그 궁리를 하지 않는 사람은 작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글만 써서는 먹고살 수 없으니까요. 최대의 휴가로 4개월을 얻어 책 한 권을 쓰고 회사로 돌아가니 회사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퇴직금과 기타 다른 돈을 받아 또 다른 책을 한 권 썼습니다. 먹고살 궁리와 쓰고 싶은 욕망이 적당히 맞물릴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또다시 그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으니 이제는 어느 한쪽으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작가가 되기는 사실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세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꾸준히 읽고 꾸준히 쓰고 멈추지 말 것. 이 세 가지를 지키면 작가가 됩니다. 회사에 시간을 많이 쓰기 때문에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는 때가 많습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작가들이 분기마다 책을 척척 내는 것을 보면 배알이 꼴립니다. 나도, 나도, 시간만 있으면 넉넉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쓸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배알이 꼴리는 것의 진짜 이유는 쓸 이야기가 없어서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들 척척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쓰고 또 쓰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나는 쓸 말이 없어서 이런 것도 썼다가 저런 것도 썼다가 합니다. 주제를 딱 정하고 쓰려니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신변잡기에 관한 글을 다 씁니다. 주제는 정하지 못하고 태도는 정했습니다. 최근에야 겨우 한 문장으로 글쓰기에 대한 태도를 정리했습니다. 아주 작은 말을 정성껏 하기. 앞에서 황정은 작가의 이야기를 꺼낸 김에 한번 더 꺼내보겠습니다. 그녀의 최근 작에 달린 평을 읽다가 '당신은 더 잘 쓸 수 있다'라는 말을 읽고는 폭력적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해석이 담겼을 수도 있겠으나 그 말은 당신의 내일을 기대한다가 아니라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에 훨씬 가깝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한편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평도 있었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라는 간결하고 담백한 여섯 글자였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쓰는 사람으로서 읽는 사람에게 듣는 말이라면 정말 저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질 응원이었습니다.
당신은 읽는 사람인가요, 쓰는 사람인가요. 읽는 사람이라면 저의 글을 읽어주어서 기쁘고 고맙습니다. 쓰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삼요소를 놓지 않고 함께 계속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꾸준히 읽고 꾸준히 쓰고 멈추지 않는 삶. 책을 많이 읽으면 그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된다는 말처럼, 꾸준히 읽고 쓰고 그러다 책 몇 권을 펴내면 그저 꾸준히 읽고 쓰다 책 몇 권을 펴낸 사람이 되겠지요. 그게 다입니다. 나의 온 세계가 들어있어도 눈길 한번 받지 못할 일이 태반인. 그렇지만 삶이 뭔가를 빚는 일이라면, 쓰는 일은 뭔가를 빚는다는 감각만큼은 확실하게 가져갈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실하게 한 글자 한 글자가 쌓이는 것을 손으로 감각하고 눈으로 감각할 수 있으니까요.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며 만두피를 밀었다 만두소를 넣었다 하더라도 삶이라는 만두는 결국 피와 소가 맞물려야 맛있는 법이니까, 저는 제가 버틸 수 있는 한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볼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한쪽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는 아, 이제는 이것만 해야겠다 하고 마음을 결정하는 때가 올 수도 있겠지요. 마음을 붙인 쪽이 글쓰기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만두를 앞에 놓고 잘 먹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절로 이는 것처럼 잘 읽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이는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 소개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