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즐겨본다. 제대로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반짝이는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어깨를 곁고 살아가는 이웃들, 어디선가 한 번은 마주쳤음직한 이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마음에 잔잔한 위로를 얻는다. 얼마 전엔 이삭토스트 대표와 리코더를 전공하는 스물다섯 청년의 영상을 보았다.
천사가 왔다 갔나 봐
토스트 하면 누구나 단박에 떠올릴 정도로 이삭토스트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지만, 시작은 혼자 꾸리는 3평 남짓의 가게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사가 곧잘 되었지만 경쟁 업체가 등장하면서 대표는 고민에 빠졌고, 그때 처음 보는 여학생 한 명이 토스트에 소스를 바르면 훨씬 더 맛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소스에 들어가는 재료를 하나하나 일러주고 갔다고 한다. 그 말을 따라 개발한 소스는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매출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 대표는 너무 고마운 마음에 그 학생을 이리저리 수소문해보기도 하고, 인근 학교 강의실을 하나하나 뒤져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찾을 수가 없어 "천사가 왔다 갔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리코더를 전공하게 된 청년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너무 좋아해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아버지가 아프면서 어머니가 생계에 뛰어들게 되자 집에서 비싼 레슨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로부터 더 이상 지원이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됐을 때, 울음소리를 감추려고 피아노를 치면서 울었다는 얘기에 나도 눈물이 슬쩍 났다. 노력하고 싶어도 노력할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거니까. 결국 그는 줄곧 바라던 예고에 진학하지 못하고 일반고에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방과 후 활동으로 리코더를 추천해준 선생님이 계셨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리코더뿐이다'라는 생각에 하루 열 시간 이상을 리코더 연습에 매진했고, 마침내 한 학년에 단 두 명을 뽑는 리코더 전공으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의 영상을 보며 내가 만났던 말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연예인들의 화려한 일상보다는 이웃들의 작은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도록 머무는 것처럼, 내 옷자락을 툭 스쳤나 싶은데 돌아보면 나의 인연이었던 말들이 있다. 마음에 오래 남은 말이 있다면 그건 천사의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천사가 슬며시 다가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보석이 될 말 한마디를 툭, 떨어트리고 가는 것이다.
그 말이 길을 밝혀줄 거예요
내가 만난 천사의 말은 어떤 게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안내한 것도, 기한 없이 손 놓고 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모두 누군가의 말 한마디였다. 우연히 알게 된 국문과 선배가 개인 블로그에 부려놓은 내 글을 읽고 글을 한번 써보라고 했다. 처음엔 으레 하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지만, 선배는 글마다 선배가 꼼꼼하게 자신의 감상평을 달아주었다. 글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기쁨, 누군가 내 글을 진지하게 읽어줄 때의 기분을 그렇게 알았다. 그러다 취직을 하게 됐고 생활이 바빠 글쓰기를 잊고 살았다. 글은커녕 집에 돌아오면 지친 몸을 누이다 불을 켠 채로 잠들기 일쑤였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다, 이럴 바엔 좋아하는 책이나 실컷 보자 싶어 출판사 들어가 일하던 무렵이었다. 출판사에 종종 들르던 번역가 언니를 알게 되었다. '멋있다'의 사전적 정의가 사람이 되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싶게 멋있었다. 당연히 유학파일 거라 생각했다.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인사만 꾸벅하다 조금씩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던 어느 날, 언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번역가가 되셨냐고. 다들 앞을 향해 고속도로를 타고 쭉쭉 달려가는데, 나만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초조하고 불안한 시기였다. 그런 마음에 언니에게 어떤 힌트라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언니의 답이 의외였다. 번역가의 꿈을 품고 매진했을 줄 알았는데, 그녀 역시 졸업 후에 뭘 할지 막막해하다가 우연히 번역 강좌를 들었고 숙제를 성실히 해갔다고. 그런데 그 강좌를 듣는 사람들 중에 숙제를 해가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었고, 그런 언니를 눈여겨본 강사가 언니를 출판사에 소개해주어서 번역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유학은커녕 영어 전공자도 아니라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 말을 듣곤 용기를 내 꽁꽁 숨겨온 나의 작은 마음 한 조각을 꺼내놓았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나는 아마 안될 것 같다고, 언니처럼 타고난 실력도 없는 것 같다고. 그때 언니가 내게 상큼한 번개 한 방을 날려주었다.
"그래서 넌 지금 뭘 쓰고 있는데?" "네? 전 작가가 아닌데요."
"작가를 누가 시켜줘야 하니? 작가라면 언제나 쓰고 있어야지 않겠어?"
그때의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아니 좋은 글은커녕 제대로 된 글 한편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뭔가를 쓰다가도 매번 '나도 잘 모르겠다'로 마무리를 지으며 슬그머니 도망가는 그런 글들만 잔뜩 쓰는 사람이, 한 편의 글을 온전히 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겨우 쓴 글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지 못했다. 그렇지만 작가라면 언제나 쓰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그 말을 듣고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수정했다. 작가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지금 어떤 글을 쓰고 있냐"라고 물어보면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되자고 마음먹었다. 그 뒤로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날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나를 향한 믿음과 애정이 담긴 말 덕분이었다. "잘 읽고 있어요" 블로그에 달리던 댓글들, 잡지사에 투고한 나의 원고를 읽고는 계속해서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메일을 보내준 편집장님,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처음 보는 내 손을 잡아주던 제주도의 카페 사장님... 어쩌면 이 모든 말들이 천사의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글을 쓰며 뒤늦게 했다.
주위의 몇몇 사람들에게 위에 언급한 유튜브 영상을 이야기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했다. 정말 천사가 왔다 갔나 봐, 하는 이도 있었고, 어차피 세상은 될놈될(될 놈은 된다)이라고 답하는 이도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 옮긴다. "그런 말도 중요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있어야죠. 토스트에 소스 발라보라고 설마 그 사람한테만 말했겠어요. 리코더 한번 해보라는 말도 마찬가지고요.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실천해보는 태도 덕분에 성공한 거 같은데요" 그 말을 듣고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살면서 캄캄한 어둠에 갇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천사는 슬그머니 우리의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면서 농담처럼 가벼운 한마디를 건네고 사라진다. 천사가 그렇게 흩뿌리고 간 말은 세상의 여기저기에 널려 있지만, 눈 밝은 사람만이 그것을 알아보고는 갈고닦아 마침내 자신의 보석으로 만든다. 천사의 말을 만난다면 우리가 할 일은 그 말을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이지만, 그 말을 갈고닦다 보면 마침내 품에 안은 말에서 빛이나 앞길을 비춰줄 것이다. 나도 그 가느다란 빛을 따라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