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의 일이다.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전철 안, 텅 빈 좌석에 드문드문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잠들어있거나 핸드폰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나도 피곤에 젖어 반쯤 잠에 빠져 있을 때, 차분한 목소리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거리에 낙엽이 쌓이는 걸 보면 올가을도 이렇게 가는구나 싶습니다. 공기가 많이 쌀쌀하네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도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남은 하루도 편히 보내세요.
차갑고 삭막했던 전철 안의 공기가 목소리에 담긴 온기 덕분에 금세 훈훈해졌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문득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급하게 핸드폰 메모를 뒤적였다.
계절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고 있습니다. 출입문 진짜 닫을게요.
메모가 작성된 날짜를 확인하니 삼 년 전 구월이 막 시작된 첫날이었다. 그날 전철에 몸을 싣고선 무심히 안내방송을 듣고 있다가, 놓칠세라 급하게 받아 적은 것이라 마지막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 매일 똑같다며 자칫 흘려버릴 뻔한 미묘한 절기의 변화를 챙겨주는 세심함이, 출입문을 진짜 닫겠다고 한번 더 말해주는 다정한 배려가 좋아서 한동안 핸드폰 메인 화면에 걸어두고는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곤 했던 문장이었다. 그때 그분이 맞는구나. 전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와 삼 년 전 문장을 포개 본 나는 마음을 덜컥 놓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이름 모를 누군가들을 위해 여전히 아낌없이 따뜻했을 거라는 사실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안심하는 마음 사이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아니 뭘 이렇게까지
5년 전 나는 새해를 하루 앞두고 충동적으로 대만에 갔다. 빈방이 없어 한 게스트하우스의 거실에서 시트만 깐 채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새해가 몇 시간 채 남지 않다 보니 다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 모여 맥주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 해를 보내는 소회를 나누게 됐다(다들 내 방에 모인 셈이다). 그들 중 홍콩에서 온 알렉스가 있었고, 그는 한국 사람은 처음이라며 내게 한국어로 새해 인사를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뒤 새해가 되자 그는 내게 “쌔봉 마니 바두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내게 카드를 보내고 싶다기에 한국 주소도 알려주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엽서를 받았다. 한번 보내고 끝일 줄 알았는데 그 뒤로도 알렉스는 해마다 내게 엽서를 보내왔다. 심지어는 브라질 리우 올림픽 자원봉사를 가서도 엽서를 보내왔다. 엽서의 마지막 줄엔 항상 “답장을 기다린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답장을 한 번도 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답장을 쓰고 싶은 마음이 답장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슬그머니 바뀌어 짜증이 일었다. 답장 없는 엽서에도 줄곧 엽서를 보내는 그의 너그러움과, 바쁘다는 핑계로 응답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짜증이었다. 집 근처에도, 회사 근처에도 우체국이 있었는데 나는 뭐가 그리 바쁘고 어려워서, 무려 5년 동안 한 번도 우체국에 가지 못했나. 그에게 보내주려고 한국의 문화재가 그려진 엽서를 사둔 것도 벌써 3년 전이었다.
5분, 470원, 30초
남들의 세세한 사정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이들이 있다. 흔히 ‘오지라퍼’로 불리는 이들. '오지랖이 넓다'는 표현은 보통 부정적인 상황에서 사용되기 마련이라, 오지라퍼 역시 긍정보다는 부정의 어조에 가깝다. 집에 컴퓨터를 고치러 온 수리기사 분과 라면을 끓여먹고, 내친김에 같이 포차에서 술 한잔 걸치며 인생 상담까지 해준 지인 A(네가 컴퓨터를 고쳐줬으니 난 너의 인생을 고쳐줄게).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라디오 방송 스케줄과 콘서트 일정, 인스타그램 피드까지 수시로 업데이트해주는 지인 B(그의 열정에 비하면 나는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자정 무렵 걸려온 전화에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 받았더니, 다짜고짜 꺼내는 첫마디가 "튀김 반죽에 식용유를 넣어봐!" 하고 TV에서 본 레시피를 알려주는 지인 C(꿈에서 만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서른이 넘도록 무시로 전화를 걸어와 "까스불 조심해라." 하시던 외할머니(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꽤 오랫동안 이들의 존재를 고마워하면서도 불편해했다. 빠듯한 내 하루를 챙기기에도 바쁜 마당에, 자잘한 남의 사정까지 살뜰하게 챙길 여유가 어디 있담. 그들의 오지랖이 기꺼이 나까지 감싸 안을 때면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의 여유를 시샘했다. 그들의 오지랖은 기꺼이 다른 이를 품을 정도로 넉넉했지만, 내 몫의 오지랖은 내 한 몸 싸매기에도 빠듯한 것처럼 여겨졌다.
삼 년 동안, 혹은 내가 알지 못했을 더 오랜 시간 동안 따뜻하게 승객들을 보듬던 안내방송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알렉스도 같은 마음으로 내게 엽서를 보낸 것이리라. 우연한 여행 중에 잠깐 스친 친구의 안부를 잊지 않고 해마다 꼬박꼬박 챙겨주는 마음으로. 몇 달이 지나 다시 새해가 되었고, 알렉스는 어김없이 내가 가르쳐준 한국어로 새해 인사를 보내왔다. 사둔 엽서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 어느 홍차 브랜드에서 나눠준 엽서의 뒷면에, 답장이 늦어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쓰고는 우산과 엽서를 챙겨 집을 나섰다. 눈이 펑펑 오던 1월의 어느 날 아침, 집에서 우체국까지 걸어서 5분, 국제우편 발송료는 470원, 보내는데 걸린 시간은 30초였다.집으로 걸어오며 생각했다.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 오지라퍼는 남들보다 특별히 시간이든 마음이든 여유가 넉넉한 이들이라는 오해도, 혼자만의 질투도 발에 닿은 눈처럼 살그머니 녹았다. 오지라퍼의 자격은 그저 '5분, 470원, 30초'에 충실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였다.
오지라퍼에 대한 내 사전의 정의도 수정하게 됐다. 오지라퍼는 참견쟁이가 아니라, 일상과 일상의 빡빡한 틈바구니에 기꺼이 자신의 마음을 끼워 넣는 사람이었다. 그들 덕분에 일상의 날 선 장면과 장면이 날카롭게 부딪치지 않고 부드럽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곤 했으니. '몸과 마음이 골고루 지친 하루’라는 타이틀로 확정될 뻔했으나, 안내 방송 덕분에 ‘지쳤지만 그래도 보람찬 하루’라며 타이틀 명을 수정하게 됐고, 빡빡한 업무 중에 사무실로 날아든 엽서 한 장 덕분에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잠시 웃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오지라퍼의 정의를 다시 하자면 ‘일상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사람'일 것이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자면 지구가 둥글어진 이유도 어쩌면 그들 덕분일 수도 있다. 그들이 있는 한 지구는 다행히 계속 둥글 것이고 지구가 둥그니까 우리는 언젠가 만날 것이다. 지하철에서, 대만의 거실에서, 뜻밖의 어딘가에서 우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