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추석 맞이 월병
'멈출까?'
3분 전이다. 구두를 신고 힘껏 아스팔트 위를 내달리는 중에 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캐리어도 나의 속도에 발맞춰 달달달 소리를 내며 열심히 달리고 있다. 힘내라 동지여.
해마다 맞이하는 명절, 서울에 거주하며 고향을 서울 외의 도시에 둔 소위 '지방러'들은 명절 몇 주전부터 눈에 불을 켜고 기차표 예매 전쟁에 돌입한다. 나도 서울에서 지내던 초기에는 명절마다 어떻게 고향에 내려가야 할지 발을 동동 굴렀다. 모니터 앞에서 광클의 예술을 발휘하기에 내 손가락은 버퍼링이 심했으며, 막히는 도로에서 예닐곱 시간을 버티기에 내 엉덩이는 역부족이었기에. (서울에 올라온 첫 해에 뭣도 모르고 친구네 승용차를 얻어 탔다가 무려 아홉 시간이라는 대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 모든 고민을 단번에 해결하는 근사한 방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운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한 명쯤은 예매한 기차표를 취소할 일이 생기겠지. 갑자기 집에 내려가기 싫어졌다거나, 회사에서 급한 일로 연락이 왔다거나.' 이 방법을 쓴 지 벌써 5년을 훌쩍 넘겼는데 그동안 단 한 번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적이 없으니 꽤나 추천할만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차표는 전 시간 매진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나 한 명 갈 자리 없겠는가. 어제 새벽. 눈이 번쩍 떠지더니 촉이 왔다. '지금이다!' 새벽이라고 말하기엔 살짝 민망한 아침 6시 45분 기차를 예매했다. 그 뒤로도 틈틈이 기차표를 살피며 더 괜찮은 시간대에 간간이 나오는 표를 아쉬워했지만, 이 정도면 뭐.
오늘, 여유 있게 출발하기 위해 이른 4시를 살짝 넘겨 일어났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캐리어에 우산에 손에 가방까지 하나들 생각을 하니 갑갑했다. 명절마다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에 가는 걸까. 대구 출신의 카피라이터 김민철 씨도 어느 책에서 '내 고향은 망원동이다'하고 밝히지 않았던가. 부모님은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딸이 '객지'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를 바라지만, 이미 나의 객지는 고향이 되었다. 어떻게 이 곳에서 내 유년을 다 보냈을까 싶을 정도로 설고 설은 곳. 나의 집, 나의 고향.
아무튼 그토록 일찍 일어났으면서도 웬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차 출발 3분을 앞두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지금 멈추기엔 날개를 달고 눈앞에서 날아가는 취소수수료가 아른거리고, 계속 달리자니 새벽 댓바람에 일어나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동동거린 내 몸에게 미안하다. 결국엔 자본의 승리. 헐떡거리며 출발 직전의 기차에 올라탔다.
십 년 전이었나(벌써?). 중국 유학을 하던 당시에 추석을 맞으며 월병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둥그런 달을 닮은 과자로, 추석 때 먹는 중국의 전통과자다. 해마다 추석이면 중국의 모든 제과점은 월병 판매에 여념이 없고, 종류도 수십 가지로 다양하다. 어머니의 생신이 그맘때쯤이라 그때 월병을 사서 직접 그림을 그린카드와 함께 한국으로 부쳤는데, 받아본 어머니가 오래 울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멀리 있을 때는 그토록 애틋하던 마음이 가까워지면 왜 되려 시드는 걸까.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지만, 서울에 살면서는 어머니의 생신을 못 챙긴 적이 많다. 쩝.
어제는 유명한 월병 집에 들렀다. 들르기 전 전화를 했을 땐 '거의 다 팔려서 와도 못 산다'는 대답을 들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입구에 늘어선 줄 맨 뒤에 섰더니 내 바로 앞에 선 아저씨가 '딱 나까지만 살 수 있어요. 내일 와요.'하고 몇 번이나 나에게 힘주어 말했다. 몇 차례나 나에게 말하는 통에 나중엔 기분 나쁠 정도. 뭐, 모두가 줄을 서서 애타게 원하는 뭔가를 마지막으로 쟁취한 럭키가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 나 원래 그런 말 잘 안 듣는다. 내가 통 말을 안 들으니, 내 뒤를 이어 계속 줄을 서는 사람들에게 아저씨가 실실 웃으면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까지만 살 수 있어요. 가세요!' 당신이 주인도 아니고 기분 나쁘게 왜 자꾸 그러냐는 누군가의 원성을 듣고서야 아저씨는 멈췄다.
드디어 내 차례. 갓 구워낸 월병이 참 뽀얗고 예쁘다.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짝꿍 협찬으로 두 박스를 포장했다. 한 사람당 세 박스만 살 수 있어서 왠지 세 박스를 사고 싶긴 했지만.
어제 새벽에는 단호박을 찌고 좋은 꿀과 현미가루로 반죽한 머핀을 구워두웠다.
월병과 어머니가 맛보고 싶다는 단호박 머핀과 미리 주문해둔 마카롱까지 아이스팩에 단단히 챙기고 비 오는 컴컴한 새벽을 뚫는다. 효녀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하루쯤은 효녀 노릇도 괜찮겠지. 어머니가 지나왔을 칠흑 같은 수많은 날을 헤아려본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미워해왔다. 이제 미워하는 건 멈출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