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좋아할 용기

좋아서하는밴드 10주년

by 꽃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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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 걸까. 나에게 편안하고 특별한 느낌을 주는 무언가를 떠올리기가 쉬우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 비현실적이다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는 것 같다.


열아홉 살. 내가 좋아하는 것, 앞으로도 계속 좋아하고 싶은 것에 대해 가만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떠밀리듯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는 그런 시간을 가진다는 자체가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남들은 모두 확실한 어떤 것을 이미 가슴 속에 품고 있었고, 달릴 준비를 다 마친 채 출발선 위에서 신호만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으니까. 왜 달려야 하는 건지 영문도 모르고, 운동화 끈도 매지 못한 채 그저 등떠밀려 출발선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사람은 딱 나 혼자 뿐인 것 같았다. 외로웠다.


그맘때 음악을 참 많이 찾아서 들었다. '좋아서 하는 밴드'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건 마치, 아주 오랜 친구와의 처음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일 테니까. "저희는 그냥 좋아서 하는 밴드예요!" 하는 밴드 이름이 부럽고 특별해보이기도 했었고, 일상의 어느 풍경에 걸어두어도 잘 어울리는 노랫말과 멜로디가 맘에 들기도 했을 것이다.


처음에 EP를 사고, 그다음에 또 EP를 사고, 그런식으로 '좋아밴'과 나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졌다. 지방에 살고 있어서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앨범이 나올 때마다 이들이 여전히, 다행히 음악을 하고 있어서 고마웠다. 나는 그들이 음악을 하는 동안, 전혀 관련 없는 전공을 유학까지 다녀오며 무사히 마쳤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저 여전한 건지 글을 쓰고 싶었다. 늘 시간나면 혼자서 끼적이던 어릴때 모습 그대로, 글을 쓰고 싶었다. 부모님과 교수님이 좋아할 번듯한 회사를 뒤로하고,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직원 다섯 명의 작은 출판사에 들어갔다. 월세에 허덕이고,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글 쓰겠다고 해놓고는 삶에 쫓겨 글 한줄 쓰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많이많이 괴로워하고 절망했다. 그때마다 나의 위로가 되어준 것은 열아홉 무렵에 듣던 수없이 많은 음악이다. 서울에 와서 크고 작은 무대에 서있는 그들을 실제로 만나고, 음악을 듣고, 음악 속에 살아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힘을 내고 삶을 위로했다. 빨강 아니면 파랑처럼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고 아니면 불행' 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주 서서히.


몇 년 전, 어느 무대에선가 조준호 님이 <천체사진>이라는 곡을 부르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슬럼프에 빠져서 아무런 곡도 쓸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우연히 천체사진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고. 아무 것도 없는 까만 밤하늘을 한참동안이나 아주 느리게 촬영해 켜켜이 쌓은 별빛으로 이루어지는 그 사진처럼, 자신도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런 멋진 사진을 만들어가는 중이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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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좋아밴 10주년 공연이 있었다. 공연 전 좋아밴의 거리공연 시절 영상이 나왔다. '좋아서 한다'는 그들의 특별한 이름과 호기로움을 부러워하던 나의 그 무렵, 그들은 거리에서 음악과 부딪치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니 눈물이 조금 났다.


외롭고 고단했던 내 일상의 풍경마다, 좋아밴의 노래가 무심한 달력처럼 걸려있다. 동네 놀이터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어느 날에도, 일을 마치고 시커먼 밤공기를 뚫고 집으로 돌아가던 겨울에도, 좋아하는 사람과 잘 안됐을 때도, 신이 나서 샤워를 할때도 내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좋아밴의 달력은 한장씩 넘어가고 있었겠지.


'좋아서 하는 밴드' 덕분에 나는 어쩌면 좋아할 일을 계속해서 좋아할 용기를 배운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으니까. 간혹 작은 잡지에서 내 이름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나의 책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좋아밴의 스무살도, 서른살도 계속해서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다는걸 보여준 좋아밴 여러분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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