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요?' 하는 물음을 마주하다

by 꽃반지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내가 받아온 질문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질문일 게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라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일 년에 책을 몇 권 읽으세요, 하루에 무조건 몇 줄은 쓰세요 등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수치화된 의무를 지우고 싶지도 않다. 내가 그렇게 해본 적도 없고.

그러니 그런 질문을 마주할 때면 나는 가장 조심스럽게, 그가 얼마나 글쓰기를 좋아하는지를 부드럽게 일러준다. 이미 좋아하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것이니까. 응원합니다. 그리고 함께 가요.

-2018년 10월 12일


어제 회사동료와 대화를 나눈 후,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짧게 남긴 글이다. 위의 글에서 남긴 것처럼 나는 회사에서 하루종일 껌뻑껌뻑하는 커서를 들여다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을 한다. '좀 더 쌔끈한 표현 없나요?' '남북통일과 재생에너지와 최신 트렌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세요' 등과 같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감내하면서. 묵묵부답으로 을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다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미쳐버리거나 지쳐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였으면 좋겠지만 둘 다겠구나, 하고. 어쨌거나 아직까진 키보드를 묵묵히 두드리고 있다.

직업을 글쓰기로 삼고 있으면, 이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을 자주 접한다.

- 글 잘 쓰시겠네요! (야구선수한테 야구 잘 하겠네요! 라고 말하진 않을텐데.)

- 문창과 나오셨어요? (아니요.)

- 저도 글쓰기 좋아하는데. (네, 그러시군요.)

- 책 내려면 어떻게 해요? (그건 출판사에 가서 물어보세요.)

- 책 많이 읽으면 글 잘 써요? (맛집 많이다니면 요리 잘 하게 되나요?)


출판사에 몇 년간 몸 담았던 적이 있는데, 그 때 놀랍게도 평소에 연락도 없던 먼 지인들이 자주 전화를 해왔

고 하나같이 '책을 쓰고 싶다, 책을 내려면 어떻게 하나, 이모 혹은 엄마(그렇다면 본인일 확률이 99%다)가 책을 쓰기 위해 모아왔던 원고가 있으니 봐줄 수 있나' 등의 내용이었다. 내가 베테랑 편집자도 아닌데다, 원하면 책을 떡하고 찍어줄 수 있는 출판사 사장도 아닌데 그저 내가 출판사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토록 연락을 해댈줄이야.

그러고보면 글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참 야릇한 것 같다. 누군가 에베레스트를 올랐다고 하면 '아, 대단하네' 하고 진즉 말아버리는데, 글쓰기는 생각하는 머리와 손가락만 있으면 되니 '어디, 나도 한번' 하고 누구나 발을 디민다. 그게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고. 별 다른 장비를 요하지 않는 크로키나 뜨개질 따위도 최소한의 불편-4B연필과 노트, 실과 대바늘을 챙겨야 한다는 정도-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글쓰기는 정말로 간편하고 산뜻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글을 쓰고 싶어할까? 책 한권도 완독하지 못하고 환갑을 맞은 아버지도 틈만 나면 카카오톡으로 시를 써서 보내오고, 친구의 고모부는 일평생 고모의 노동력에 기대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글만 써서 너댓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집에도 몇 권 있다. 원하지 않았지만 친구가 떠넘기다시피 안겼기에.)


'글' 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


그렇다면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신변의 일 따위를 드러내고 싶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글자라는 매개를 그림, 사진, 영화 등 자신의 생각과 겪은 일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원초적인 것으로 바라본다면, '사람들은 왜 글을 쓰고 싶어할까?' 라는 질문은 '사람들은 왜 자신의 생각과 겪은 일 따위를 드러내고 싶어할까?' 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드러낸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널리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개개인은 알려지지 않은 나의 생각과 경험들을 널리 밝히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알려지지 않은' 나를 세상에 밝히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왜?


어제 나에게 조심스레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요?'하고 물었던 회사동료에게 되물었었다.

'왜 글을 잘 쓰고 싶어요?'

'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잘 표현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기준없이 남의 의견에 쉬이 따라가는 모습을 바꾸고 싶다고도 이야기했다.

'점심메뉴를 고를 때도 A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데, 남들이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 의견을 따라가요.'


'남들이 답을 정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마음 속으로 묻고 답하는 연습을 해보면 좋을거예요. 점심메뉴부터요.' 하고 부드럽게 답해주었다.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래서 쓰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저 '나 먹고 싶은 점심메뉴를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남들보기에는 아주 시시해서 눈에 띠지도 않을 변화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나조차 몰랐던, 감추고 싶었던, 알려지지 않은 나에게 빛을 비추고 스스로를 밝히는 것만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알아주는 사람이 설령 나뿐이라도.


나의 내면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내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고, 그전에는 깰 수 없다고 생각했던 단단한 껍질을 톡톡 글자로 조금씩 두드려 금을 내는 것.


실은 그것이 인생의 전부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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