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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Jul 07. 2021

너는 고양이로소이다

 좌레오 우싼초

레오, 그리고 싼초

지난 주말, 모임에서 오래 알던 선생님 댁에 고양이를 보러 다녀왔다. 레오를 한번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부탁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당신이 기르는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여느 고양이와 같지만 레오는 고양이 같지가 않다고, 때론 몸속에 사람이 들어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종종 이야기했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모임 성격상 개인의 애호까지 대화의 주제가 가닿는 경우는 드물어서 고양이의 근황은 간혹 들을 뿐이었는데, 선생님이 최근에 레오가 죽을 고비가 가까워졌다고 느낄 만큼 크게 아팠다고 전하며 내게 고양이를 보러 와달라 청한 것이다. 말이 나온 날로부터 가까운 때로 약속을 잡았으나 약속 당일이 되자 레오는 선생님이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을 만큼 상태가 악화되어 들르지 못했고, 다행히 며칠이 지나 레오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임이 끝날 저녁 무렵, 어두운 창밖엔 갑작스레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선생님에게 레오를 지금 보러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가지 않으면 또다시 미루게 될 것만 같았다.


막상 선생님의 집에 도착하자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값비싼 가구, 잘 관리된 집이 풍기는 고유의 단정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취해 처음의 목적은 까맣게 잊고 이방 저 방을 돌아보며 구경했다. 고양이는 집안의 정물처럼 방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집 구석구석을 한참 돌아보다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는 고양이를 보고서야 아차, 내가 지금 고양이를 보러 왔지 싶었다(조명이 은은한 데다 이불 무늬와 고양이의 털 무늬가 비슷해 한참이나 지나서야 고양이의 존재를 알아챘다). 고양이를 가까이서 보고 만진 적은 애인이 한 달가량 임시보호를 하던 길고양이뿐이라 고양이의 성격이나 습성에 대해 잘 알진 못 했지만, 이 집의 고양이들은 정말로 '고양이스럽다'고 느껴졌다. 의자에 올려둔 내 가방에 머리를 집어넣고 검사하듯 훑는다거나 우리들이 밥 먹고 맥주를 나눠마시는 간간이 식탁에 폴짝 올라와 가장자리를 거닐다 쓰다듬어 달라고 곁에 가만히 앉았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저 멀리 가있곤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물 흐르듯 고요하고 자연스러웠다. 애인이 잠깐 맡아 길렀던 길고양이 싼초를 생각하면 역시 '있는 집 자식'은 다르구나 싶었는데, 싼초는 인기척이 나면 집안 구석이나 모퉁이에 숨었다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발뒤꿈치를 깨무는 식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반면, 샴과 뱅갈이라는 소위 혈통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는 입양 전 테스트까지 거친 몸들이라 그런지 날선데가 없고 온순했으며 낯선 사람에게도 기꺼이 잠깐의 터치를 허락했다(가, 감사합니다!). 특히 레오는 대화에 골몰한 주인이 저를 잊을세라 가끔 주인에게로 다가가 이마를 맞대며 부드럽게 눈을 감았는데, 그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고양이에 대한 기존의 편견은 다 잊고 그저 "나도 고양이 갖고 싶다!"를 부르짖었을지도 모른다.


싼초가 등장한 김에 이야기를 하자면 싼초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버림받고 이 집 저 집을 떠돌다 애인의 집에 머물게 된 경우로, 선생님이 기르는 두 마리의 고양이는 태어난 이후 어미가 충분히 교육을 마친 3개월이 지나서야 입양이 허락된 반면, 싼초는 엄마도 형제도 없이 그저 몇몇 사람의 품을 떠돌며 물려주는 젖병을 물고 자랄 뿐이었으니 사람들이 사랑하고 칭송하는 도도하고 우아한 '고양이스러움'을 학습할 기회도 없이, 본능에 충실한 길고양이로 자라났다. 시도 때도 없이 허겁지겁 먹고 응가 처리를 제대로 못하고 응앙응앙 울어대는 통에 고양이에 대한 로망이 있던 애인은 로망을 일찌감치 발로 차 버린 싼초에게 "이 놈의 진상!"이라고 혀를 찼지만, 그래도 집에 가보면 어느 틈에 스크래처가 놓여있고 어느 틈에 번듯한 밥상(?)이 놓여있고 어느 틈에 고양이 장난감이 바닥에 굴러다녔다. 말로만 툴툴거리지 그가 싼초를 애틋하게 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가짓수를 더하는 장난감과 값비싼 사료도 애틋함의 증거 중 하나였다.  


그들이 주고 간 것

개도 고양이도 아니고 그저 길거리 깡패 같은 성정을 발휘하던 싼초도 가끔은 '고양이스러움'을 발휘할 때가 있는 듯 보였다. 앉아서 작업하는 애인의 목 뒤로 기어 올라가 빼꼼 고개를 내민 모습이나 다리에 힘이 붙었는지 점차 높은 책장으로 기어올라가 자리를 잡고 자는 모습은 인형 같았다. 한땐 입양까지 고민했던 그였지만 갑자기 하루에 기본 열네 시간가량 집을 비울 정도로 업무가 바빠지고 싼초를 돌보지 못하게 되니 입양을 포기했고, 마침 또 다른 임시 보호자가 나타나 제대로 된 이별 절차도 없이 싼초와 이별을 하게 됐다. 싼초를 다른 임시 보호자에게 데려다주던 날, 그는"제 갈길 가는 거지 뭐"라고 덤덤하게 말했지만 며칠 뒤 싼초를 꼭 안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꿈을 꿨다며 눈물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다행히 싼초의 새로운 보호자는 서울 시내에서 펍을 운영하고 있어 바쁜 일이 끝나면 가볼 수 있지만, 싼초가 한 달 남짓 저를 품어준 이를 알아보지 알아보지 못할지, 산초의 반응에 따라 애인의 표정 또한 어떻게 변할지는 재회의 순간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싼초가 그를 좋아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싼초가 그의 마음에 무언가를 심고 떠났다는 것이다. 싼초가 그와 함께 하던 시절엔 카톡으로 싼초 사진을 자주 받았다. 정면을 빤히 바라보는 싼초는 귀엽고 예뻤다. 마치 같이 사는 동생의 안부를 묻듯 “싼초는 뭐해? 잘 지내?”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밥 먹어, 자고 있어, 놀아달라고 조르고 있어” 중의 하나였고 하긴 고양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그게 전부다 싶으면서도 싼초의 안부를 묻곤 했다. 밥 먹어. 자고 있어. 놀고 있어. 하루는 나의 물음에 마침 한 그릇 싹 비우고 허벅지로 폴짝 뛰어올라 자리 잡은 참이라며 “신기한 건 그거만 하는데도 위안이 되네”라고 덧붙였다. 그러게. 저 하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놀고 쌀뿐인데 왜 그걸 바라보며 위안을 얻게 되는지. 표정을 꾸미거나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그저 제 자신인 그 모습을 만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일까. 숲에 모여있는 나무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서서 푸르게 피었다 바람에 흔들렸다 할 뿐인데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덜컥 놓게 되는 것처럼.

 

선생님의 댁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레오가 탁자 가장자리를 어슬렁 거리다 주인에게로 가서 이마를 맞대는 장면은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 재생된다. 애인은 싼초가 빠져나간 일상을 바쁜 업무로 채우고 있지만, 업무가 끝나고 마침내 한낮의 햇살을 받으며 텅 빈 방에 있는 날이면 새로운 싼초의 주인이 필요 없다며 받기를 사양한 스크래처와 화장실용 모래와 밥그릇 같은 것을 쓰다듬으며 위안이 빠져나간 자리를 느낄 것이다. 선생님도 레오 병간호를 하며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위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있는 일상은 아름답다. 그들이 집안 어딘가에 가만히 고여있거나 소리도 내지 않고 어슬렁거리거나 기지개를 켜거나 입가에 다 묻히면서 밥을 먹는 모습은 인간의 마음에 형용할 수 없는 위안을 심어준다. 나는 고양이가 있는 일상을 잠깐 목격했을 뿐이지만, 고양이는 꽤나 너그러운지 목격자의 일상에도 작은 위안을 심어주었다. 가끔 싼초의 갓난쟁이 때 사진이나 나와 장난치던 영상을 찾아보곤 하는데, 어디서나 많은 사랑을 받고 예쁘게 잘 자라길 바란다. 레오도 씩씩하게 오래 살길 바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너희는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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