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입구로 나와 10분 남짓 되는 거리를 걷는데 땀에 옷이 흠뻑 젖었다. 가방 속에 든 게 너무 많아 어깨는 아프고, 한 손엔 종이가방을, 다른 한 손엔 커피까지 들었다. 등에서 땀이 흐르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인 상태랄까. 9월인데 왜 아직도 날씨가 더운 건지, 대체 가을은 언제 오는 건지 불평불만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길을 물으셨다.
"여기 xx 정형외과가 어디인지 혹시 알아요?"
평소의 나는 누군가 길을 물어오면 지도앱을 켜서 목적지를 찾아보고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는 편이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어르신이거나, 초행길이라 도대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은 5초 정도 고민을 했다.
'지금 너무 덥잖아'
'너도 이 동네 잘 모르잖아'
'짐 다 내려놔야 되잖아'
'모른다고 하면 되잖아'
땀에 젖은 옷 때문에 안 그래도 찝찝한데 땡볕 아래서 지도를 보며 길 안내를 해드릴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핑계가 떠올랐던 거다. 아주머니 얼굴을 다시 바라보니 나만큼이나 땀을 많이 흘리고 계셨다. 내가 여기서 잠깐 시간 내어 길을 알려드리지 않으면 한참을 길에서 더 헤매실 게 분명한데 가방을 내려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엄마의 모습 같아 괜히 찡하기도 했고. 지도로 목적지를 찾아보니 내가 가려는 곳과 멀지 않은 곳이라 데려다 드리겠다고 했다.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던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사실 아까 젊은 친구한테 똑같이 길을 물어봤었거든. 그런데 지도 보고 가라고 하더라고. 나는 지도를 볼 줄 몰라서 물어본 건데...'
순간 키오스크 주문을 할 줄 몰라 기계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키오스크 주문하는 걸 시도해 보는 게 어려웠던 엄마.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게 어려워 늘 은행 ATM기를 가는 이모. 지도앱을 볼 줄 몰라 30분째 감으로 길을 찾고 있는 아주머니까지. 기술의 발전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돌아서서 손을 흔드시던 아주머니께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 변화의 속도가 버거운 당신들을 배려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작디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던 날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