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아닌 스마트폰 화면이다. 알람을 끄려고 간신히 실눈을 뜨는 와중에도 알림 창에 떠있는 알람을 한 번에 스캔하는 능력이 생겼다. 정신은 몽롱한 상태지만 손가락은 익숙한 듯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앱을 순서대로 누르고 있다. 메시지와 DM, 댓글, 알림을 확인하고 나면 귀여운 생명체들이 매력을 뽐내는 릴스에 시선이 꽂힌다. 5분 더 자고 싶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강아지, 병아리, 캠핑, 여행 등 끊임없이 펼쳐지는 숏폼의 세계 속에 빠져 계속 스크롤을 올리다 보니 어느덧 남편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부엌 정리를 한다. 어제 설거지해 둔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쿠팡으로 주문해야 할 물건들이 떠올랐다. 식탁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올리고 쿠팡앱을 연 뒤 키친타월, 생수, 엄마가 부탁한 검은콩 두유 세 가지를 주문하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주문 목록에 저장되어 있던 상품을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등록된 카드로 바로 결제만 하면 되니까.
그릇 정리하는 건 어느새 잊어버리고 남편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싶어서 야심 차게 오이를 꺼내 들었다. '참! 오이 무침 양념이 뭐더라?' 이럴 땐 별 수 없이 유튜브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유튜브 앱을 열어 '오이무침 황금레시피'를 검색하니 영상이 족히 100여 개는 되는 것 같다. 이 중에서 어떤 레시피를 골라야 할까. 스크롤을 두세 번 내리며 고민하다 조회수가 가장 높은 영상을 선택했다. 레시피의 첫 순서는 오이를 깨끗하게 씻어 적당한 크기로 썰은 다음 굵은소금에 20분간 재워두는 것이다. 그 사이 양념을 만들어 두려고 고춧가루와 간장을 꺼내는 순간,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리모컨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안 그래도 뭔가 허전했어. 만드는 동안 TV 프로그램 틀어둬야지.'
고춧가루와 간장은 잠시 식탁 위에 내려놓고 TV 전원을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아무리 봐도 오이무침을 만들면서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각종 슬픈 소식이 가득한 뉴스나 김치 싸대기 장면이 나올 것 같은 드라마 재방송만 나올 무렵 넷플릭스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추천작을 잠깐 보다가 리모컨의 화살표 버튼을 열심히 누르며 '지금 뜨는 콘텐츠, 새로 올라온 콘텐츠, 오늘 대한민국의 Top10 시리즈'를 순서대로 살핀다. 또 결국 마땅히 볼 콘텐츠를 고르지 못하고 넷플릭스도 껐다. 유튜브 영상이나 틀어둘걸.
나 다녀올게.
오 마이갓. 남편이 출근했다.
아침 일과는 빙산의 일각이다. 책을 읽다가 카톡을 확인하고, 카톡을 확인하다 갑자기 인터넷 창을 열어 뭔가를 검색한다. 검색하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록한다고 노트를 펼치고, 아이디어를 쓰다가 오늘 처리해야 했던 중요한 일이 떠올라 갑자기 그 일을 시작한다. 세부적인 내용만 조금씩 다를 뿐, 내가 집중해야 할 것들에 제대로 집중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멀티 태스킹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며, 시간이 없단 말은 핑계다. 언제부턴가 나는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평소에도 스크린 타임 줄이기에 관심이 있어서 스마트폰 잠금장치도 구매해 보고 나름의 노력을 했던 나였다. 아날로그 기록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었기에 모든 것이 연결된 디지털 세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나의 시간을 지켜내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그것은 교만이요, 착각이었다. 나의 현실을 제대로 자각하게 된 계기는 책 두 권과 유튜브에서 본 한 편의 영상 덕분이다. 애나 램키의 도파민네이션,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유튜버 돌콩님의 애나 램키 인터뷰 영상이다.
도파민네이션의 부제는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이고 도둑맞은 집중력의 부제는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쾌락 중독 상태와 집중력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지만, '쾌락, 과잉, 균형, 집중력, 위기' 이 다섯 단어를 보는 순간 내가 요즘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이 다섯 단어 안에 모두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인을 알았다는 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더 미룰 것도 없이 당장 애나 램키 박사님이 말씀하신 도파민 단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게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중독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들의 항목을 적어보니 11가지(나중에 추가된 항목 포함)다. 많아 보이지만 요약하자면 '스마트폰, 괜한 폭식, 충동적인 쇼핑'이다. (아... 많은가?) 음주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빨간 숫자 알림을 보면 참지 못하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며, 콘텐츠 보는데 할애하는 시간이 아까워 일할 때 배경음악처럼 틀어두고, 배도 안고픈데 괜히 배달음식 시켜서 먹다가, 기분이 헛헛해져 쇼핑 앱을 열어 뭐라도 사고 마는 각종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주 간절히.
도파민 단식을 한 달 한다고 해서 삶의 큰 변화가 있겠냐고 묻는 이가 있었다. 세상의 시스템이 이런데 한 달 노력한다고 해서 뭐가 되겠냐고. 급격한 다이어트를 시도하다 요요가 오는 것처럼 오히려 더 부정적인 결과가 있을 수도 있지 않냐고 말이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나는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들로부터 잠식당하는 삶, 스마트폰이 나를 데리고 사는 삶이 아닌 내 인생을 온전하게 살고 싶어.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전보다 괜찮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오랜만에 누려보는 온전한 글쓰기의 시간이었거든. 뭐든 해 볼 거야.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만 있다면."
오늘부터 나는, 도파민 단식을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