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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친구리니 May 25. 2022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음. 이번에도 아기가 보이질 않네요. 소파술 날짜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 잘못이 아니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믿고 싶지 않았지만 또 유산이다. 아기가 남겨 놓은 흔적이 온몸에 가득한데 아기는 없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배는 콕콕 쑤시고, 체온은 37.6도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임테기는 점점 진해지고, 수정란 이식 후 피검사도 높은 수치로 통과했다. 게다가 아기집이 자리 잡은 초음파 사진도 받았는데 아기는 없다. 첫 번째 임신도 같은 이유로 종결됐었는데 두 번째도 이럴 줄은 몰랐다.  



 아기가 보이질 않는다는 얘길 들을 때의 기분은 마치 묵혀둔 비트코인이 미친 수익률로 떡상했는데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찾을 수 없다거나, 역대급 금액으로 로또에 당첨됐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로또 종이가 홀랑 날아가버린 기분이다. 묵혀둔 비트코인도, 로또에 당첨된 적도 없지만 그냥 그만큼 우울하고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단 얘기다. (유산의 아픔을 정녕 이런 비유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 필력에 대한 자괴감도 추가다)


 

 3일 뒤 소파술(자궁의 내막을 기계로 긁어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유산 소식을 양가 부모님께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시험관 첫 시도에 임신에 성공하면 로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던 터라 착상이 되고 6주 차 되던 때에 망설임 없이 양가 부모님께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정확히 일주일 후 하혈하며 응급실에 실려가게 될 줄은. 잘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서로 미안해하며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하는 그 상황이 너무 싫어서 두 번째 시도는 남편 외에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명절 기간에 이식을 하게 되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데 또 유산 소식을 전해야 한다니. 

 



     





 평소 여러 번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기는 나지만 유산을 두 번 경험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동동거리며 애를 쓴 결과가 두 번의 유산이라니. 허무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런 고난의 상황을 내게 주신 이유를 알려달라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다. 책 읽는 것도, 드라마 정주행 하는 것도, 예쁜 풍경을 보는 것도, 다 싫었다. 몸도 망가졌지만 마음은 더 망가졌다. 생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엄마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 자궁이 수축하며 밀려드는 통증, 또 시도해야 하는 시험관 시술에 대한 공포들이 뒤죽박죽 섞인 채 내 마음의 모든 방에 꽉꽉 들어찼다. 그리곤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도록 문도 잠그고 자물쇠까지 채워버렸다. 혼자서는 열 수도 없는 세상 튼튼한 자물쇠로.       



 그런 날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내 안부를 묻는 두 엄마의 전화였다. 폰의 진동이 울리면 어김없이 친정 엄마 아니면 시엄마였다. '밥은 먹었니, 몸은 괜찮니, 푹 쉬어라, 걱정하지 말아라, 아파서 어떡하니' 등등 전화를 하실 때마다 안부를 물으시는데 두 분이 걱정하실까 봐 괜찮은 척해야 하는 그 순간이 힘겹기만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부서지는 파도가 되어 나를 찾아오는 두 분의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그 마음을 온전한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음에 스산한 찬바람이 자꾸만 불어오더니, 결국 엄마의 사랑도 이겨버렸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몸은 회복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바닥이었다. 시댁에 가서 엄마의 얼굴을 보면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몸이 아프다 핑계를 대고 남편만 보냈던 어느 날. 한 밤 자고 돌아올 줄 알았던 남편이 밤늦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가 자기 먹여야 된다고 이 거 다 가져가라고 해서 챙겨 왔어."



 남편은 식탁 위에 분홍 보자기를 올려놓고 음식들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갈비찜은 먹기 전에 압력 밥솥 뚜껑 닫아서 자잘하게 더 졸여서 먹으면 되고, 소고기 뭇국은 양이 많으니까 소분해서 얼려뒀다가 먹으래. 굴전은 금방 상하니까 오늘 바로 먹고. 그리고 두부는 엄마 친구가 직접 만드신 건데..." 한참 동안 엄마가 알려주신 내용을 나한테 설명하는 남편을 바라보는데 눈앞이 뿌예졌다. 내가 우는 상황을 제일 당황스러워하는 남편은 부지런히 음식을 데우고 접시에 옮겨 담았다. 얼른 먹어보란 남편의 말에 갈비찜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과거를 회상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 여기저기를 오가는 엄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핏물을 여러 번 빼고, 잡내를 없애려 고기를 데치고, 양념이 베어 들게 불 앞에 서서 계속 주걱으로 젓고, 각 종 나물과 전을 만드느라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하셨을 엄마의 모습들. 요리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안다. 하나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수고로움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남편이 들고 온 분홍 보자기 안엔 나를 향한 엄마의 위로가 가득 담겨 있었다. "고생했어. 엄마는 너만 있으면 돼. 네가 제일 소중해.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친정 엄마도 아니고 시엄마가 날 이렇게 아껴 주신다. 날 낳아준 엄마가 아니라 남편을 낳아준 엄마가. 난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이 틀림없다.




"결코 내 것일 수 없다고 여겼던, 내가 소중하다는 감각과 나를 다시 이어준 한 끼의 식사.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 김혼비, 다정소감 中




 부서지는 파도에 힘 없이 무너지는 모래성 같던 너덜너덜한 내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점차 회복되는 중이다. 나물에 고추장 넣어 슥슥 비벼 먹고, 두릅을 데쳐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밥 한 숟갈에 파김치 듬뿍 얹어 한 입 가득 넣다 보니 어느덧 수많은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봄을 지나 싱그러운 초록이 흘러넘치는 여름이 왔다. 아직도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언제 엄마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나에겐 두 엄마가 있단 사실을 잊지 않을 거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 몸에 흔적을 남겨놓고 간 아기를 어떻게 해서든 지켜주고 싶었던 내 마음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평생 지켜주고 싶어 하는 두 엄마의 마음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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