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와 화순이가(진돗개 두 마리) 전부였던 시댁 마당 풍경에 유기묘였던 나비가 스며들었다. 나비는 흔히 말하는 '개냥이'다. 어디서 애교 학과를 전공하고 온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 가족의 마음을 파고드는 심쿵 포인트를 잘 알고 있는 녀석. 고양이와 마주치면 오던 길 다시 되돌아갈 만큼 겁이 많은 내가 마음을 홀랑 빼앗겼으니 말 다했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나비 홀릭이다. 이런 나비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소식이 하나 있었으니. 두둥. 나비가 임신을 했단다.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내던 이 녀석이 어느새 사랑을 흘려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니!
나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원래 세상의 모든 새끼들은 이토록 귀엽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 사진 한 장. 사랑이의 먹방을 바라보던 추성훈의 눈빛이 단 번에 이해되는 사진이었다.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단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실물로 본 적 없는 고양이 새끼만 해도 이렇게 예쁜데 내 새끼는 얼마나 예쁠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먼저 엄마가 된 친구들이 카톡 프로필을 자식 사진으로 도배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친구들아, 그동안 팔불출이라 놀려서 미안)
종일 본 사진을 보고 또 보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문득 잊고 있던 존재가 생각났다. 이 귀여운 두 생명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려 애썼을 존재. 출산으로 고단해진 몸을 돌볼 틈도 없이 두 새끼들 품어내느라 잠 못 이루고 있을 존재. 그렇다. 새 생명의 탄생의 기쁨에 젖어 나비를 잠시 잊고 있었다. 왜 엄마들은 늘 이렇게 두 번째가 되는 걸까. 그럼에도 엄마들은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아기의 존재만으로도 괜찮단다. 생명을 품어내느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느라 힘들었던 과정들도 아기의 웃음이면 다 잊힌단다. 나비도 같은 마음이겠지. 어쩐지 나비에게 더 미안해졌다. (새끼들 사진 보며 나비를 또 잊어버린 건 비밀이다...)
고양이 영양제와 간식을 잔뜩 사들고 시댁에 내려간 날, 이름을 부르자마자 내 곁에 다가와 몸을 비벼대는 나비를 보는데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느라 혼났다. '언니, 나 새끼 낳느라 엄청 힘들었어. 그래도 행복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엄마가 되어 두 새끼를 품고 있는 나비가 너무도 커 보였다.
"네가 엄마가 되려니 엄마가 된 모든 존재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나 보다." 엄마가 내 마음을 읽으신 듯 말씀하신다. 듣고 보니 그렇다. 난 동물에게 이렇게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데 자꾸만 나비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엄마 말씀처럼 내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니 세상 모든 엄마들의 풍경을 자꾸만 멈춰 서서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우연히 만나는 엄마들, 내가 알고 지내는 엄마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정 엄마와 시엄마의 풍경까지. 자꾸만 바라보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헤아리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 진다. 언젠가 내 삶의 풍경이 될 엄마로서의 내 모습도.
한참을 나비네 집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봄날의 적당히 따뜻한 볕과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뭇잎 소리에 새끼들이 바지런히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가 더해졌다. 신나게 놀던 새끼들은 이내 나른해졌는지 어미의 젖을 애타게 찾고 나비는 부풀어 오른 젖을 기꺼이 내어 주었다. 젖을 먹는 내내 쉴 새 없이 털을 핥아주던 나비는 새끼들이 잠들고 나서야 슬그머니 집 밖으로 나와 목을 축였다. 물을 마시다가도 새끼들이 내는 작은 소리에 반응하며 잘 자고 있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며 확인하기 바빴다. 찰나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새끼들 곁으로 간 나비는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품을 내어 주었다. 그러곤 노곤한 지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잠이 들었다. 최근 몇 년 간의 봄 풍경 중에 손에 꼽을 수 있는, 더없이 곱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창밖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날의 풍경이 자꾸만 떠오른다. 나비와 새끼들의 모습을 떠올리다 내가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엄마의 풍경을 상상해 보고, 내 옆에 곤히 잠든 남편을 키워주신 시엄마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나와 남편에게 기꺼이 품을 내어주던 그 시절의 두 엄마도 눈부시게 아름다웠겠지. 아. 갑자기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