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버렸다

생존의 끝에서 발견한 심리적 풍요

by 제니진 Jenny Jin


회사를 살리고 싶어 짐을 쌌다. 거창한 결단은 아니었다.

내가 피땀 흘려 만든 세계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걸 두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도망치듯 국경을 넘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자리



2주 만에 안락했던 콘도를 나왔다.

영혼이 빠져나간 자리엔 차가운 껍데기만 남았다. 리턴 티켓을 찢어버리고 들어간 곳은 낯선 이들의 숨소리로 가득한 좁은 캡슐 호텔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좁은 사각형의 공간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나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 상태. 무명(無名). 그건 해방이었다.

하지만 그 해방은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내 편 하나 없는 곳에서 매일 처음 겪는 문제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무서워도 무섭다 말할 수 없었고, 도망치고 싶어도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책임은 감정보다 먼저였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 비로소 거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God bless you


아시아의 어느 이름 모를 번화가, 덥고 습한 공기가 내려앉은 골목이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 그녀의 주변엔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를 축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고, 버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나는 다가갔다. 나를 돕듯이, 주머니에 남은 돈의 절반을 꺼내 건넸다.

그리고 말했다.

"Jesus give you''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구겨진 지폐를 받아 들고 그 돈에 입을 맞췄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다루듯 간절하고, 정중하게.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God bless you."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돈은 내게 남은 거의 전부였지만, 그녀에게는 생명을 이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영혼을 깨우는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빵을 산 할머니가 저 멀리서 봉투를 머리 위로 흔들며 웃고 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이해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는가


한국에 돌아와 강연장에서 청중을 바라볼 때도, 지인들과 밥을 먹을 때도, 그 할머니의 표정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우리는 더 큰 숫자, 더 높은 성과, 더 완벽한 결과를 향해 달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을 잃어버린다.

오늘 마신 커피의 온도, 창가에 비친 햇살의 각도, 곁에 있는 사람이 건넨 말의 무게.

가장 척박한 거리에서 내가 배운 치유의 본질은 거창한 기법이 아니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감각을 다시 깨우는 것. 몸이 먼저 행복을 기억하게 하는 것.


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생존의 밑바닥을 통과하고 나니 세상 그 어떤 리스크도 이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은 건 단 하나였다.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확신.

당신이 지금 두려운 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직 자신의 심리적 영토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토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당신 손에 쥔 커피 한 잔의 온기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걸 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 거리에서, 내 삶을 지탱할 단 하나를 배웠으니까.

사람은 무너질 때가 아니라, 감각을 잃을 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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