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자질
바야흐로 AI의 시대입니다. 지금 청소년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성형 AI를 사용합니다. 의식적으로 사용해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포털에 검색을 하듯 자연스럽게 AI를 활용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죠. 직장인들의 모습도 꽤나 달라졌습니다. 개발자들은 생성형 AI를 통해 코드를 개선하기도 하고, 기획자들은 기획안에 쓰일 전략을 AI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영화나 웹툰 같은 창작의 영역도 AI가 대신한다고 하니 예상보다 더 많은 일상이 AI로 대체 가능한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AI 발전으로 인한 다양한 시선이 IT업계에도 존재하는데요. 생성형 AI의 상용화로 인해 앱 서비스를 포함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견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I로 정보 습득뿐만 아니라 쇼핑, 배달 주문 등 일상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매개 역할을 하는 앱/웹 서비스들의 필요성이 감소한다는 것이죠. 일리가 있는 의견입니다. 그렇게 보면 인터페이스를 구상하는 기획자라는 직업도 언젠가 대체 가능한, 없어질 수 있는 직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직업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나름입니다. 기획자만 하더라도, 웹 기획자, 서비스 기획자, UX디자이너, 프러덕트 매니저, 프러덕트 오너 등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AI시대에 맞게 프롬프트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생겨났죠.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직업으로 불리는지가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 지가 아닐까요. 무엇을 잘하는 기획자인가에 따라 그 이름은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직업명은 달라지더라도 내가 가진 자질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재능으로 키워나가다 보면, 그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그렇다면, 기획자가 가져야 할 자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지난 저의 경험과 책을 통해 그 힌트를 얻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획자의 자질은 요약과 소통 능력입니다.
요약하는 능력
책 <일류의 조건>에서는 어떤 사회, 어떤 환경에서든 거뜬히 살아가는 힘 중에 하나로 요약하는 힘, 요약력을 소개합니다. 물론 이 요약은 단순히 문장을 양적으로 줄이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중요도를 파악하여 핵심만을 남기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이 요약하는 능력은 기획 업무에 아주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기획자는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서비스 혹은 기능을 기획합니다. 이를 위해 사용자 인터뷰, 리서치, 설문조사, 리뷰 분석 등 다양한 경로로 사용자 의견을 수집하는데요. 어렵게 수집한 의견들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기획자는 핵심 요소를 찾아 기능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실제 서비스에 도움이 되는 기능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기획자는 다양한 부서와 협업해야 하는 만큼 다수의 회의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이때에도 요약하는 능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요구사항도 논점도 다양한 회의에서 주제에 맞는 핵심 요소를 파악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시간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집중력도 떨어져 명확한 결론을 짓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죠. 기획자는 회의를 주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어 참여하는 만큼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이끌어내는 것 또한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소통하는 능력
어쩌면 이 소통이라는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통은 단순히 잘 말하는 것만을 지칭하는 건 아닙니다. 기획자는 문서로 소통할 일도 정말 많으니까요. 요약하는 능력을 발휘해 요구사항을 정의했다면, 그 이후부터는 매 순간 소통의 시간입니다. 기획자가 정의한 서비스의 핵심 요소가 실제 구현되어 엔드유저에게 닿을 때까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소통하는 시간을 반드시 거치게 되는 것이죠.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진행 방향을 설정해 유관 부서에 제안할 수도 있고, 조직장에게 프로젝트의 성과를 공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안서, 상세 기획서, 보고서 등 다양한 형식의 문서가 동반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서를 얼마나 유려하게 작성했느냐가 아니라, 소통의 도구로서 얼마나 잘 활용했느냐일 것입니다. 소통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나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것은 소통이라 할 수 없으니까요. 어떠한 소통의 도구를 활용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핵심을 잘 전달한다면 기획자로서 신뢰를 얻는데 아주 큰 무기가 될 것입니다.
기획자라는 직업은 시대가 변하며 언젠가 없어질 수도 있고, 어쩌면 시대에 맞게 진화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제가 관여할 수 없는 일에 너무 걱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기획자의 자질을 잊지 않고, 그것을 나만의 재능으로 발전시키는 것. 그것은 제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이 글을 읽는 예비 기획자 혹은 갓 기획 업무를 시작하시는 분들도 스스로 생각하는 기획자의 자질은 무엇인가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고유의 재능으로 키워나가다 보면 반드시 현업에 필요한 존재가 되실 거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