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잃고 홀로 된 불쌍한 미묘, '미리'
4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컨테이너 밑에서 네 마리 새끼를 낳은 가련한 엄마 고양이를 보게 되면서부터 나의 길냥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시작되었다. 처음엔 길냥이들의 사료와 물만 챙겼었지만, 차츰 길냥이들이 많게는 일 년에 세 번 이상의 출산을 겪게 되지만,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과 싫어하는 사람들의 핍박 속에서 새끼 고양이 이가 성묘로 자라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었다.
이웃사람들은 길냥이한테 매일 사료를 주니까 길냥이들이 많이 모인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구청에서 시행하는 중성화 수술은 신청 전화가 폭주하여 전화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몇 달을 기다려도 겨우 연락이 올까 말까였다. 무료이긴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순서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다행히 딸이 '고양이보호협회'에 후원을 하고 있어서, 협력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시킬 수 있었다. 개인부담은 암컷은 3만 원, 수컷은 만원이었다. 경제적인 부담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 '고보협'의 도움을 받아 우리 구역에 오는 고양이들 위주로 중성화 수술을 시행할 수 있었다. 새끼를 가지지 않는 고양이 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집 주위의 고양이의 개체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웃 분들도 아직은 환영 하시진 않지만 그냥 묵인해 주시니, 한시름 놓고 고양이들을 보살필 수 있게 되었다. 밤에 중성화 수술을 시킬 고양이를 포획하려면 딸은 밤을 하얗게 지새울 때도 있다. 이미 수술을 한 고양이들이 다시 잡힐 경우엔 풀어주어야 했기에, 잠도 못 자면서 신경을 써야 해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에서 위안을 느끼고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들어도 참고해나갔다. 먹이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다른 구역에서 넘어오는 고양이들이 늘어나게 되어, 시켜도 시켜도 끝이 없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지속하고 있다.
어린 고양이가 6~7개월 됐을 때 엄마 고양이가 동생들을 임신하게 되는 바람에 엄마에게서 내쳐지고, 오빠 냥이는 대장 아빠 고양이에게 쫓겨나 버려 외톨이가 된 고양이가 너무 안쓰러워 집으로 데리고 왔다.
'미리'라는 예쁜 이름에 어울리는 한눈에도 미묘인 고양이였다. 밀가루 같이 하얗다고 '밀'이라 했다가 '미리'가 더 부드러운 느낌을 주길래, 미리로 부르기로 했다.
사실 미리는 우리 옆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미리 엄만 모성애가 지극히 강한 고등어 무늬의 몸집이 작지만, 항상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야옹야옹" 울면서, 비교적 말을 많이 하며 지나다녀서, 집안에 있어도 미리 엄마가 지나간다는 걸 다 알 정도였다. 자신의 마르고 작은 덩치를 포장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목소리를 낸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 작은 덩치로 험한 길 위의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미리 엄만 사람에겐 여느 길고양이들과 달리 친화적이었지만 고양이들에겐 유난히 하악을 연발해댔다. 모성애가 유난히 강하고 영리해서, 새끼들에게 주기 위해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모를 검은 비닐봉지를 입에 문 채 담벼락을 올라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다..
미리 엄마는 그 여린 몸으로 일 년에 두 번 이상이나 임신을 했다. 마르고 작은 모성애가 강한 미리엄 마가 새끼들을 지켜내려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팠을까? 미리 엄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나곤 한다. 자신이 임신을 해서 더 이상 새끼 고양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되자, 캣맘인 우릴 세심히 관찰하고는 새끼를 맡겨도 되겠다 싶어 다소 안심하면서 우리 집으로 보낸 것 같다. 길고양이들이 집 사감을 몇 달 동안이나 면밀히 관찰한 다음에 집사를 선택하는 영상을 '동물농장'을 통해 본 적이 있다. 미리 엄마의 집사 '픽'에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모성애가 지극했던 미리 엄마는 새끼들과 정을 뗄 때는 무척이나 모질고 쌀쌀맞게 아기들을 냉대했다 그 모성애가 남다르게 강한 녀석이 어쩌면 저렇게도 하악을 해대는 걸까? 지새 끼를 키워 본 어미의 심정으로 동병상련의 미리엄 마의 미어지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에 보고 있으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새끼들이 눈이 빠지게 엄마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엄마가 오는지를 희한하게 알아채곤 쏜살같이 곁으로 달려가기라도 할라치면, 어찌나 모질고 끔찍하기만 한 무서운 얼굴로 입을 벌려대던지, 새끼들은 금세 기가 죽어 주춤하며, 힘없이 엄마 곁에서 물러나곤 했다.
미리는 순해 보였고 한 배의 형제는 좀 똘똘해 보였다. 그래도 두 마리가 늘 같이 있고, 밥은 항시 있으니, 비록 엄마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잘 지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어느 날 형제 고양이가 힘없는 모습을 보이더니, 수컷이었던지 대장 아빠에게 쫓겨나 버렸다. 혼자 남은 미리는 너무나 애처로워 보였다. 연약하고 예쁜 미리가 홀로 남겨져 위험에 처한 상황을 도저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미리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워서,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통덫으로 간신히 잡아서 데리고 왔건만, 우리 집의 개들 때문에 미리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환경이 변해 정신이 없는 데다가, 큰 목소리로 짖어대는 난생처음 보는 괴물처럼 여겨지는 생명체가 다섯 마리나 있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 집 환경이 지나치리만큼 시끄러워서 미리에게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나이가 많은 언니 고양이는 예민하긴 해도 무관심했지만, 오빠 고양이 두 마리는 점잖아서 미리를 잘 받아 주었다. 특히 인이 오빠는 한눈에 미리가 반할 정도로 젠틀했다. 평소엔 장난기가 심하건만. 세 마리가 짐짓 순탄하게 미리를 식구로 받아주었다. 집으로 온 지 열흘쯤 지났을 때에 미리에게 발정기가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더라면 덜컥 임신을 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미리는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며 괴로운 듯 인이 앞에서 뒹굴곤 했다. 미린 워낙 잽싸서, 손으로는 도저히 잡히질 않았기에 동물병원에 데려갈 수가 없었다. 저러다 집사를 싫어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또 한 번 어쩔 수 없이 통덫으로 잡아야 했다.
"미리야, 미안해!"
겨우 중성화 수술을 시키러 갈 수 있었다. 그 후에도 극도로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우리 집 식구가 되기를 거부하듯 따로 행동하며 늘 구석으로만 숨어들었다. 미리는 길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힘들었던 것보다는 훨훨 날듯한 자유로움이 더 좋았는데, 집사의 판단만으로 데리고 온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미리는 예방주사도 한 번 밖에 못 맞혔다. 집에 온 지 3년 9개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과 개를 두려워하고 있다. 딱 하나 다행스러운 건 인이 오빠야를 너무나 좋아해서, 완전 '인이 바라기'가 된 점이다. 미린 그래도 고양이 보는 눈이 있나 보다. 검은 고양이 인이는 성격이 정말 좋아서, 까칠한 미리를 잘 받아주고 보듬어준다. 사람과 개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따르고 좋아할 만한 인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미리는 인이 오빠만 보면 좋다는 표현으로 머리를 들이받곤 한다. 인이는 깜짝 놀라면서도 주춤하기만 할 뿐 참아주는 걸 보면, 인이에게도 미안하다. 베란다 창문턱에 앉아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미리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쨘하게 아려온다.
"미리야! 엄마는 여리디 여린 네가 바깥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단다. 그래서 널 데려왔고, 정말 한없이 사랑한단다. 제발 마음을 좀 풀어주렴! 우린 서로 가족이잖아! 앞으로 사랑하며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