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순둥 한 ‘둥’

파란만장 한 사연이 있는 고양이

by 마음정원사


‘둥’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엔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딸이 애견미용사로 처음으로 취직한 곳은 집 근처에 있는 어느 동물병원이었다. 딸은 그 곳에서 3개월 정도 짧게 근무를 했다. 아주 좁은 케이지가 병원의 어두컴컴한 구석에 있었다. 그 좁디좁은 케이지에는 2마리의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이삐’와‘점이’였다.


동물을 극진히 좋아하는 마음을 타고난 딸은 날마다 ‘이삐’와 ‘점이’를 보며 불쌍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 그 좁은 공간에서 6년간이나 갇혀 있었다고 한다. ‘이삐’와 ‘점이’의 주인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고양이 두 마리와 개 두 마리를 이 병원에 맡겨두고, 찾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돈은 매달 꼬박꼬박 송금을 해 주었기에 원장선생님도 주인의 형편이 좋아져 데리고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딸이 그 병원과 맞지 않은 점이 많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불쌍한 ‘이삐’와 ‘점이’를 두고 와야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딸은 많은 고민을 했다. 입양은 보나마나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칠 거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고민은 더 깊어만 갔다.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가 없어서 원장선생님께‘이삐’와‘점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다. 원장선생님도 골칫거리였던 고양이를 입양할 사람이 생겼으니 반가웠었나 보다. 주인에게 전화하니 자신도 마지막으로 고양이들을 보고 싶다고 말은 했으나 끝끝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 당시 병원엔 한 마리의 어린고양이가 더 있었는데, 중성화 수술을 맡겨놓고 줄행랑을 친 주인의 5개월 된 고양이었다. 원장은 이 고양이까지 데리고 가야 ‘이삐’와 ‘점이’를 주겠다고 했다. 딸은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둥’에게 처음부터 친절한 마음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 당시엔 고양이에 대한 동정심만으로 데리고 왔을 뿐 고양이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던 상태였다.


고양이는 소심해서 환경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곤 하는데, 딸은 그걸 미처 몰랐었다. ‘둥’의 눈을 가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동 장에 손을 넣어 꺼내려고 했다가 잔뜩 겁에 질려 거의 패닉상태에 있던 ‘둥’이 딸의 손을 꽉 물어버렸다. 딸은 ‘이삐’와 ‘점이’보단 어리고 예뻤던 아기고양이 ‘둥’을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덜 했다. 아마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데려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딸은 그 당시에 가족들의 냉대와 구박, 경제적인 어려움의 이중고를 겪으며 마음이 외롭고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그 당시 어린 ‘둥’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그 겨울 옥탑 방 에서 얌전하게 지낸 ‘이삐’, ‘점이’와 달리 한창 혈기왕성했던 청소년 ‘둥’은 사고뭉치 그 자체였다. 사료포대를 뜯어버리고 너무 많이 훔쳐 먹어서 불과 몇 달 만에 대장고양이급의 덩치로 급성장했다. 그 힘든 시절, 우리 ‘둥’의 예쁘고 귀여웠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점이’는 지병이 있었다. 원장선생님은 알고 있으면서도 데리고 가지 않을까봐 딸에게 알려 주지 않았었고, 알았더라도 그 당시에 딸은 쥐꼬리 만한 월급에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청객들을 데리고 왔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부모에게 차마 손을 벌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며칠을 시름시름 앓던 ‘점이’는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흰색 바탕에 검은 점이 있던 참 예쁘게 생겼던 작고 순한 고양이는 어설픈 고양이집사가 고양이에 대해 뭘 알아가기도 전에 병마에 쓰러지고 말았다. 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점이’는 마음에 죄책감과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이후 세 마리의 개와 두 마리의 고양이와 동거하기에 지나치게 좁고 어두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딸은 멀리까지 출퇴근하면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은 좁은 거실엔 덩치 큰 리치와 세 마리의 개(영광,샌디,제티)가 있었기에 거실로 나올 생각은 할 수도 없었고, 좁은 방안에서 하루 종일 지낼 수밖에 없는 ‘개 중심’의 환경이었다. ‘둥’은 성묘가 아닌 한창 혈기왕성한 청소년 고양이였기에 그 좁은 방이 마치 케이지처럼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동물이 많아 짖음으로 인한 갈등이 생길까봐 단층주택을 구했었다. 그 집은 지나치게 낡아 있어 현관문이 나무문으로 부실해서 꽉 닫지 않으면 바람에도 스르르 열려버리곤 했다. 베란다가 따로 없어 현관문이 열리면 바로 바깥마당이었다. 어느 날 ‘둥’이 문이 열린 틈으로 잽싸게 가출해 버렸다. 그 동네는 대학가여서 주점과 식당이 많았었고, 한옥집도 많아서인지 길고양이들도 많았다. 과연 그 순둥이 ‘둥’이 영역을 중시하는 길고양이 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난 섭섭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가출해 버린 건 아닌가? 사실 그때까지 난 확실히‘개 파’였다. 고양이는 어릴 때 길러봤을 뿐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한 고양이가 없다시피 했다. 어린 시절 예뻐했던 고양이들은 한 번 삐쳐서 나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았었기에 내가 쏟은 사랑에 배신당한 것 같기도 해서, 어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내게 있어 아쉬움과 배신감, 원망은 고양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던 감정이었다.


‘둥’은 덩치는 대장급으로 크지만 엄청 순했었기에, 침입자로부터 영역을 지키려는 대장에겐 경계대상 1호가 되어 분명히 쫓겨 다니고 있을 것이다. 무서움에 눈은 커질 대로 커져서 벌벌 떨고만 있을지도 몰랐다. 딸은 시간이 자꾸 흐르면 쫓겨 다니다가 사고를 당하던지, 너무 먼 곳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면 그 때엔 도저히 찾을 수가 없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딸은 그 날 밤에 어디에선가 통 덫을 빌려 가지고 왔다. 잘 먹는 ‘둥’이 하루 종일 먹지 못했을 테니까 통 덫 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면 오늘 밤은 분명히 나타날 것 같았다. 우리의 예상대로‘둥’이 나타나서 통 덫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어설프게 줄을 잡아당겨 버려 잡지도 못한 채 도망가 버렸다. 다급하게 부르는 우리의 소리도 못 들은 듯 한번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지붕위로 도망가 버렸다. 정말 큰일이다 싶으면서 ‘둥’이 야속하고 미웠다. 딸은 ‘둥’을 이해했지만 고양이에 대해 잘 몰랐기도 했고, 어린 시절 고양이한테 느꼈던 배신의 감정이 되살아났기에 내 마음은 원망스러움으로만 가득 찼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은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평소에 ‘둥’이 좋아하던 바스락거리는 비닐소리를 내면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사흘 만에 거짓말처럼 어두운 골목에서‘야옹’하면서 특유의 흔들거리며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로 딸에게 다가왔다 한다. 딸은 반가움에 덥석 안아서 데리고 왔다. ‘둥’은 덩치와 달리 완전한 허당 같은 매력미를 발산하며, 순둥한 매력도 겸비하고 있다. 딸이 가지고 있던 처음의 ‘둥’에 대한 서운했던 감정이 반가운 만남으로 인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낡은 집에서 10개월 살고 나니, 주인이 건물을 짓는다고 비켜달라고 했다. 우린 또 다른 단층 주택을 구해 이사를 해야 했다. 이 집도 저번 집이랑 구조가 같았기에 ‘둥’이 두 번째 가출을 해버렸고, 그래도 다행히 하루 만에 먹이로 유인해서 잘 찾았다. 이 집도 주인이 1년 만에 또 비켜달라고 해서 집을 구하기도 무척이나 어렵고 이사를 자꾸 하게 되니, 세 들어 오래 살 복이 우리에겐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과 딸의 직장은 멀어지지만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고 남편에게 말하니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이사하기 사흘 전에 ‘둥’이 세 번 째 의 가출을 감행했다. ‘둥’과의 묘연은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곤 했듯이, 이번에도 신기하게도 딸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괴로워하며 바깥을 보고 있는데, 때마침 이웃집 지붕 밑에서 보고 있던 ‘둥’과 눈이 딱 마주쳤다며, 다짜고짜 그 집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난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었는데 어떻게 ‘둥’의 눈이 보였다는 건지 믿기지 않았다. 그 집은 1층 집이었고, 천정과 지붕사이에 어떤 공간이 있었다. 그 안으로 휴대폰을 넣어 동영상을 찍어보니, 진짜 거짓말처럼 ‘둥‘이 다른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그 속에 있었다. 불러도 나오지도 않고 해서 그 댁의 허락을 받고 119 대원 분들께 도움을 요청했다. 고쳐드린다고 약속을 한 후에 슬레이트 지붕을 뜯고 구조하려고 딸아이가 ‘둥’의 다리를 잡는 순간 이 녀석이 또 패닉상태가 되어 주인인 줄도 몰랐는지 사정없이 딸의 손을 꽉 깨물어 버리고 도망을 쳐 버렸다. 딸은 너무 깊이 물려서 물린 곳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둥’이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이틀 후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찾지를 못하면 어떡하지?’패닉 상태가 된 순둥이의 커질 대로 커진 겁먹은 눈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틀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결국 ‘둥’을 찾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 했다. 딸은 ‘둥’을 찾아야 한다며 빈집에서 통 덫에 냄새가 강한 프라이드치킨을 넣어두고 잠복한 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열흘을 밤을 새다시피 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딸 혼자 빈집에 있는 게 불안하고 위험했지만 흑기사처럼 남동생이 따라가 주어서 누나의 보디가드 역할을 든든히 해주었기에 무척 고맙고 든든하게 여겨졌다. 드디어 잠복 열흘째 되던 날 한밤중에 ‘둥’이 통 덫에 들어갔고, 눈이 새빨갛게 된 채 지켜보고 있던 딸이 통 덫의 줄을 ‘짜짜짠!’ 내렸다. 우리 ‘둥’은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금방 누나의 얼굴을 알아보았고, 자기도 떠돌이 생활에 지쳐 있었던지 이내 안정을 되찾으며 안심했다. 난 한밤중에 자다가 딸의 반가운 전화를 받고는 기뻐서 환호의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그렇지! 와! 이제 됐다!”


‘둥’은 드디어 누나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아무 탈 없이 육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천방지축이던 ‘둥’도 제법 의젓해졌다. 우리 집은 문이 하나가 더 있어서인지 다시는 탈출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이불위에서 잠만 자며 거실에도 나와 보지도 않던 ‘둥’은 생명의 은인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그 날 이후로 ‘누나바라기’가 되어 퇴근 후 누나가 돌아오면 항상 졸졸 뒤따라 다니며 울어댄다. 누나가 목욕탕에 들어가면 그 앞에서 울고 있고, 옷 방에 들어가도 문 앞에서 여전히 울고 있다. 누나와 기차놀이하듯 어디든지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누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잘 때에도 항상 몸부림치는 누나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붙어 있으려 한다.


‘둥’을 보면 딸과의‘묘연’이 참으로 깊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씩이나 끊어질 뜻 끊어질듯 또 이어지곤 하는 걸 보면. 처음엔 서로 싫어하는 사이로 만났다가 산전수전 다 겪고는 이젠 같이 나이 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 알콩달콩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반려 묘’가 우리에게 주는 크나큰 정에 웃음 짓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둥아! 큰 수술도 무사히 이겨내고, 불사조 같이 매번 살아나는 너이니, 우리와 함께 사이좋게 영원토록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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