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영원히 사랑할거야!
'가족이 12명이나 되는 대가족이라구요?'
우리 가족은 12명이 한집에서 살고 있다. 바쁜 현대생활에선 깜짝 놀랄만한 가족구성원이지만 사람은 단지 나와 남편, 딸, 이렇게 세 사람 뿐이고, 나머지 아홉 명은 동물친구들이다. 사람보다 세 배로 많은 동물친구들로 인해 수없이 많은 돌발사태가 생기며, 항상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수캐 네 마리와 두 마리의 수고양이, 암고양이 세 마리, 이렇게 총 아홉 마리의 동물과 함께 활기차고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 동물 친화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그냥 적당히 개를 좋아하고 고양이는 아주 싫어하는 남편을 북새통 같은 환경 속에 놓이게 한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사연이 많은 동물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좌충우돌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은 개를 좋아했었고, 난 형제자매 중에서도 유난히 더 개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예전엔 개들을 묶어 놓고 마당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각자 뚝뚝 띄워서 한 마리씩 마당에 묶어두었다. 아버지도 꽤나 개를 좋아하셨다. 세퍼드, 진돗개, 포인터, 코카스파니엘, 스피츠, 발바리등 집에는 항상 세 마리에서 열 마리 이상의 개들이 있었다. 사냥개‘베스’는 배가 길어서인지 새끼를 한번에 12마리씩이나 낳았기에, 나무로 만든 큰 집에서 살게 했다. 사냥을 좋아하신 아버지의 사냥욕구를 잘 충족시켜주며 어떤 개보다 영리하고 사냥을 잘 하던‘베스’는 잘 생긴 세퍼드‘루비’나 진돗개‘로보’보다는 사랑을 훨씬 많이 받는 편이었다. 모든 강아지는 다 귀엽고 예쁘지만 특히 포인터의 새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물고 빨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할 정도로 한없이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귀와 볼 살은 촉 쳐져 있고, 눈은 크고 발도 커서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강아지이다. 부모님이 주무시고 난 후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거나, 초저녁에 미리 자고 일어나서는 밤늦은 시간에 주무시는 부모님 몰래 발소리 숨소리를 죽여 가며 살금살금 베스의 집으로 향한다. 살그머니 손을 집어넣어 12마리 중에 바깥쪽에 있는 두 마리의 강아지들을 몰래 데리고 방으로 와서 밤새껏 같이 놀곤 했다. 강아지들이 오줌을 싸기도 했지만 쓱쓱 닦은 후 더러운 줄도 못 느끼며, 안고선 강아지 볼을 부비고 뽀뽀하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개들과 함께 하면서 받은 사랑의 기운 덕분인지 집안 분위기는 딱딱하고 어두운 편이었지만 난 항상 활기에 차있었고, 누구보다도 명랑한 편이었다. 개들은 어린 내 마음을 보듬어주고 따스하게 안아 주었었기에 지금도 개들을 보면 고맙고 사랑스러우며 보살펴 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개와 함께 하지 않은 세월은 결혼 후 8년 정도에 불과했으니, 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과 달리 요즈음엔 개, 고양이와 마치 한 가족처럼 같은 공간에서 살을 부비며 정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므로‘반려 견’, ‘반려 묘’라고 한다. 우리 집의 아홉 마리의 동물들은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래브라도 리트리버인‘리치’와의‘견연’은 가히 필연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치가 5개월이었을 때 우리 집 앞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리치는 코도 갈색이고 눈도 고동색이어서인지 래브라도 리트리버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핏불테리어를 더 닮은 것 같았다. 나를 닮아서인지 딸의 동물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 딸이 백조 시절에 용돈을 벌수도 있겠고, 좋아하는 대형견과 다양한 견종을 돌봐 줄 수 있는‘애견돌보미’를 해보고 싶어 하며‘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임’에 글을 올렸다. 답답한 케이지에서 돌봄을 받는 것 보다는 가정에서 돌봄을 받게 되면 개의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한 주로 미혼여성들인 견주들이 딸에게 개들을 맡기곤 했다. 주말이나 명절에 고향에 가려해도 차가 없을 경우엔 대형견을 집에 혼자 두는 게 마음에 걸려 고향에도 가지 못하던 견주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일이었던지, 견주들의 돌봄 부탁이 연이어 들어왔다.
‘리치’도 고양이만 키워 본 젊은 미혼 여성이 티브이에서 리트리버의 영상을 본 후, 그 모습만 보고 귀엽다고 키워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 후 양평까지 가서 리치를 데리고 왔다 한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지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부딪치게 되자 리치의 주인은 자신이 다니던 공장에 그 어린 리치를 홀로 놓아둔 채 퇴근을 하곤 했다. 리트리버들이 비교적 순하고 사람에게 친화적인 편이라, 리치도 공장에서 홀로 지내던 외로움을 풀기라도 하듯이 주말에 친구들이 많이 있는 우리 집에 오면 엄청 흥분하며 좋아했다. 첫 날엔 겁이 많아서 계단도 오르지를 못한 채 두 다리를 쫙 벌리며 올라가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다. 한 계단에 하나씩 먹을 걸 올려놓으니, 워낙 먹성이 좋은 리치는 먹이에 정신이 팔려 무서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4층까지 무사히 데리고 올라올 수 있었다. 그 당시엔 단순히 겁이 많아서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리치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도 무서워서 타지 않으려고 했다. 리치를 임시보호 하게 되면서‘중성화 수술’을 시킬 때에야 리치의 심장이 아주 약하게 뛴다는 걸 수의사 선생님께 들을 수 있었다. 마취를 하니 리치의 심장이 멈추려 해서 급하게 마취를 깨우는 주사를 맞고, 깨어난 후에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가서 수술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빛과 같은 속도로 수술을 빠르게 잘 마쳐주신 수의사 선생님 덕분에 리치의 중성화수술은 무사히 마쳐질 수 있었다. 너무 설쳐대어서 수술한 자리가 조금 터졌지만, 마취시키기가 두려워 그대로 약만 발라줘서 낫게 했다. 리치는 지나치게 흥분을 잘하고 비가 오는 날에 어떤 이유에서인진 몰라도 식탁 밑으로 벌벌 떨면서 들어가 있던지, 어두운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곤 한다. 아마도 어릴 때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던 어느 날 밤에 혼자서 쩔쩔매며 무서움을 견디던 것이, 결국엔 트라우마로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된다.
리치의 주인은 개를 키워보지 않아서인지 리치를 입양할 가정을 선택할 때에도 대형견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하고 있는 가정을 찾기 보다는 하루속히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더 강해 보였다. 사실 대형견은 식용으로 보내버리려 하는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입양을 원해 악용할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입양가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리치는 흥분을 잘 해서인지, 입양가정에 갔다가 몇 시간 만에 파양을 겪거나 하루 만에 되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딸은 사랑스런 리치에게 듬뿍 정이 들어버려서인지 일단 우리가 임시보호를 하고 있다가 좋은 가정을 세심하게 물색해 보고, 리치가 사랑받을 수 있는 가정으로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빠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아빠는 만일에 입양가정을 찾지 못하면 결국 우리가 떠맡게 될 것을 우려해 반대를 한 것이다. 그 영리한 리치가 혹여 잘못되는 건 정말 싫고 끔찍한 일이었으므로 아빠 몰래 숨겨두고 키우기로 딸과 난 마음먹었다. 우리 집이 상가주택이라 다행히 리치를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거기엔 리치의 영리함도 한 몫을 단단히 했기에 세 달 동안이나 숨겨서 키울 수 있었다. 대문에서 열 계단쯤 올라와야 현관이 나오는 구조 덕분에 아빠가‘띵띵띵띵 띠리링’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만 내면 어느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리치는 재빨리 목욕탕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남편은 안방화장실을 주로 사용하였기에 리치가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을 세 달 동안이나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세 달 이상을 숨겨두고 키우다가 어느 날 들켜 버렸을 땐 남편은 정말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날로 리치는 당장 옥상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리치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개였기에 혼자 바깥에 놓여 진 상황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밤새껏 짖어대었다. 이웃분이 찾아와서 시끄럽다고 항의를 해서, 옥탑 방에서 키울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불쌍하고 처량했던 리치의 어린 시절이다. 리치는 유난히 영리해서 곁에 두고 평온한 마음으로 키워 감정이 안정되면, 정말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개이다. 하지만 대형견에 대해 무지하고 경험이 없었던 전주인과 수많은 파양, 남편의 극심한 반대 등 불안하기만 한 환경 속에서 그 예쁜 어린 시절을 다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귀여운 재롱을 피우며 사랑을 받기만 해도 모자랄 아까운 시간에, 갖은 마음고생을 하며 잃어버린 것과 다름이 없는 유년생활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리치의 지나간 시절이 생각나면 한없이 불쌍하기만 하다.
겨울이 되면서 난방이 되지 않는 옥탑 방은 너무 춥다는 이유를 대면서, 리치를 3층 거실로 데리고 내려올 수 있었다. 아빠도 더 이상 딸과의 감정대립에 지쳤는지 마지못해 눈을 감아주었다. 이때부터 안심을 하고 리치를 곁에 두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리치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리치는 동물이 나오면 티브이에 빨려들어 갈 듯이 티브이를 시청하기도 한다. 러닝머신을 할 때엔 주인이 보지 않으면 앞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앞의 플라스틱에 올려놓고 뒷다리로만 걷다가 주인이 보면 제대로 걷는 척을 한다. 잔꾀를 부리는 그 모습까지 귀여워서 우린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리치는 습득과 눈치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 우리가 훈련만 꾸준히 시켰다면 수많은 개인기를 터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리치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우린 경제적인 어려움과 남편의 사업장 이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사업자금이 필요했던 남편은 살던 집의 3층 주택만 전세를 놓고, 월세로 단독주택을 구해서 이사를 갔다. 그 당시엔 세 마리의 개와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기에 단독주택이 아니면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생길지도 모를 불안감이 있어서, 단층으로 된 단독주택을 구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허리 수술 후 딸이 운전하는 뒷자리에 누워 집을 구하러 다녔다. 우리가 겨우 구할 수 있었던 주택은 엄청나게 오래된 낡은 집이었다. 앞의 건물에 가려 텃밭에 씨앗을 심어도 볕이 들지 않아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운 집이었다.
리치는 환경이 바뀌니 사흘이나 배변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리치에게 좋은 환경을 주지 못하는 것도 슬프고 속상하기만 했다. 바깥에 데리고 나가면 배변을 할 것 같았지만 허리가 아픈 내가 하루에도 여러 번 산책을 데리고 나가기란 너무 벅찼으므로 목욕탕에서 하기 만을 바라면서 버텨나갔다. 드디어 사흘 만에 리치는 소변을 목욕탕에 누었다. 이후론 다행히 순조롭게 잘 적응해 나갔다. 거실이 굉장히 좁아 소파를 둘 수도 없었다. 안마의자가 리치의 전용의자가 되었다. 그 즈음 닥스훈트인 강아지‘제티’가 우리 집에 왔고, 한눈에 순한 리치가 마음에 들고 좋았던지 리치의 등 위에 올라가 잠도 자면서 둘이 주로 같이 지냈다. 리치는 귀찮지도 않은지 ‘제티’가 계속 다리를 물어도 장난을 잘 견뎌주었다. 하지만 그 당시 이빨이 가려웠던 어린 ‘제티’는 날카로운 이빨로 리치를 깨물며 끊임없이 괴롭혔다. 정말 못 참을 정도로 화가 나면 한자리에서 계속 뱅글뱅글 돌았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고 미안했다. 리치는 철부지‘제티’를 마치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잘 참으며 보살펴 주었다. 가족들이 다 출근하고 나면 리치는 하루 종일 좁은 집에서 잠만 잤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남편은 리치가 답답할 것 같다며 자전거에 리드 줄을 묶어 집근처 대학을 함께 달려주었다. 대형견은 산책을 매일 시켜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지 리치가 심장이 약하단 사실을 우린 잊어버리고 있었다. 리치가 비오는 날에 굉장히 불안해하며 어두운 곳을 찾는 증세도 알고 보니 심장이 약해서였단 걸 몇 년 후 병원에 가서야 알 게 되었다. 리치가 여섯 살쯤 되었는데 기운이 너무 없어보여서 노령 견 전문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았다. “리치는 산책을 시켜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예요.”그러고 보니 리치가 산책을 갔다 오면 며칠 씩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할 때가 더러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리치가 다리가 약해서 그런가 보다고만 생각했었지 그 원인이 심장에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삼년 전부터 리치는 매일 심장 약을 먹고 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다 보니 약값이 많이 든다. 딸은 몸이 아파도 리치의 약값을 벌어야 해서, 일을 쉬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쉬지를 못한다. 동물 약품 파는 곳에서 사서 먹이긴 하지만 수입약이라 비용이 무척 비싸고, 그 부작용으로 인한 가려움증이 심해져서 계속 긁는 버릇이 생겼다. 이제 리치 나이가 어느 듯 9살, 대형견으로선 나이가 많이 든 편이다. 리치가 힘없이 누워만 있고 더위를 많이 타서 에어컨을 방에 설치해 주었다. 시원하게 해주면 그래도 푹 잘 자기 때문이다.
리치는 주인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 우리와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리치가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들곤 한다. 리치는 어쩌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 리치를 돌보는 일이 다른 개들에 비해 많긴 하지만, 리치는 눈치가 빠르고 말을 잘 알아듣기에 우린 그리 힘든 걸 못 느끼며 사랑으로 돌볼 수 있었다. 훗날 리치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가 너무나 커서, 우리 가족의 마음은 무척이나 허전하고 아플 것이다.
딸은 벌써 대형견의 평균수명이 된 리치를 데리고 이별 준비를 하듯이 단둘이 여행을 가곤 한다. 흥분하면 심장에 해로워서 자주 여행을 가진 못하지만 둘만의 추억을 쌓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은 익히 알 것 같다. 연일 계속되는 폭우와 천둥 번개가 쳐서인지 거실에 잠시 있다가 이내 어두운 목욕탕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저리다. 올해 들어 얼굴 털이 하얗게 세어버리고 속눈썹까지 희게 변했다. 늘어난 내 흰머리보다 리치의 희게 변한 털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
“ 리치야! 우리에게 함께 할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차고 재미있게 잘 보내보자! 많이많이 사랑해, 우리 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