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시야간숙소 Aug 13. 2021

영웅은 타고 나는 것인가?

역사에서 영웅이란


흔히 영웅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결해나갔기 때문에 단순히 생각해서 겉만 바라봤을 때는 타고난 존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영웅을 둘러싼 다양한 측면들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영웅은 자신 스스로의 타고난 힘으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때론 영웅이 되기도 하고 때론 영웅에서 몰락하기도 합니다.



‘영웅은 타고나는 것이다.’라는 명제와 다르게 역사학에서는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라는 명제가 있습니다. 이 명제의 의미는 가벼운 수준에서는, 시대의 여건이 개인의 능력을 꽃필 수 있게도 하고 시들게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쉽게 말해 흔히 난세에 영웅이 많은 것은 유달리 그 시대에만 영웅의 재목이 많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 시대가 ‘난세’였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시대조차 영웅은 타고난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바로 반박되는 것은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라는 명제가 앞서 말한 의미를 넘어서 타고난 능력만으로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흐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사와 가치관이 그때까지 파묻혀 있던 어떤 인물을 영웅으로 ‘발굴’하기도 하고, 또는 그때까지 의심의 여지없이 존경의 대상이던 인물을 영웅에서 몰락시키기도 한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나폴레옹을 알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라고 하면 흔히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생각되곤 하지만 사실 프랑스 내 국민들의 인식에서도 상충된 평가가 나옵니다. 누구는 나폴레옹을 프랑스 현대화의 주역, 프랑스 대혁명의 계승자로 평가하기도 하고, 누구는 독재자, 프랑스 혁명 정신을 유린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1994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퍼센트가 나폴레옹을 프랑스 현대화의 주역으로 평가한 반면, 30퍼센트는 독재자라고 답했다. 심지어 1997년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퍼센트가 나폴레옹을 프랑스 대혁명의 계승자로 본 반면, 45퍼센트는 대혁명 정신을 유린한 인물로 보았으며, 나폴레옹의 대륙 원정을 해방전쟁이라고 평가한 사람이 20퍼센트에 머문 반면, 정복전쟁이라고 답한 사람이 60퍼센트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충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가 시대의 흐름과 정치 정세의 변화에 따라 역사적으로 영고성쇠를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볍게 살펴보면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에서 승리하고 1799년 쿠데타를 통해 권좌에 오른 후 자신의 제위기간 동안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나폴레옹이 물러나고 복고 왕정이 들어섰을 때는 ‘폭군’이자 유럽 각 지역의 민족을 억압한 ‘정복자’로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1830년 7월 왕정기에는 당시 시대의 조류였던 낭만주의의 물결을 타고 7월 왕정의 보수주의적 강압책에 맞서 구체제에 맞섰던 영웅으로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제2제정기 때 나폴레옹 조카의 권위적 통치에 대한 반감이 곧 삼촌인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지면서 나폴레옹의 이미지가 또 추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19세기 말 민족주의 시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나폴레옹은 독일에 대한 복수를 부르짖으며 민족정기를 일으켜 세우는 구국영웅으로 다시 등장했고. 하지만 또 전체주의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20세기 중엽에는 현대판 대중독재의 선구자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는 다시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나폴레옹에 대한 프랑스인의 기억이 일관된 것이 아니라 숭배와 규탄, 신화와 반신화의 사이클을 줄곧 반복하는 특성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영웅이 죽은 이후 사후적으로 각 시대의 정치제도와 사회적 필요에 따라 같은 인물이 어떨 때는 ‘영웅’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영웅에서 몰락하기도 하는 등 영웅이란 게 그 사람 개인이 ‘타고난 것’으로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능력이 타고났더라도 그것이 바로 ‘영웅’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할 때는 때론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영웅이 되지 않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근대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위는 ‘민족’이었는데 이러한 ‘민족의 역사’에서 ‘영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습니다. 이때 영웅은 비범한 능력을 소유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비범하지 않더라도 국민을 창출하고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면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고전적인 영웅과 다르게 근대적인 국민 영웅은 극단적인 경우 별다른 뛰어난 자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초인적 능력이 아니라 국가가 요구하는 충성심을 보였던 그 ‘평범한 모습’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잔 다르크가 바로 그러한 예시가 될 수 있는데 잔 다르크는 20년 정도 밖에 살지 못했고 객관적으로 그렇게 뜰만한 성과를 보인 적도 없습니다. 




흔히 잔 다르크의 성과로 평가받는 오를레앙 전투, 샤를 7세 대관식을 위한 랭스 대성당 원정의 경우 잔 다르크가 직접적인 전투지휘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당시 백년전쟁의 전세 자체가 프랑스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당시 전황에 대해 살펴보자면, “샤를 7세는 루아르 이남에서 자기편에 적대적인 군주둔지들을 분쇄하여 상황을 성공적으로 안정시키고, 경험이 풍부한 군대와 훌륭한 장교들을 보유하게 되며, 그리고 그의 숙적인 헨리 5세가 병사하게 된다. 영국 조정은 프랑스 편과 영국 편의 두 파로 갈라지고, 프랑스 주둔 영국군을 지휘하는 베드포드 공작은 뛰어난 외교관도, 야전사령관도 아니었다.”(「잔 다르크와 상징들 : 시골처녀에서 영웅으로 획기적인 변모 - 정치적 요구와 종교적 문제 사이에서」 , 올리비에 부지(프랑스 잔 다르크 연구소 부소장)) 게다가 잔 다르크는 파리 원정에서 패배하고 영국군에 사로잡혀 죽음에 이른다.




실제 전장에서 활약한 날짜도 한 달 남짓이었음을 고려하면 프랑스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질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능력보다는 어떤 다른 요소, 즉, 국가나 민족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잔 다르크는 중교재판으로 화형당한 이후 한동안 영웅이 아니라 ‘부정적인 존재’로서 존재했습니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개신교도들의 눈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소녀’로서의 잔 다르크는 우상숭배나 다름없었고 계몽주의 시기에는 무지에서 비롯된 대중의 경솔한 믿음과 역사에 대한 초자연적 해석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잔 다르크가 지금과 같은 ‘영웅’으로서 추앙받아지게 된 건 그녀가 죽은 후 무려 300년 정도 지난 19세기 들어서였는데 이때 그녀가 추앙받아지게 된 건 순전히 그녀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국가나 민족에 대한 충성심’을 자극하기 위한 ‘도구’로서 당시 나폴레옹의 정치적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나폴레옹의 입장에서 영국에 대적하는 국민적 단합을 만들고 혁명으로 단절되었던 가톨릭 교회와의 화해를 위한 종교적 상징성을 위해 소위 ‘잔 다르크 띄우기’에 들어갔던 겁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기 전에는 프랑스 촌구석에 떠도는 전래동화 속 주인공 정도였던 잔 다르크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프랑스의 영웅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데 이는 그녀의 뛰어난 능력보다는 적합한 이미지로서 활용되기 쉬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정리하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시대에 따라 때론 그때에는 영웅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에는 영웅에서 몰락하기도 하고 더불어 타고난 능력이 없더라도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여 영웅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볼 때 영웅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 참고자료


․ 「기억의 바다를 떠도는 영웅들의 이미지 ; 《영웅 만들기-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 《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프랑스 역사에 나타난 영웅의 탄생과 몰락》」, 역사와 문화 10호 (2005년 9월)


․ “L‘image de Napoleon aupres des Francais”, sondage SOFRES pour la Foundation Napoleon, octobre 1994.


․ “Les Francais et Napoleon”, sondage BVA pour Paris-Match, mars 1997.


․ 「잔 다르크와 상징들 : 시골처녀에서 영웅으로 획기적인 변모 - 정치적 요구와 종교적 문제 사이에서」 , 올리비에 부지




작가의 이전글 식민지 근대화론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