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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시야간숙소 Aug 15. 2021

자본주의 역사 이해의 필요성

『불평등의 대가』를 읽고


1) 서론

현재 세계는 불평등하며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또한 ‘금수저’, ‘흙수저’ 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양극화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현실이다. 취업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취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정년을 보장받기 힘든데다가 사회 안정망도 점차 해체되고 있다. 반면, 재벌들은 더 덩치가 커졌으며 소수의 부유층이 챙기는 막대한 배당금과 상여금의 액수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가, 불평등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떤 지점에 주목해서 볼 것이냐에 따라 원인 분석에서부터 해결책까지 의견이 다양할 수 있다. 20세기 주류 경제학에서 분배 문제를 도외시한 탓에 현재 세계의 불평등에 관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2014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미국에서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다양한 이유들 중의 하나는 불평등의 해답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이전부터 불평등에 대한 이론과 분석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가 그 대표적인 저작이며 미국만큼이나 불평등이 심한 한국에서도 관련한 내용과 논의를 다룬 책이 많다. 이정우의 『약자를 위한 경제학』도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불평등 문제를 다루다 보면, 경제성장과 경제위기에 대한 관점이나 시장/국가/제도에 대한 관점이 녹아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불평등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겉 보이는 현상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며 경제의 흐름을 잘 정리하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며 나아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불평등의 대가』와 『약자를 위한 경제학』의 관점은 대동소이하다. 현 시기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인식,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입장, 20세기 중반의 자본주의와 20세기 후반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그렇다. 본인은 이러한 인식 지점에 있어서 그들의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2) 그들이 말하는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오늘날 미국의 불평등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지대추구(Rent Seeking)”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자들이 지대추구에 관해 말할 때 지대란 어떤 생산요소가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정에서 기여한 부분, 즉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 부분을 초과하여 받는 보수, 다시 말해서 ‘불로소득’이라는 뜻이고 지대는 불법적이진 않더라도 불공정한 이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크다. 주류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시장 경쟁이 완전하면 모든 생산요소는 각자의 기여도에 비례하여 보수를 받게 된다. 그러나 경쟁을 제한하는 제도나 행위로 인해 특정 생산요소가 지대를 취득하게 되는 일이 흔하다. 따라서 지대 추구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며 경쟁 제한적 제도나 행위를 없애야 한다고 본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러한 지대추구가 일어나는 대표적인 장소로 금융부문에 주목한다. 그리고 금융부문이 현재 미국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을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고 주장한다. 『약자를 위한 경제학』에서 이정우 또한 초국적 금융자본 유치를 위해 각국이 경쟁적으로 임금 인하, 사회보장 축소, 규제완화 등으로 치닫는 가운데서 빈부격차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부문의 약탈적 이익 추구는 동전의 양면처럼 산업/복지부문의 투자 감소와 이어진다. 스티글리츠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여러 해 동안 중산층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던 제조업 부문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대표되는 고용의 불안정과 사회안전망의 축소, 임금 하락 등의 요인에도 주목한다. 이정우 역시 양극화의 원인으로서 노동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자리 양극화를 들었으며 일자리의 양극화가 중산층 붕괴와 소득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은 왜 나타나게 되었을까? 두 책 모두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음에 따라 시장이 규제되지 않아 발생하게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정책적 대안은 큰 틀에서 ‘시장을 규제하는 것’이며 무분별한 금융투기를 규제하고 산업/복지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불평등이 심화된 이후에 발생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총수요의 부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경제를 다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총수요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반적 관점은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적자재정과 금융억압을 주장했던 20세기 초중반 케인즈의 관점과 유사해 보인다. 따라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들어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1929년 대공황에 대한 해결책과 20세기 중반 자본주의 역사에 주목하며 지금의 경제 현실에도 적용시키려 하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약자를 위한 경제학』의 이정우가 케인즈주의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현대 사회가 소비사회이므로 소비를 떠받치지 않고는 세계적 불황에서 탈출하기 어렵다고 주목하는 것,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1929년 대공황에 주목하는 것을 볼 때 『불평등의 대가』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불평등의 대가』에서 설정한 분기점

『불평등의 대가』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경로를 이탈한 시점”, 즉 금융부문의 규제완화와 노동시장의 불안정화가 시작된 시점으로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을 꼽는데 그 이후로 경제의 과도한 금융화가 야기되었다고 분석한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의 현상을 개괄한다면, 이전의 경우 강력한 금융규제가 시행되었으며 노동권이 강화되고 사회보호가 확대되었다. 경제는 호황기였으며 호황의 성과가 비교적 고루 분배되었다. 이후의 경우 금융규제가 완화되었으며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사회보호가 축소되었다. 경제는 불황기였으며 경제성과는 불평등하게 배분됨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현상만을 놓고 보자면 왜 그 시점을 주목하고 전자를 좋은 것, 후자를 나쁜 것으로 보고 있는지 납득이 갈만하다.

그러나 그는 왜 하필 그 시점에 그러한 변화가 야기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방식의 재정정책/통화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어떤 전문가도, 어떤 정부 정책으로도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위기가 장기간 지속되거나 혹은 너무나 안정적으로 보였던 풍요의 시대가 갑작스런 위기 속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는 국면이 발생한다. 이러한 국면은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 시기 중 하나가 바로 스티글리츠가 분기점으로 꼽은 시기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된 해는 1981년으로, 1970년대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던 시점이다.

<그림1> 미국 이윤율 그래프(윤소영)
 <그림2> 미국 금융기관과 비금융기업의 이윤율     (뒤메닐)


자본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지표는 이윤율이다. <그림1>은 20세기 미국 경제의 이윤을을 나타낸 그래프이고 <그림2>는 미국의 금융부분과 비금융부분의 이윤율을 나타낸 그래프이다. 그래프의 정확한 수치보다는 전반적인 추세에만 주목을 해보면, 『불평등의 대가』와 『약자를 위한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금융화로 인해 초래된 불평등이 낳은 총수요의 부족으로 일어난 경제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기가 일어난 시점은 1965년 부근이며 흔히 알고 있듯 ‘스태그플래이션’이라고 불린 경제위기가 일어났을 즈음의 시점이다. 20세기 초중반까지의 성장기와는 다르게 이윤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유효수요 창출을 위한 적자재정 정책으로는 경기가 회복되지 않았고, 오히려 실업률과 물가를 동시에 상승한 것이다.

이윤율이 하락해서 기업 운영이 돈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가는 보통 기업을 매각하고 그 돈을 금융시장에 투자하거나 고정자본에 투여하는 방식이 가져오는 수익보다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비슷한 기업을 인수합병해서 기업의 규모를 키워서 이윤량을 높인다거나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강화하거나 임금상승을 억제하여 착취율을 강화한다. 이러한 선택들이 일반화되는 1980년 이후의 시대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시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금융화에 대해서도 금융투기는 너무 위험하고 무분별하니까 적당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일견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만 이해하는 것은 한계적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1970년대 시작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해야 한다. 금융 부문의 팽창과 실물 경제에 대한 금융부문의 지배를 통해 다시금 이윤율을 상승시키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방법들(기업의 인수합병, 노동권에 대한 공격 등)로 줄어드는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본의 반격’인 것이다.


4) 넓은 의미의 케인즈주의적 정책 대안의 한계

『불평등의 대가』나 『약자를 위한 경제학』 모두 현재 세계경제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1929년의 대불황의 경험을 빌려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그 당시에 펼쳤던 금융억압과 재정정책을 통한 성장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지나치게 이윤을 추구하는 투기적 금융자본에 있기 때문에 금융자본의 운동을 규제해야 하고, 재정정책으로 정부가 공공사업을 기획하여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소비자의 복지수준을 늘리고 고용을 창출하여 내수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서술한 1980년대부터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불평등의 대가』나 『약자를 위한 경제학』에서 주장하듯 정부가 재정 지출을 증가시키면 경제가 부양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재정 지출이 경제를 자극하여 결국 국내 총생산이 지출 중가분을 초과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윤율이 상승하던 20세기 전반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 당시 미국 자본주의의 호황은 케인즈주의의 금융관리와 재정관리라는 국가정책에 의해 보완되기는 했지만 핵심은 20세기 전반 미국의 새로운 축적체계에 의한 이윤율의 상승에 의한 것이었다. 금융위기의 위험성이 극대화 되고 있는 지금 시기의 새로운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금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 전반의 호황은 찾아오기가 쉽지 않다. 호황을 기대하며 재정정책을 막대하게 퍼부었다가는 큰 효과도 보지 못한 채 재정위기, 화폐(달러)의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5) 결론

경제는 복잡하고, 경제의 성장과 위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수히 많다고 할 때, 수요의 부족이 경제성장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게다가 추가적인 금융위기를 최대한 제어하기 위해 지대 추구적인 무분별한 금융자본의 투기 행위를 규제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지금의 불평등도 손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불평등의 대가』의 마지막 장의 정책 대안들은 실현된다면 어느 정도 불평등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이 아니라 케인즈주의의 대안으로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 축적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한 정책 대안들은 자본의 입장에서든 서민의 입장에서든 실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위기를 기회로 오히려 이득을 보는 자본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본의 입장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수준의 경제위기는 달갑지 않다. 물론 이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과 현재의 경제가 붕괴되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병행되어야 한다.


※ 참고문헌

윤소영(2001),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공감.
______(2008), 금융위기와 사회운동노조, 공감
______(2009), 2007-09년 금융위기, 공감.
______(2010), 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공감.
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2006), 자본의 반격, 필맥.
박상현(2009), “20세기 관리국가의 패러다임 이행에 관한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조반니 아리기(2014), 장기 20세기,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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