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Oct 24. 2024

20년 차 사서가 들려주는
도서관 이야기

초보 사서 눈물을 흘리다


 저는 20년 차 사서직 공무원입니다. 제가 처음 근무해 본 도서관은 경기도에 있는 공공도서관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도서관학과)를 전공하고, 사실 처음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공공도서관은 바로 앞이 지하철 역이고 주변에 도서관이 많지 않은 곳으로 동기들 사이에도 일하기 힘든 곳으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처음으로 근무해 볼  공공도서관이라 기대반 설렘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서관 자료실에서만 사서가 근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자료실에 근무하는 사서는 일부이고 그 외에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서관에 필요한 책도 사고, 정책과 비전을 수립하는 일, 문화강좌, 독서회 등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꼭꼭 숨어서 각자의 업무를 하고 있지요. 

  제가 제일 처음 맡은 업무는 이동도서관이었습니다. 혹시 아파트나 동네에 조그마한 차에 책을 가득 싣고 빌려주셨던 거 기억하시나요? 새마을문고에서 운영하기도 하고 각 지자체 도서관에서도 운영하기도 하는데 곳곳에 도서관이 많이 세워지면서 사실상 이동도서관은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인사발령받고선 처음 인사 드렸을 때 입었던 이쁜 스커트는 이동도서관 업무를 하면서부터는 거추장스러워 바로 청바지를 입게 되었습니다. 한 여름에 이동식 테이블과 캐노피를 펼쳐 놓고 두 시간씩 앉아서 이용자를 기다리는 생활은 더위와 저보다 이 업무에 익숙하여 훈수 두시는 운전직 선생님만 제외하면 나름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흘려 겨울이 다가오니 정말 혹한기가 다가오더라고요. 추위는 그나마 간신히 버틸만했는데, 그때부터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동도서관에서 책 빌려주는 그 업무가 도서관에서는 가장 한가한 업무로 인식되었는지 그때부터 새로운 업무들이 하나씩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업무는 인근에 있는 학교도서관을 지원하라는 거였는데요, 마치 사무실에 한 명의 직원이 더 생긴 것처럼 일이 야금야금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기존에 없던 업무가 새롭게 배정되면  직원들은 진짜 미친 듯이 싸우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한 번 싸워 이기면 최소 일 년에서 그 후에 후임자까지 그 업무를 안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아무도 하지 않던 그 업무는 제가 희생양이 되어 넘어왔습니다. ㅜㅜ 진짜 그 뒤로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원래 하던 이동도서관 업무, 학교도서관 지원을 위한 기간제 직원 채용, 프로그램 지원을 위한 출장, 주말근무와 초보운전자로서 낯선 곳으로의 운전까지 하면서 지냈습니다. 

  일이 일을 부르는지 사무실에 있는 오래된 서가와 집기를 교체한다고 계획서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집에서는 물건을 사고 싶으면 돈만 있으면 되잖아요? 인터넷에서 서치하고 장바구니 담고 카드결제 하면 끝이지만 공공기관에서는 그렇게 구매하면 바로 감사에서 걸립니다.  무슨 물건을 어떠한 이유로 사는지 일단 계획서를 세운 후 (거기에는 단가와 수량도 다 들어가야 합니다. ) 조달청에 등록되어 있는 물건으로만 품목당 3개 회사를 추려낸 후 ‘물품선정위원회’라는 것을 거쳐 구매한 후에 사야 합니다.  아 기존에 있던 낡은 서가를 버리는 것도 알 수 없는  서류에 윗분들의 사인을 여러 번 받은 후에야 가능했습니다.(뭐 지금은 여러 번 노후된 물품을 처리한 관계로 능숙하게 처리합니다.)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게 이 당시 밤 11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했었지요….

   요즘 도서관을 방문하면 핼러윈이면 핼러윈, 성탄절, 추석 그때그때 계절이나 행사에 맞춰서  이쁘고 다양한 소품들을 구매하여 분위기 있게 꾸미곤 하는데요,  첫 도서관 근무지에서는 급하게 준비용품을 사거나 구매부서와 협의되지 않은 물품을 사면 제때 업무가 진전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릴 때라 저도 모르게 눈이 빨개지면서 울곤 했었는데요, 지금은 안구건조증인지 눈물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바로 도서관 이용자! 사실 대부분의 이용자 분들은 도서관을 워낙 좋아하시기에 조용히 머물다 가십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기억하는 이용자는 그 외에 여러 가지의 안 좋은 이유로 조용히 각인이 되는 분들입니다. 예를 들어 책 반납할 때 항상 직원에게 던지듯이 주는 이용자, 아무도 안 볼 거 같은 책을 희망도서를 최대권 수로 꽉꽉 채워 신청한 후에 매번 빌려가지 않는 이용자, 본인이 신청한 희망도서는 무조건 다 사줘야 한다는 이용자, 책은 빌렸지만 멀어서 반납은 못 하겠다는 이용자, 책마다 밑줄 긋는 이용자, 밑줄 그어진 책을  서가에 비치하냐고 항의하는 이용자, 봉사시간에 농땡이 친 학생에게 주의 주니 항의하는 학부모, 내 고정석인데  딴 사람이 앉았다고 항의하는 이용자.. 그리고 옳은 말씀이지만 과격하거나  너무나 거칠게 이야기하여 마음에 스크래치를 주는 분들이 이 페이지를 꽉 채울 정도로 많네요. 


  첫 공공도서관에서의 근무는 이용자는 너무 까칠하고, 책은 볼 틈이 없으며, 복잡한 행정업무, 딱딱한 위계질서 등 제 어깨에 힘듦이 가득 얹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관두지 않고 이 직업을 20년 동안 나름 즐겁게 하고 있는 이유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책과 관련된 세계에 초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