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을 시작할 스스로를 위한 안내서
살다보면 종종 큰 결실을 얻기 위해 눈 앞의 즐거움을 미루고 반복적인 일상에 정진해야 할 일이 생긴다.
제목은 거창하지만
이 글은 그저 시험준비, 취업준비 등 앞으로 내가 뛰게 될 수많은 마라톤의 출발선에서 미리 꺼내볼 수 있는 안내서이자, 삶의 매 과정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사소한 방법들 모음집이다.
몇년 전에 친구랑 연말을 기념하여 '연말정산'이라는 기록집을 샀다. 올해의 순간, 올해의 장소, 올해 가장 고마운 사람 등 한 해를 회고할 수 있는 100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보는 책이었다.
편입 후 첫 해를 마무리 하면서 학교공부와 여러 대외활동, 동아리 활동 등으로 꽉 찬 한해였다고 자부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채 스무가지도 안돼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자기전 일기쓸 10분조차 아껴서 열심히 살았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다 잊어버리고 남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심지어 핸드폰이 한번 포맷되어서 남는 사진도 없었다..)
그때 기록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매일 저녁, 나의 하루를 조금이나마 기록하기 시작했다. 종종 일기장을 펼 힘 조차 남지 않는 지친 밤도 있고, 일기를 쓰기 위해 펜을 잡는 시간조차 아까운 날들도 있었지만, 미래의 나에게 작은 선물을 미리 보내둔다고 생각하면 한줄 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기록'이라는 도구는 특히 입시나 시험 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긴 싸움을 해야할때 꽤 유용한 도구이다.
내가 입시공부를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험에 떨어져서 이렇게 쏟아 부은 시간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면 어쩌지'
'나의 시간이 의미없이 사라져버리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순간들 이었다.
그럴때 마다 일기장을 펼치면 '그래도 기록이 남으니까' 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릴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이 기록들을 통해서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 순간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나를 이루는 소중한 자원이 될거라고 말이다.
(그 기록들을 바탕으로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장재열 작가님의 <마이크로 리츄얼>에서 번아웃의 알고리즘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번아웃은 노동량 대비 보상이 적은 집단에서 잘 생기기 때문에, 갓생을 살면서 120%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130%의 보상을 얻는 사람보다 60%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50%의 보상을 얻는 사람이 더 번아웃이 쉽게 온다. 따라서, 소모하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 보다는 보상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는 내용이었다.
긴 수험생활 중 번아웃이 오는 메커니즘도 비슷할 것 같다. 처음에는 치열하게 공부에 파고 들다가도 점점 이 시간의 의미를 자문하고, 매일 반복되는 에너지 소모에 지쳐서 무기력해 지는 것이다. 특히 수험생활 중에는 몇가지 개념을 반복해서 공부하고 빠르게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공부의 가장 큰 보상인 '새로운 앎에 대한 설렘'을 느끼기 힘들었고, 그래서 더 지치기 쉬웠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보상의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번 단정하게 차려입고 맛집을 방문해도 좋고, 평소에 미뤄두었던 만남을 갖는 것도 좋다. 잠깐의 쉼은 앞으로 더 달려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원동력이 되니까 말이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리다 보니 종종 삶의 감각을 잃고는 했다. 분명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 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객이 전도되어 달리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나를 챙기는 감각'을 느끼려 노력해야 한다.
매일 영양제 챙겨먹기, 스트레칭 하기, 저녁먹고 동네 산책하기, 세수하고 팩 하기, 자기전에 일기쓰기 등
하루에 10분만이라도 오로지 나를 최우선으로 두는 시간을 만들면서 내 삶의 최종 목표는 결국 나를 잘 챙기기 위함 임을 꾸준히 알려주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뭐라고 이런 당연한 말들로 가득한 방법론을 적나.. 싶었지만
긴 터널을 달리다 보면 당연한 것들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라 이렇게 글로 남겨둔다.
이 기록이 내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여정의 출발선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며,
긴 마라톤의 중간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누군가를 조금이나마 일으켜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