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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하는리타 Dec 31. 2022

2022 독서 연말 정산

31일까지 포함해야 진짜 정산(。•̀ᴗ-)✧

12월 중순부터 독서 연말 정산 해야지 결심하고 올해도 마지막 날에 쓴다. 작년에도 부랴부랴 쓰지 않았나? 하고 작년 글을 찾아보니 발행일 2021년 12월 31일. 이래서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하나보다. 


작년 독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더 읽었고, 책을 읽으며 가슴이 벅차거나 감동하는 순간이 잦았다. 독서만큼은 어느 정도 취향이 형성된 줄 알았는데 오만이었다. 세상에 어떤 책이 있고 없고도 모르는 마당에 취향을 어떻게 단언하겠는가. 


취향을 잃지 않겠다고 선언한 2021년과는 다른, 공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2022년의 독서를 돌아봤다.


올해의 책 : 『우리편 편향』『쿼런틴』


올해의 책은 한 권만 선정하곤 하는데 올해는 두 권이다. 『우리편 편향』은 우리가 신념이라 부르는 편향이 어떻게 인간을 가르고 집단 간 세계관을 공고히 만드는지 알려준다. 내게도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부르는 가치관이 있었다. 가치관이 이성적 선택이자 정체성의 일부라고 여겼다. 『우리편 편향』은 이런 위험한 사고를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편 편향』에 따르면 어떤 가치관이 좋거나 안 좋다고 판단하는 건 직관의 영역이며, 지지하는 데이터를 모으고 이해하려는 건 모두 합리화를 위한 후속 조치에 불과하다. 우리 뇌는 두괄식 서술의 글을 볼 때 첫 문장만 보고도 판단을 내리는 셈이다. 근거를 종합해 결정하는 힘보다 직관의 힘이 강력하다.


스스로의 '논리적 사고 능력'으로 어떤 가치관을 지지했으며, 이 가치관은 곧 '삶의 일부'라는 건 환상이다. 그렇기에 지지하지 않는 이에게 배타적일 이유가 없다. 그의 직관은 다른 쪽을 선택했을 뿐이므로. 가치관은 나의 일부가 아니다. 가치관의 비동의는 나를 향한 공격이나 공존 불가능함을 말해주는 요인이 아니다.


만약 『우리편 편향』에서 말하는 내용을 완전히 처음 접했다면 사고방식을 바꾸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2020년 올해의 책이었던 『바른 마음』에서 단초가 되는 연구결과를 접하고 한 번 충격을 받은 뒤라 비교적 받아들이기 수월했다. 하반기에 읽은 『뉴로사이언스 픽션』은 『바른 마음』에서 『우리편 편향』으로 이어진 사고방식의 변화를 단단히 정립하는데 도움을 줬다. 


『쿼런틴』은 올해 발견한 작가인 그렉 이건의 데뷔작이라 다음 문단에서.


올해의 발견 작가 편 : 그렉 이건


오래 전 절판되어 찾아보기 어려웠던 그랙 이건의 작품들을 재출간해줬다는 사실만으로 허블(출판사)에 큰절을 올리고 싶다. 허블에서 재출간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그렉 이건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비록 그렉 이건의 작품이 속한 워프 시리즈가 다 비슷한 결의 작품일 줄 알고 샀다가 한 번 낚이긴 했지만 그게 대수겠습니까. 지금까지 나온 작품보다 앞으로 나올 작품이 많다니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


올해 9월, 단편집 『내가 행복한 이유』로 그렉 이건을 처음 접했다. 불쾌하고 구역질 나는데도 흥미진진한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나는 뇌(신경과학), 자아, 정체성을 다루는 작품은 높은 확률로 좋아하는데 그렉 이건이 즐겨 다루는 주제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단편으로도 이 정도로 흥미를 유발하는데 과학적 이론이 탄탄히 뒷받침된 장편은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하게 됐다. 


그리고 12월, 그렉 이건의 데뷔작이자 주관적 우주론 3부작의 첫 작품인 『쿼런틴』이 출간됐다. 중반 정도 읽었을 때 그렉 이건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한국에 나오는 전작 모으겠습니다.


인스타그램에도 나의 흥분을 고스란히 담았는데, 공동으로라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고 싶을만큼 재밌었다. 양자역학에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쿼런틴』의 띠지와 뒷면에는 물리학자 김상욱 님과 겨울서점 김겨울 님의 추천사가 적혀있다. 읽어본 사람이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묘한 흥분이 추천사에서 느껴진다.


올해의 발견 취향 편 : 과학


문학의 비중이 줄었다. 전체 도서 중 문학이 50%를 조금 넘고, 과학이 20%를 넘었다! 호기심이 생기면 닥치는대로 보긴 하지만 매년 압도적으로 문학이 많았는데 통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분야가 갈라졌다는 게 신기하다. 뇌와 신경과학을 향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개인의 정체성, 동일성, 자아 등을 다루는 가벼운 철학책도 힐끔거리게 됐다.


2021년 연말에는 자연계에 빠져 동물, 식물 관련 과학 도서를 보곤 했다. 2022년에는 물리학(+천체물리)과 생물학 관련 과학 도서를 몇 권 봤다. 처음에는 책으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유튜브로 관련 지식을 습득하곤 했는데, 결국 호기심이 쌓여 관련 분야의 책도 보기 시작했다. 역시 중요한 건 꾸준한 반복학습이다. 궁금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지식들도 반복하다보면 조금씩 익숙해진다.


물론 갑자기 양자역학을 이해하게 되진 않는다. 낯선 분야의 지식이 덜 두려워질 뿐. 과학을 지적 유희로 즐기고 싶은 대중 1인으로서, 올해는 이 정도의 마음가짐 변화면 만족한다.


2021년과의 비교와 목표 회고


2021년에는 총 40권을 읽었고, 2022년의 목표로 ①50권 이상 읽기 ②독서 기록 체계적으로 남기기 ③신간을 꾸준히 살피고 제때 읽기 를 세웠다. 2022년에는 총 60권을 읽어서 양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11월과 12월에 시간이 많아 달린 덕분이다. 독서 기록은 연초에 잘 남기다가 중반에 팽개치고, 연말부터 다시 정리했다. 신간 제때 읽기도 10월 무렵부터 했다. 이 정도면.. 절반의 성공..인가?


현생이 정신없어지면 독서 목표는 뒷전으로 밀리기 딱 좋다. 2022년에 책과 가장 멀었던 시기도 조직에 들어가서 적응하고 내가 만들어낼 콘텐츠를 기획할 때였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매몰되는 성격 탓에 매년 반복되는 양상이다.


책만 읽고 살 환경이 되는 것도 아니니, 중간중간 놓쳤다고 자책하고 싶지는 않다. 책은 머리 맡에도 침대 옆에도 침대 밑에도 늘 있다. 가끔 멀고 자주 가까운 정도면 된다. 마음이 어려울 때 충분히 가까이 두었고 위로 받았다. 그거면 됐다.


2023년 독서 목표


2023년에도 50권 이상의 책을 분야 골고루 읽는 게 목표다. 12월부터 독서할 때 조금씩 메모를 하기 시작했는데, 메모 습관을 잘 정립하는 게 부수적인 목표다. 늘 앞부분 조금 쓰다가 마는 노트를 마지막 장까지 알차게 쓰기. 2023년 12월 31일에 가득 채운 독서 노트를 인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올해 최재천 교수님의 유튜브에 며칠 빠져 지냈다. 흥미로운 주제와 학자다운 접근법, 온화한 말투 속 유머감각이 좋았다. 독서를 좋아하셔서 책 추천이나 독서 강의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책은 씨름해야 하는 것'이라는 한 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덕분에 올해는 겁내지 않고 씨름깨나 한 것 같다. 체급 높은 책들도 기어코 쓰러뜨려보겠다는 야망을 품고 2023년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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