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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27. 2022

나는 나를 모르는 것 같다

글쓰기나 화법에 관한 내용들을 보면 무언가를 얘기하거나 주장할 때 '~인 것 같아요'와 같은 표현을 줄이라고 한다. 자신의 기분, 생각, 감정 등을 표현하는데 맞으면 맞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이는 너무 방어적인 화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표현을 정말 자주 쓰는 편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내 생각, 감정, 느낌에 대해서 확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난으로 어떤 상황을 가정하면서 노는, 예를 들면 '복권 1등에 당첨되면 어떤 기분일 것 같아요?' 같은 질문에 나는 거의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알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장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재미없는 답변이지만 정말로 가정된 상황에 대해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사람들하고 술을 마시면서 잡담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제가 연애 관련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연애 관련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상형 얘기가 나온다. 혹은 주변에서 소개팅 얘기가 나오면서도 이상형 질문을 가끔씩 받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이상형이 뭔지 모르겠다. 내 이상형이 뭘지 열심히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내가 그동안 호감이 있었던 분들이나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토대로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추측해 봤다. 그리고 항상 그 결론에는 쉽게 반례가 나왔다.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인데 아무 느낌이 없거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느낌이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요즘 내린 결론은 내가 어떤 부분 때문에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나의 이상형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정말로 우리는 자신에 대해선 생각도 감정도 가치도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앞에 말한 생각, 감정, 가치와는 다른 객관적인 지식에서도 그렇다. 1955년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에서 혼자서는 99%가 정답을 말했던 쉬운 문제가 앞 차례에서 협력자들이 줄줄이 같은 오답을 말할 경우 정답률이 63%까지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러한 사회 실험들을 보면 특수하게 설계된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과 굉장히 맞닿아있으면서도 이 동조 실험과 어쩌면 연관이 있을 것 같은 표현을 발견했는데, 바로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이다.


이 표현은 보통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이 추천으로 떴을 땐 왜 이게 나한테 떴는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봐보니 재밌었을 때 쓴다. 즉, 내가 생각한 것보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내가 재밌어할 요소를 더 잘 찾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다. '당신은 과연 정말 재밌었을까요? 혹시 추천된 동영상의 조회 수, 구독자 수, 호의적인 댓글이 무의식적으로 당신을 동조시킨 건 아닐까요?' 계산기가 발명되고 그 정확도가 높아지자 손이나 머리로 한 계산 결과와 계산기로 계산한 결과가 다를 때 계산기의 오류보단 우리의 실수를 먼저 의심한다. 기호에 대해서도 벌써 내 느낌이나 생각보다 인공지능의 결과를 더 믿는 현상이 시작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 것 같다. 이전에는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열심히 정답을 어떻게든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모른 채로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억지로 나를 찾으려다 동조된 결과로 나를 정의하고, 역으로 내가 그 틀에 끼워 맞춰지는 것보다는 나를 잘 모르더라도 그냥 나인 채로 놔두고 싶다. 어차피 정답도 없는데 몰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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